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갈리아의 딸들』 (황금가지, 2016)
『이갈리아의 딸들』 (황금가지, 2016)

흥분이 절정에 달했다. 브램은 무아지경에 빠져 “위대한 진통이 시작된다!”고 소리쳤다. - 『이갈리아의 딸들』 186쪽, 루스 브램 장관의 출산 중

출산 과정에 뭔 쾌락?

『이갈리아의 딸들』을 읽었던 것은 약 20년 전, 20대 초반 학생 때의 일이었다. 전반적으로 무척 재밌었지만 의구심을 갖게 한 장면이 딱 하나 있었다. 바로 “이갈리아”의 가모장인 루스 브램 장관이 막내아들을 낳는 장면이었다. 그녀의 출산은 강렬한 쾌감을 주는 경험으로 묘사돼 있었다. 당시에 나는 거기에 진실이 있다고 전혀 믿을 수 없었다. 출산은 “귀여운 아이를 얻는” 보상만 보고 견뎌야 하는, 고통과 위험에 가득 찬 사건이 아닌가? 직관적으로도 참외만 한 어린아이의 머리가 좁은 질로 나오는 통에 질과 회음부가 갈가리 찢어지는 걸 상상하면…제아무리 “이갈리아”라도 무슨 쾌락이 가능하겠나 싶었다.

최근까지도 그 믿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부터 새로운 정보들을 접하기 시작했다. 나는 제왕절개로 두 아이를 낳았다. 아이들이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라고 물었을 때 “배를 가르고 나왔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간이 어머니의 질을 통해 태어난다는 사실도 알려주고 싶었다. 자녀들의 성교육에 활용할 만한 자연분만 장면이 없는지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출산 이미지를 검열하는 SNS의 방침에 반대하며 출산에 대한 인식개선 활동을 하는 미국 조산사들의 인스타그램 계정들을 발견했다. 평생 상상도 못 했던 다양하고 감동적인 임신 출산의 모습이 가득했다. 엎드린 자세로 출산, 화장실 변기를 의자처럼 활용하는 출산, 가족들이 참여하는 욕조 출산, 트랜스젠더의 출산 등…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 버리는 다채로운 출산의 스펙트럼이 궁금한 분은 인스타그램에서 ‘carriagehousebirth’, ‘badassmotherbirther’, ‘’dannythetransdad’, stopcensroingmotherhood’ 등의 계정을 검색해 보시기 바란다.)

오르가슴 출산

그리고 거기에 “오르가슴을 느끼는 출산” 도 있었다. 세상에, 『이갈리아의 딸들』에 나온 이야기는 상상의 산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예전에도 조산원이나 수중(욕조)에서의 출산에 대해 들은 적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출산 중에 성적인 자극을 적극 활용할 수 있으며, 만출기(태아가 밖으로 나오는 단계)에 회음부 부상 없이 오르가슴을 느끼는 여성들이 실존한다는 사실은 새로웠다.

“산모가 질이나 클리토리스를 자극하면 고통스러운 자극에 덜 민감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오르가슴에 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모든 경로는 출산을 위해 사용하는 경로와 똑같다. 질 자극은 통증 방출기의 발산을 막고 옥시토신이 넘치게 한다. 어떤 산모들은 통증을 줄이기 위해 출산 중 클리토리스를 자극하고 성관계를 하며(양수가 터지지 않았다면), 심지어 바이브레이터를 사용한다.” -인스타그램 evarosebirth, 9월 17일 게시물 중

『황홀한 출산』 (정신세계사, 2011)
『황홀한 출산』 (정신세계사, 2011)

오르가슴 출산의 조건

나는 오르가슴 출산에 대해 조금 더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책 『황홀한 출산』(정신세계사, 2011)에는 긴 진통 후에 강력한 성적 극치감을 느낀 여성들의 증언들이 실려 있었다.

그런데 오르가슴 출산은 쉽게 느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매우 복합적이고 섬세한 전제 조건들이 있었다. 산모 개인이 의학적 위험도가 낮은 임신을 했고 혼자서 강한 의지로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임신 기간 내내 산모에 대한 사회적 지지가 쌓여야 했다. 오르가슴 출산은 긴 진통이 선행된다는 점을 제외하면 섹스의 오르가슴과 여러모로 비슷했다. 여성이 심리적으로 부담을 느끼거나 침해를 받으면 불가능했다.

“산모가 자기 자신에게 주의를 두는 것만으로도-“제가 지금 잘하고 있나요?”-옥시토신의 분비는 급격히 줄어든다.” -『황홀한 출산』 53쪽

그런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책을 읽어 볼수록 오르가슴 출산 경험이란 참 쉽지 않은 것이겠구나 싶어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정서적, 정신적 지지가 필수적인데 임산부가 그런 지지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과연 흔할까? 저자는 죄책감이나 수치심이 출산과 완전히 격리해야 하는 단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출산이야말로 죄책감과 수치심이 들러붙기 쉬운 경험이다. 예를 들어 자연분만(질식분만)-모유 수유와 제왕절개-분유 수유에 대한 선호는 시대마다 달랐다. 지금은 자연분만-모유 수유가 권장되는 분위기이다. 그런데 어떤 방식이 ‘보다 바람직하다’고 여기게 되면 그것과 다른 출산을 한 이에게 대한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일이 흔하다.

제왕절개는 ‘자연분만의 실패’로 여겨진다. 심지어 제왕절개를 한 엄마는 이기적으로 ‘편안한’ 출산을 선택했기에 모성애가 부족하지 않냐는 말도 안 되는 편견까지 있다. 출산에는 이런 요소가 많다. 사사건건 정해진 모범 답안이 있고 그에 벗어나는 경우 실패자라고 비난받을 수 있다. 좋은 환경이라 할 수 없다.

죄책감도 수치심도 없이

임신과 출산은 분명히 의료적인 지원이 필요한 사건이다. 또 출산의 고통과 위험, 후유증에 대해서조차 충분히 이야기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들과 함께 오르가슴 출산과 같이 여성 주도적이고 성적인 측면에 대한 이야기도 넘쳤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황홀한 출산』의 저자도 오르가슴 출산 경험자다. 그는 출산 중 주도권을 잃지 않았고 자기 몸의 신호에 ‘동조’했다고 보고했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산모가 모든 출산에 대해 긍정적 상을 갖도록 지지하는 사회 문화적인 조건이 필수적이다. 자연 출산이든 강한 의료적 개입이 있는 출산이든, 어떤 형태의 출산이라도 그런 조건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 그야말로 죄책감도 수치심도 없이.

 

필자 니나 (결혼 11년차 주부·『당신의 섹스는 평등한가요?』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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