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의 존재 반가워
여성 출마 지역은 십대 여성이 정치 적극 참여 기여

“트럼프 대통령 낙선, 바이든 후보 당선”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젠더이슈, 인종갈등, 소수자 인권, 기후 위기 등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 대해 전혀 동의할 수 없었기에, 세계 시민으로서, 미국 진보 시민들에 대한 연대의 마음으로 그의 낙선이 무척 반가웠다. 

바이든-해리스 당선 축하 소식을 알리는 뉴스들과 함께 트위터에 올라왔던 이미지
바이든-해리스 당선 축하 소식을 알리는 뉴스들과 함께 트위터에 올라왔던 이미지 ⓒ트위터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의 존재 또한 반가웠다. 트위터에서 “1789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래 최초의 여성 부통령 선출”을 강조한 이미지를 보고, 들떴던 마음이 다시 차분히 가라앉았다. 여성만의 문제가 아닌, 정치적으로 과대대표되고 있는 그룹과 과소대표되고 있는 그룹 간의 정치적 힘의 불균형을, 이 사진 한 컷이 다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아서다.

“제가 부통령직을 수행하는 첫 번째 여성일지는 모르지만, 제가 마지막은 아닐 것입니다. 오늘 밤, 이 모습을 지켜보는 모든 소녀가 우리나라가 가능성의 나라임을 알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린 해리스 당선자의 수락 연설이다.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이 말이 절대 그냥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미국에서 (유색 인종) 여성이 부통령을 넘어 대통령이 되는 것이, (백인) 남성이 대통령, 부통령이 되는 것만큼 흔한 일이 되기 위해서는, 이 일에 누군가 마음을 들여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대표되지 못했던 이(여성)들의 목소리를 정치적 힘으로 조직해 내는데 누군가는 계속 품을 들여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 일을 사람들은 “정치”라고 말한다. 이것을 기꺼이 해내겠다 나서는 이들을 우리는 “정치인”이라고 부른다. 

이 여정에 오르기가 쉽지 않다. 정치를 통해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뜻이 있어도, 선거라는 혹독한 과정을 통과해야지만,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지방의원 등의 선출직 정치인의 길에 들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어려운 도전이지만, 남성 중심적 정치 문화에서 여성이 정치 권력을 획득해내는 일은 특히나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실제로 권인숙 의원은 팟캐스트 <듣똑라> 출연 시, “여성 국회의원이 왜 적은가”에 대한 질문에서 “(민주당의 경우) 여성들이 본선 경쟁력은 있는 것 같은데, 지역구 경선을 통과하기가 어렵다. 경선에서 이기려면 풍부한 네트워크와 오랜 지역 다지기 등을 두루 갖춰야 하는데 이게 참 쉽지 않다.”라고 답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민주당이나 국민의힘 같은 거대 정당은 ‘공천받기는 어렵지만, 당선은 쉽고, 진보정당은 공천받기는 쉽지만, 당선이 어렵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전자든 후자든, 결국에 핵심은 “지지 기반과 지역 조직”이다. 이것만 있으면 정당 내부 경선이든, 지역구 선거든 문제가 없다. 이것을 만들기 어려운 게 문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없다. 여성 스스로 “풍부한 네트워크와 오랜 지역 다지기”를 통해 자력을 갖출 수밖엔 없다. 여성할당제, 전략공천 등 다른 많은 방안도 분명 있지만, 그런 제도들이 유효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라도 여성들 스스로 정치적 힘을 조직해 내야 한다. 어느 정당, 어느 조직에 있든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목소리를 갖기 위해, 더 많은 여성이 정치의 길에 나서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들이 좋은 결과를 갖게 될 것이라고 누구도 쉽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계속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의 도전을 보며, “아! 시의원이, 국회의원이, 시장이, 도지사가, 대통령이 내가 도전해봐도 되는 일이구나.”를 알게 될, 우리보다 뒤에 올 여성들 때문이다. 

최초의 미국 ‘흑인·여성 부통령’이 될 카멀라 해리스 당선인과 민권운동의 상징인 흑인 소녀 루비 브리지스의 그림자를 합성한 이미지, 화가이자 디자이너인 브리아 골러의 작품 ⓒinstagram.com/briagoeller/
최초의 미국 ‘흑인·여성 부통령’이 될 카멀라 해리스 당선인과 민권운동의 상징인 흑인 소녀 루비 브리지스의 그림자를 합성한 이미지, 화가이자 디자이너인 브리아 골러의 작품 ⓒinstagram.com/briagoeller/

19년 11월 22일 자 워싱턴포스트에 “여성 출마자들이 십대 여성들의 정치관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주 요지는 “여성 출마자들이 있는 지역의 십대 여성들은 그렇지 않은 지역의 십대 여성들보다 정치에 대해 훨씬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는 거였다. 그 후보의 당선 여부와 상관없이 말이다. 기사에서는 이를 롤모델 효과라고 설명하고 있다. 

언제 될지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는 된다. 단, 계속 도전하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그러니 가자. 단, 혼자 갈 생각하지 말자. 혼자 나가라고 등 떠밀지 말자. 팀을 만들고, 팀이 되어주자. 단번에 될 일이라고 애초에 기대하지 말자. 대신, 이 지난한 여정, 즐겁게, 건강하게 갈 방법을 찾아보자. 가다 보면 길이, 마을이, 도시가, 나라가 만들어지겠지, 믿고 가보자. 우리가 못하면 우리 뒤에 올 여성들이 해주겠지 생각하며 가보자. 

쓰고 보니 결국엔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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