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페미니즘 읽기] ③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 –힐러리에게 암소를』

 

책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급의 삶과 힐러리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건가? ‘이’ 힐러리가 내가 아는 ‘그’ 힐러리가 맞나? 갑자기 암소는 왜 나오는 것인가?

그러나 서문을 읽고 난 후 너무나 적절한 제목임을 깨닫고 탄복했다.

1995년 북경여성대회를 앞두고 힐러리 클린턴은 여성의 임파워먼트(empowerment, 권리 강화)와 그라민 은행(Grameen Bank)에 대한 궁금증으로 방글라데시를 방문한다. 그곳 여성들은 방글라데시 농촌 마을을 방문한 힐러리에게 궁금한 게 많았다. 그래서 질문했다. “당신은 암소가 있나?” “없다.” “스스로 버는 소득이 있나?” “지금은 없다.” “자식은?” “딸 하나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속삭였다. “불쌍한 힐러리! 그녀는 소도 없고, 자신의 소득도 없고, 딸도 하나밖에 없다네.”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 –힐러리에게 암소를』(마리아 미즈·베로니카 벤홀트-톰젠 지음, 꿈지모 옮김, 도서출판 동연)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 –힐러리에게 암소를』(마리아 미즈·베로니카 벤홀트-톰젠 지음, 꿈지모 옮김, 도서출판 동연)

 

에코페미니즘 읽기 세 번째 책은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 –힐러리에게 암소를』(마리아 미즈·베로니카 벤홀트-톰젠 지음, 꿈지모 옮김, 도서출판 동연)이었다. 이 책을 한국에 소개하고 번역한 꿈지모(꿈꾸는 지렁이들의 모임)의 이윤숙 선생이 직접 책에 대한 설명과 강의를 맡았다. 이번 강의는 책에 대한 해설과 함께, 두 저자가 제시한 관점들을 2020년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바꾸어 진행되었다.

이윤숙 선생은 “자연에 대한 착취와 억압은 여성에 대한 착취와 억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동시적이다. 그러므로 여성과 자연에 대한 해방이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완전한 해방을 이룰 수 없다. 자연이 해방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여성들이 착취되고 평등하지 않다면, 진정한 자연해방이라고 할 수 없다. 이것이 에코페미니즘이다”라고 설명한다. 마리아 미즈는 이 연관 관계에 대해 세밀하게 밝혀 준 학자이다.

마리아 미즈는 독일 쾰른대학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제3세계에 대한 연구, 특히 실천적인 문제, 여성과 관련된 문제, 세계화, 지구화의 폐해를 연구했고 가부장제와 식민지 여성에 관한 방대한 저서를 남겼다. 국내에도 반다나 시바와 더불어 대표적인 에코페미니즘 학자로 알려져 있다. 인류학자인 베로니카 벤홀트-톰젠은 단독 저서가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녹색평론>에 모계공동체인 후치탄 여성들에 대한 글을 연재한 바 있다.

삶의 관점으로서의 자급

자급이란 무엇인가? 마리아 미즈와 베로니카 벤홀트-톰젠에게 자급은 경제모델이 아니라 ‘관점’이다. 통합적으로 연결된 세계를 보는 관점, 다시 말해 세계관의 전환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 즉 상품생산과 상품을 생산하기 위한 임금노동으로 이루어진 세계가 아닌, ‘삶’을 생산하는 세계인 것이다.

