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승격 30돌 행사 분주

~3-1.jpg

◀<사진·민원기 기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김춘수 '꽃' 부분) 정성어린 관심과 사랑은 하찮은 미물에게도 존재의 의미를 부여한다고 이 시인은 노래했다. 그 사랑의 시작은 '이름 붙이기'였다. 경기도 부천시에선 비좁은 뒷골목도 '이름' 하나씩 갖고 있다. 고개가 높아 '하우 하우' 숨을 몰아쉬며 넘었다는 하우고개길 같은 자동차길은 물론이고, 아카시아길·장미길처럼 두 사람 어깨 스쳐 겨우 지날 주택가 오솔길에도 저마다 이름이 있다. '명명'을 이끈 이는 원혜영(52) 시장이다.

부천시에서 연탄재 쌓인 후미진 처마 밑이나 개들만 짖어대던 불 꺼진 가로등 아래에도 발길이 머물고 사람 사는 향기가 나기 시작한 건 그것들의 이름을 불러준 뒤부터다. 국제판타스틱영화제 등으로 부천이 '문화도시'란 이름을 얻는데도 원 시장의 공이 컸다. 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한가하다'는 비아냥을 뒤로 하고 시민들의 '쾌적한 삶'을 위해 골목길에 이름 달고 문화사업을 몰아붙인 것이다. 시민들은 그를 민선 2·3기 시장으로 연거푸 뽑았다. 원 시장은 문화도시의 수장답게 문화행사로 요즘 다시 바쁘다. 10월은 부천이 시로 승격한 지 30년이 되는 때. 34만개의 전구가 5만여평의 호수공원을 빛으로 수놓는 '루미나리에'(빛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행사는 1일 시작 직후부터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 본지 김은혜 부천 지사장과 함께 17일 원 시장을 만났다.

30년만에 첫 여성국장 임명여성정책 우수시 선정

@3-2.jpg

- 부천을 '문화도시'로 일군 계기가 궁금하다.

“처음 시장이 된 98년은 도시발전의 개념을 다시 세워야 할 때였다. '문화'가 새 세기로 도약할 수 있는 필수적인 자양분이란 생각을 한 것이다. 부천은 외형적인 개발이 진행된만큼, 문화산업 육성이 중요했다고 판단했다.”

- 외환위기로 어지러웠을 때였는데.

“온 나라가 어려웠다. 문화라는 쾌적한 삶의 조건을 말하는 것이 한가해 보일 수도 있었지만, 시민과 함께 한다면 삶의 질을 높일 중요한 사업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 부천이 문화사업에 성공했다는 평을 듣는 이유가 뭘까.

“아직 실패한 게 없어서 그런가보다(웃음). 시장이 되면서 부천이 가진 장점을 살리는 일을 고민했다. 부천은 인적자원이 풍부하고 서울과 가깝다는 장점이 있었다. 인구의 70% 이상이 10∼40대의 전문분야 종사자고, 수도권 2000만명의 잠재 소비시장도 가까웠다. 무엇보다 시민의 참여가 가장 컸다.”

한국 대표 문화도시 부천

- 대표적인 문화콘텐츠를 꼽는다면.

“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등 5대 문화사업이 있다. 영화제와 부천필은 세계적인 축제와 공연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서울방송 드라마 '야인시대' 오픈세트장은 지난해 3월 문 연 뒤 관광명소가 됐다. 최근엔 임권택 감독의 영화 '하류인생' 오픈세트 건립계약을 맺었다. ”

- 여성정책 우수시로 선정되기도 했는데, '문화'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99년 국무총리 기관표창을 받았다. 여성과 함께 가정을 이루고 있는만큼 여성정책에 관심이 많다(웃음). 현재 공무원 사회가 여성들에게 상대적으로 불평등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최대한 여성 공직자의 권익을 먼저 배려하고 있다.”

- 어떤 배려인지.

“지난 2월 손계숙 사무관이 경제통상국장 직무대리로 승진했다. 여성으로선 드문 경제쪽 국장으로 승진한 것이다. 여성국장이 나온 건 30년 동안 처음 있는 일이다.”

- 여성정책을 세우고 집행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건 뭔가.

“여성들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지원하는 일이다. 우리 시는 진보와 보수를 아우른 여성단체들이 상호신뢰를 구축하고 정보를 공유하도록 돕는다. 각각의 장점과 전문성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고, 이것이 시정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 시 여성공무원은 얼마나 되나.

“전체 공무원 2000명 가운데 600여명으로 30%를 차지한다. 여성들의 진출은 더 활발해지고 있다.”

- 정치권에서도 여성할당이 큰 화두인데, 여성의원이 많이 나올 것으로 보나.

“내가 국회의원이었던 14대 국회 때는 이우정 의원 한 명뿐이었다. 내년엔 여성의원이 적어도 수십명은 나오지 않겠나.”

- 정치권은 마땅한 여성후보가 없다고 한다.

“키우지 않아서 없는 것이다. 지금 과감히 발탁해야 한다. 사람이 클 때까지 기다려선 안된다. 지금 내보내서 키워야 한다.”

'쾌적한 삶' 새 화두

- 여성들은 이참에 여성대통령을 만들자는 제안을 하기도 한다.

