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 등장한 여성 성기 그림. ⓒ유튜브 영상 캡처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 등장한 여성 성기 그림. ⓒ유튜브 영상 캡처

2020년 넷플릭스의 인기 드라마인 ‘에밀리 파리를 가다’가 있다면, 90년대에는 같은 프로듀서의 히트작인 ‘섹스 앤 더 시티’가 있다. 밥은 굶어도 패션 잡지와 명품 신발은 포기할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진 주인공 캐리 브래드쇼와 성에 대해 가장 개방적인 사만다는 그 당시 나에게는 조금 멀게만 느껴지는 캐릭터들이었다. 오히려 조금은 냉정하고 현실적인 기준을 가진 미란다나 연애와 결혼에 대해 고전적인 가치관을 가진 샬롯의 에피소드에 좀 더 공감했다.

드라마 중 자신의 성기를 거울로 관찰한 경험이 있는지 네 명의 캐릭터들이 얘기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가장 고지식한 캐릭터인 샬롯은 처음엔 그런 수치스러운 행동을 할 수 없다며 난색을 표한다. 자신의 성기를 관찰하는 것을 망측하고 불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은 그것이 왜 부끄러운 일이냐며 꼭 한번 보라고 북돋고 집으로 돌아간 샬롯은 욕실로 향해 거울로 본인의 성기를 들여다본다.

이 에피소드를 본 이후 나도 샬롯처럼 처음으로 내 성기를 거울로 들여다보게 됐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굳이 나의 성기를 자세히 관찰할 일도 없었고 그러한 필요성조차 생각하지 못했다. 나에게 있어 성기는 특별한 의미도 없었고 단지 소변을 배출하거나 한 달에 한 번 생리를 하는 곳, 그리고 섹스 시 성기가 삽입되는 곳이라는 물리적인 관념밖에는 없었다. 그 상태에서 처음 내 성기를 마주 보게 됐을 때 들었던 생각은 “이상하다. 왜 이렇게 시커멓고 못생겼지?”에 불과했다.

넷플릭스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귀네스 펠트로의 웰빙 실험실’에서는 여성 성기를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탐색하는 내용이 나온다. ⓒNetflix
넷플릭스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귀네스 펠트로의 웰빙 실험실’에서는 여성 성기를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탐색하는 내용이 나온다. ⓒNetflix

넷플릭스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귀네스 펠트로의 웰빙 실험실’ 의 내용 중 섹스 교육가이자 작가인 ‘베티 도드슨’를 초대하여 여성이 가진 성에 대한 억압과 선입견을 깨뜨리고 오르가슴을 적극적으로 찾는 에피소드가 있다. 워크샵에는 여러 명의 여성이 참석해 옷을 완전히 벗은 상태에서 먼저 본인의 몸을 천천히 바라보고 탐색한다. 그리고 거울로 본인의 성기를 자세히 관찰하고 또 다른 참가자들의 성기를 관찰한다. 참가한 사람마다 생김새나 외형이 다르듯 각자 개인의 성기 모양 또한 모두 다르다. 소음순이 길거나 짧거나 늘어져 있기도 하고, 색깔도 분홍색이거나 붉거나 또는 짙은 검은색이기도 하다. 포르노 속 여성의 성기와 같이 매끄럽고 분홍색인 것만 정상이나 표준이 아니다. 하지만 다수의 여성은 이처럼 예쁜 모양의 성기를 갖기 위해 수술을 감행하고 심지어 분홍빛이 돌도록 물을 들이는 시술을 진행하기도 한다.

여성들은 이처럼 본인의 성기를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워하거나 필요하지 않은 일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나는 여성의 성기를 직접적으로 지칭하는 것조차 여전히 힘들어한다. 남성들이 본인의 성기를 자존심으로 여기거나 남들에게 과시하거나 자랑할만한 소재라 생각하고 ‘고추’ ‘대물’이라는 발언을 쉽게 할 수 있는 반면 여성들은 아주 어렸을 때나 사용하는 ‘잠지’라는 표현 외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된 이후 본인의 성기를 지칭하거나 본인의 성기를 자랑할 만한 소재로 삼는 일은 없다. 오히려 초경이 시작돼 임신 가능성이 생기게 되면 몸가짐을 더욱 조심해야 하고 스스로 단속해야 한다는 충고만 듣게 된다. 그 당시 나는 의자에 앉는 자세조차 성기의 방향이 밖으로 노출되지 않도록 무릎을 똑바로 붙이고 오므린 뒤 두 다리의 방향을 비틀어 사선으로 앉도록 배웠다. 당시 내가 다녔던 학교에서는 조금이라도 무릎 사이가 벌어진 상태로 앉아있을 경우 ‘여자가 어디서 천박하게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느냐’며 선생님께 질책을 받기도 했다. 반면 이 시기의 남자들은 별다른 당부나 단속을 받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생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남성들뿐만 아니라 여성 친구들과 얘기할 때도 ‘생리’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내뱉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웠고, ‘그날’이라는 대명사를 사용하곤 했다. 평소 분비물이 많을 때 성기에서 나는 냄새에 민감했던 나는 생리 때만 되면 냄새가 날까 더욱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청소년기에는 생리대에 냄새를 감소시켜준다는 스프레이를 잔뜩 뿌려 이를 감추곤 했다. 생리대를 살 때도 보관할 때도 남들이 보지 못하게 항상 검은 봉투에 담았고, 생리대를 들고 화장실에 갈 때도 파우치나 휴지에 둘둘 말아 감췄다. 민서영 작가의 웹툰 ‘썅년의 미학’에서 생리대가 마약이나 장물도 아닌데 검은 봉투에 감춰 다녀야 하는 상황을 풍자한 에피소드를 보고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이것이 웃기만 할 상황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에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성인이 되어 섹스를 할 때도 성기에 대한 나와 상대방의 인식 차이는 마찬가지였다. 일부는 본인의 성기 크기에 대해 끊임없이 자랑을 늘어놓던 경우도 있었다. ‘사우나에 가서 다른 남자들과 비교했을 때에도 항상 자신감이 있다. 내 성기가 아주 큰 대물은 아니지만 아주 단단해서 여자들이 좋아한다’는 등 본인과 본인의 성기를 동일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여성 중 본인의 성기의 장점에 대하여 상대 남자에게 자랑하거나 과시하는 경우는 얼마나 있을까? 아마도 그러한 것이 상대방에게 자랑하거나 어필할 만한 장점은 아니라는 것이 전반적인 의식일 것이다.

성기는 나의 소중한 신체의 일부이다. 내 얼굴과 눈, 코, 입과 손, 발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듯 여성의 성기 또한 부끄럽거나 수치스러운 존재가 아니다. 파트너와의 섹스를 통해 쾌감을 느끼는 곳이기도 하며 임신과 출산을 위한 기관이기도 하다. 남성과 달리 육안으로 관찰하기 힘들 뿐이지만 외음부와 신체 내부로 연결된 모든 세포와 신경을 보면 거대하고 놀라우며 신비한 존재이다. 이를 자신 있게 인정하고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는 것부터 나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은파도 (대관 경력 15년차 직장인·『당신의 섹스는 평등한가요?』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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