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신간] 샌드라 립시츠 벰, 『나를 지키는 결혼 생활』 (김영사)

2009년,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안 뒤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로 결정하고, 2014년 남편이 지켜보는 가운데 독이 든 와인을 마시고 세상을 떠난 여성이 있었다. 그는 코넬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자 여성학 프로그램 디렉터를 겸하며 성역할과 젠더 양극화 연구에 선구적인 업적을 남긴 샌드라 립시츠 벰이다. 이미 그는 1960년대에 여성성과 남성성의 새로운 척도를 제시한 '벰 성역할 검사'를 개발할 만큼 선도적인 인물이었다.

이 책은 립시츠 벰이 ‘평등주의 결혼생활’을 실천하며 동등한 부부관계와 젠더규범에서 자유로운 양육을 직접 실험하고 탐구했던 생생한 실천기이자 자전적 회고록이다. 원제는 'An Unconventional Family'로, 그야말로 사회가 부여한 관습적인 역할을 뛰어넘어 새로운 가족을 고민한 '비관습적인 가족' 이야기다. 부모 당번제, 육아 일대일 분담, 생물학적 성별에서 자유로워지고 젠더의 탈양극화를 완벽히 이뤄내기 위한 육아 등 립시츠 벰을 중심으로 한 특별한 가족의 실험을 엿볼 수 있다. 마지막 장에선 딸과 아들이 직접 인터뷰를 통해 어머니의 삶을 증언한다. 성역할의 감옥에 갇힌 인간 심리를 해방시키고자 평생 노력한 한 여성의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으로, 여전히 결혼에 대한 관습적인 공식과 편협한 성역할 규범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다음과 같은 추천사를 남겼다.

"많은 이들이 가족으로 인해 크고 작은 고통을 받으며 살아간다. 나처럼 평생 남을 흔적을 가진 이들도 흔하다. 우리를 괴롭히는 건, 가족이 아니라 가족을 둘러싼 온갖 이데올로기, 즉 제도화된 가족이다. 본디, 가족은 실제가 아니라 신화다. 신자유주의, 팬데믹 시대에 가족의 형태는 완전히 변했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심리학과 젠더연구의 선구자 샌드라 립시츠 벰은 공동체, 친밀감, 육아에 대해 진솔하게 기록하며, 제도화된 가족, 자아, 타인으로 인해 인생이 흔들리는 모든 이에게 깊은 통찰과 위로를 준다. 우리의 고민에 이 책만 한 해결책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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