“네티즌들이 뽑은 인기있는 사람들 가운데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있더라. 강 장관이 떠오르는 별 아닌가(웃음).”

- 지금 정치상황을 어떻게 보나.

“낡은 것을 새로 바꾸는 게 정치개혁 아닌가. 그런데 개혁 하려는 쪽(신당)이 힘이 없어 보인다.”

- 힘을 보태는 데 나설 생각이 있는지.

“시민들이 두 번이나 뽑아줬는데 중간에 사퇴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통합)신당에 힘을 줘야 한다는 생각은 한다. 신당 쪽에서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제안이 온다면 심각하게 생각해 볼 문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사퇴시한이 한 달 남았다(웃음).”

수원 등 '특정시' 추진

- 단체장 가운데 유일하게 대통령직속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됐는데.

“한 달에 한 번 회의를 하고 있다. 지방정부의 시스템과 정보를 공유하는 수준이다.”

- 지방분권 성공 관건을 꼽는다면.

“(지방정부에) 권한과 책임을 과감하게 넘겨 주자는 게 우리의 요구다. 대통령께서도 과감한 분권을 거듭 말했고, 의지를 갖고 있다.”

- 최근 '특정시' 지정을 추진하고 있는데.

“내가 회장을 맡고 있는 전국대도시시장협의회 소속 부천, 수원 등 11개 시는 광역시에 버금가는 행정수요를 가지고 있지만, 행정규모는 턱없이 적다. 더 질 높은 행정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해 도에 있는 권한을 자율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게 특정시다.”

- 공무원 자리만 늘리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특정시는 참여정부의 지방분권화 방향에 맞춘 합리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부천을 비롯한 이들 도시들은 공무원 1인당 주민수가 전국 평균의 2배가 넘는다. 과포화 상태인 공무원 1인당 주민 수를 줄여 행정서비스의 질을 높이자는 얘기다.”

- 친환경 녹색도시 건설에도 관심이 큰데.

“최근 '시민의강'을 완공했다. 길이 5.5km, 폭 3∼5m인 물길로, 하수를 재처리한 중수도로 물을 흐르게 하는 것이다. 그동안 녹지를 늘리기 위해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공원에 개울을 만들었다. 개울과 분수, 녹지와 공원, 강이 있는 도시가 될 것이다.”

- 시 승격 30돌을 맞는 소회는.

“부천은 그동안 인구, 규모, 삶의 질 등 너무도 많이 달라졌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이 '발전'이란 큰 틀 속에서 이뤄져다는 점이다. 문화는 21세기 가장 비중있는 화두다. 부천을 한국문화의 중심으로 떠오르도록 하겠다. ”

배영환 기자ddarijoa@womennews.co.kr

시장님 명함은 광고판

원혜영 시장의 명함엔 판타스틱영화제를 홍보하는 큼지막한 광고문구와 로고가 앞뒤로 들어 있다. 거기에 가려 시장이란 직함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영화도시의 수장이어선지 옷차림은 요즘 말로 '스타일리시'하다. 시장실 분위기도 아기자기했다.

원 시장은 서울대 교양과정부 학생회장이던 71년부터 10년동안 유신독재 반대운동으로 3번 제적당했고 2번 복역했다.

81년 유기농산물 회사 '풀무원식품'을 창업해 경영했고 88년 진보정당인 한겨레민주당 대변인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91년 곡절 끝에 민주당에 들어갔고 이듬해 부천 오정구에서 14대 국회의원이 됐다.

96년부터 2년 동안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 대변인으로 활약했고 대선 뒤 열린 지방선거에서 부천시장에 당선했다. 시장이 된 뒤 각종 문화·친환경 시정으로 시민들에게 두터운 지지를 얻었고 지난해 재선에 성공했다.

'문화'에 가려 덜 알려졌지만 부천시는 남다른 여성·환경정책으로도 유명하다. 99년 '여성정책 우수시', '국토공원화사업 전국 최우수시'로 뽑히기도 했다. 얼마 전 30년만에 여성 국장이 나오고 상동에 인공하천이 완공된 것들이 그 사례다.

원 시장이 여성과 환경, 문화에 '능한' 시장이 된 건 아무래도 가족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듯하다. 아버지 원경선(89)옹은 우리나라에 친환경 유기농법을 뿌리내린 '풀무원', '정농회' 설립자다. 원 옹은 98년 '인간 상록수'로 추대됐다.

원 시장의 동갑내기 아내 안정숙(52)씨는 <한겨레> 문화부 기자다. 주간지 <씨네21>에서 매섭고도 깊은 영화평으로 이름을 날린 '글잡이'로 지금은 유학중이다. 원 시장은 “얼굴 보기도 힘들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부천이 영화도시가 된 건 분명 우연이 아닌 듯하다.

실제로 부천의 큰 길엔 알록달록한 현수막이 많다. 국내에서 열리는 3대 국제영화제 중 하나로 자리잡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PiFan)와 국내 최초 만화정보센터, 수준 높은 연주로 명성이 자자한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홍보물 들이다. 부천국제대학애니메이션페스티벌, 복사골예술제를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