방글라데시 여성들이 힐러리의 삶을 부러워하지 않은 것은 수많은 희생과 경쟁에서 얻을 수 있는 소수에게만 가능했던 부가 부럽지 않다는 것이고, 위계의 정점에 있는 사람을 존경과 부러움의 시선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을 동등한 사람으로 본다는 것이라고 미즈는 설명한다. 힐러리의 ‘지속가능한 개발’과 가난한 여성들의 임파워먼트가 과연 그들에게 진정한 힘을 줄 수 있을까? 미즈는 오히려 개발의 파괴성에서 벗어나는 것이 그들이 임파워먼트, 즉 진정한 권한을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봤다. 여성들이 갖는 진정한 힘이란 외부에서 돈이나 대여를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힘을 신뢰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자연과 협력할 수 있는 공동체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경쟁이 아닌 상호성에서, 수동적 소비생활이 아닌 스스로 기획하고 만들고 행동하는 능동적 자급에서 힘이 나온다. 공동체에서 함께 일하는 즐거움, 이것이 진정한 임파워먼트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미즈가 말하는 ‘자급’은 땅을 기반으로 생태적 순환이 보장되는 것, 재생산될 수 있는 것, 제1세계가 강요한 획일적인 문화나 개발의 힘이 아니라 생물학적 다양성이 보장되는 삶이다. 자급은 돈이나 이익, 상품생산에 기반한 잉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의 세계에 의존한다. 미즈는 이런 자급의 패러다임이 노동과 자급기술, 무역과 시장, 필요와 충분성의 개념을 새롭게 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성별 노동이 변할 것이며, 이에 따라 여성들의 노동이 제대로 평가받고 남성들도 여성들이 해온 노동을 담당할 것이라고 본다. 기술의 독점으로 소수에게만 막대한 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급의 기술이 삶과 자연, 보살핌과 나눔을 고양하는 도구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시장도 지역적 필요를 위해 존재하는 지역시장으로 달라질 것이며, 화폐는 축적의 수단이 아닌 순환의 도구가 될 것으로 봤다.

자급의 관점은 자본이 지배하는 세 가지 식민지 즉 자연, 여성, 제3세계를 탈식민지화할 것이다. 도시에서의 자급도 지금처럼 모든 것을 외부에 의존하는 기생 도시의 삶이 아니라 스스로 삶을 지탱할 수 있는 방식으로 체계들을 바꿔 도시에서의 자급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폭력적인 자본에 여성들이 저항했던 두 가지 운동에 대한 영상도 함께 봤다. 인도의 ‘칩코(Chipco) 운동’ 여성들과 한국의 밀양 할머니들의 영상이 그것이다. ‘할매는 궁금하다’의 마지막 자막은 코로나 시대의 우리가, 다시 자급을 말하고 자급의 삶이 가능한지 질문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 주는 듯하다.

“이 할매는 참말로 궁금하다. 느그는 느그의 한평생을 돈으로 바꿀 수 있나, 대대로 이어온 고향 마을을 돈으로 팔아넘길 수 있나? 금수강산 다 망치놓코, 고향 마을 다 찢어놓코, 느그는 어데 기대 살레, 어데 기대 살레…”

썩은 파이를 차지할 것인가, 새로 만들 것인가

젠더 관계의 변화를 말하고 평등과 안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수많은 여성의 움직임이 이 사회의 변화를 이뤄가고 있다. 강사는 여성들이 각자의 파이(pie)를 구하고자 하는 것은 동의하지만, 그 파이가 부패하고 인간에게 해를 일으키는 파이라면, 그 파이를 추구하는 것이 맞는지를 자문하며 미국의 에코페미니스트 이네스트라 킹의 말을 인용한다. “We don’t want an equal piece of the same rotten carcinogenic pie.(우리는 기존의 유해하고 썩은 파이의 동등한 조각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기후위기, 수많은 착취가 존재하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삶을 지속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두 저자는 우리에게 묻는다. 삶의 지속성을 위협하는 체제를 유지하는 세계에 가담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 다시 짤 것인가를. 그들은 ‘Reweaving’, 즉 이 세계를 다시 짜는 것으로 답한다. 남성이 만든 세계 안에 똑같이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새로이 짜는 것을!

좋은 삶이란 무엇이고, 그것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강의를 시작하며 이윤숙 선생이 던졌던 질문이 계속 맴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