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공백이 여전히 너무나 많지만, 다른 한편으로 성폭력은 그나마도 다른 영역들에 비해서는 새로운 입법이 비교적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편이다. 이 영역을 규율하는 법 조항들은 원래부터 여기저기에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어서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기가 어려웠는데, 그에 더하여 새로운 규정도 계속 생겨나다 보니 꾸준히 관심을 두고 지켜보지 않는 한은 새 법이 생기기는 했는지, 과연 어떤 내용의 법이 만들어졌는지 등을 쉽게 알기 어렵다. 하지만 법은 성폭력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무기일 터, 법이 진실로 ‘모두의 법’일 수 있기 위해서 그 기본적인 사항 정도는 변호사가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것이 좋겠다.

얼마 전 받은 새 질문이다. ‘가해자가 직접 촬영은 안 한 경우에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에 따른 처벌대상이 될 수 있는 경우가 있나요?’ 바로 이 순간이 법전 속 규정 전반을 꼼꼼히 살펴봐야 할 때다.

먼저, 종전에도 법은 의사에 반하는 촬영행위뿐만 아니라 의사에 반하여 촬영된 촬영물의 반포·판매·임대·제공 또는 그 촬영물을 공공연하게 전시·상영하는 행위를 별도로 처벌해 왔다. 2018년 12월 18일 개정·시행된 성폭력처벌법 카메라등이용촬영죄 조항은 새로운 개념을 추가하여 논란의 소지를 더욱 줄였다. 그 이전까지는 ‘촬영물’의 반포 등 행위를 처벌대상으로 명시했던 것을, 그 촬영물의 ‘복제물’을 의사에 반하여 함부로 반포하는 등의 행위까지도 명문상의 처벌대상으로 포함했다.

이에 더하여 지난 5월 19일 법 개정에서는 촬영물에 등장한 사람이 ‘자신의 신체를 직접 촬영한 경우’에도, 그 촬영물 또는 복제물을 촬영된 사람의 의사에 반하여 반포 등의 행위를 한 경우도 처벌대상임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본인이 직접 촬영행위를 한 당사자는 아니더라도 그 촬영물 또는 촬영물의 복제물을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해서 함부로 유포한 사람을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있음은 명백하다.

그리고 올해 5월 19일 법 개정으로 ‘불법촬영물’ 또는 그 촬영물의 복제물을 소지, 구입, 저장 또는 시청만 하였더라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되었다. 이 규정은 같은 날 시행됐다.  

게다가 최근의 성폭력처벌법 개정으로 허위영상물에 관한 처벌근거도 신설되었다.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2, 흔히 ‘지인능욕’이라고 불려 왔던 편집된 영상물 등의 경우를 규율하는 새 조항이다. 법 해석상 이제까지는 형사처벌 대상에 해당하기 어려웠던 행위양태들이었지만, 위 규정의 시행일자인 올해 6월 25일 이후에는 본인이 직접 ‘촬영’한 것이 아닌 촬영물, 영상물이나 음성물을 그 대상자의 의사에 반해서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형태로 편집이나 합성, 가공만 했더라도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그 미수범도 처벌된다.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3에서 촬영물이나 복제물을 이용한 협박이나 강요를 처벌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되었는데, 형법상의 협박 또는 강요의 경우는 법정형의 상한선이 정해져 있으나 위 제14조의3에서는 법정형의 하한선을 정해두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그렇기에 이론상 형법상의 협박·강요보다 훨씬 무거운 처벌도 가능하다.

따라서 위 질문에 대한 답변. 지금 시점을 기준으로 관련법 규정에 따를 때 가해자가 직접 촬영을 하지는 않았더라도 형사처벌이 가능한 경우의 수는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은 여러 가지가 있다.

조금은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올해 5월 19일의 법 개정으로 특수강도강간, 주거침입강간, 특수강간 등 법에서 직접 열거하고 있는 다수의 성폭력범죄 유형에 대한 예비·음모 행위가 새롭게 처벌대상이 되었다는 점도 주목해 볼 만하다. 이른바 ‘신림동강간미수’ 사건과 같은 경우를 염두에 둔 규정으로 보인다. 재판실무상으로는 어떠한 사실관계까지를 예비·음모 행위로 인정할 수 있느냐 하는 쟁점이 주로 다투어지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최근 성폭력처벌법에 몇 가지 개정 및 신설이 이루어지게 되어 그 형사처벌의 범위가 이전보다는 더욱 확장되었다. 다만, 형벌규정이 새로 마련되었다고 해서 과거의 모든 행위가 처벌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님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우리 헌법과 형법은 ‘행위시법주의’를 취하고 있다. 즉, 문제되는 행위가 있었던 시점에 처벌근거가 되는 형벌규정이 시행되고 있었어야만 비로소 형사처벌이 가능하며, 형벌규정을 그 규정의 시행 이전 시점으로 소급하여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예컨대,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2 규정이 신설되어 시행되기 이전에 벌어진 지인능욕 영상 편집행위나 그 편집영상물 등의 유포행위에 대해서 위 성폭력처벌법 규정을 적용하여 형사처벌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단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위와 같은 성폭력처벌법 상의 형사처벌 규정이 마련되기 이전에 발생한 ‘지인능욕’ 행위 또는 복제물의 무단 유포행위라 할지라도 이것이 특정 개인의 존엄성과 인격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위법·부당한 행위라는 근본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법적 책임에는 형사책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민사 불법행위책임에 관한 소멸시효가 완성되지만 않았다면, 비록 충분히 흡족하지는 않더라도 피해자로서는 가해자에게 그에 대한 법적 책임을 추궁할 길이 아직 열려있는 셈이다.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상담센터 자문위원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상담센터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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