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비밀번호 해제법' 추진을 지시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
4년 전 테러방지법 저지 필리버스터에서는 국가정보원 자료제출 요구는 위헌적이라고 비판
휴대전화 비밀번호 해제법 심각한 인권침해 요소 지니고 있어
과거 본인의 발언 속에 담겨 있는 헌법정신 곱씹어야

“국민들은 자유로운 삶, 정부 기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의식하지 않는 인간으로서의 존중받은 삶을 살아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게다가 국민들은 생계를 위한 삶이 무엇보다 고단합니다. 그 고단한 삶을 정치로 위안받아야하고 위로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 테러방지법은 결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법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그 침해는 최소한에 그쳐야 하고, 침해하는 경우에도 명확해야 합니다. 법률이 없으면 범죄도 없고, 법률이 없이는 형벌도 없습니다. 죄형법정주의의 근본적인 의의는 국민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승인되는 국가 권력의 자기 제한인 것입니다.”

ⓒ뉴시스·여성신문
2016년 2월 새벽 당시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한 무제한 토론 16번째 주자로 나서 발언하고 있다. 2016.02.27. ⓒ뉴시스·여성신문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말이다.

2016년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에서 추미애 장관은 새누리당의 행보를 강하게 비판했다. 국가정보원이 조사 대상자에게 자료 제출과 진술을 요구하는 건 국민 개개인이 헌법으로 보장받고 있는 사생활 보호와 인신 보호 절차의 권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일이라고 말이다. 어느 한구석 틀린 말이 없다. ‘10년 이상 판사를 지닌 법률 전문가’라고 스스로 칭했던 표현에 부끄러움 없는 연설이었다. 그러나 4년 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휴대전화 비밀번호 해제법'을 추진을 지시했다. '휴대전화 비밀번호 해제법'은 휴대전화 비밀해제를 강제하고 불이행 시 제재하는 법률이다. '한동훈 검사장 방지법'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법률 전문가인 동시에 오랜 기간 의원 활동을 통해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정치인인 국회의원 추미애가 법무부 장관이 됐을 때 국민의 기대는 컸다. 그가 훼손된 헌법 정신을 바로 세우고, 검찰 조직의 오래 묵은 오류를 근원적으로 처치해줄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래서 정권의 변동 여부와 상관없이 사법제도가 독립적이고 안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기초가 되는 초석을 쌓아주기를 바랐다. 고작 검찰총장을 망신 주어 물러나는 일에 앞장서거나 검사장 핸드폰을 열어보기 위해 법을 제정할 것을 기대한 게 아니다.

그동안 검찰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전횡한다는 비판과 비난을 들었다. 오랜 기간 권력과 자본에 종속되어 시민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헌법적 권리를 유린했고, 사법 진행 과정을 밀실화해서 개인의 이윤 추구의 장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권력과 사법 관계자들이 범죄와 형벌을 임의대로 정하는 죄형전단주의는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 공화제도와 함께 갈 수 없는 전근대적이며 반헌법적인 시스템이다.

문재인 정부가 검찰개혁을 국정 과제의 절대 요소로 세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재판 거래를 통해 사법농단을 벌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앞선 정권이 망가트린 대한민국 헌법 정신을 시민의 일상에 정착시키는 것이야말로, ‘5월 광주’의 정신이고,’6월 항쟁’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은 민주당이 구적폐와는 다른 방식으로 정부를 운영할 것이라는 기대한 것이지, 신적폐의 등장을 원한 것이 아니다.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더불어민주당 졸속 당헌개정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더불어민주당 졸속 당헌개정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때문에 최근 추미애 장관의 행보는 우려스럽다. 특히 현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휴대폰을 범죄 의혹 하나만으로 열어보겠다는 '휴대전화 비밀번호 해제법'은 큰 인권침해 요소를 지니고 있는 반헌법적 발상이다. 피의자가 자기 증거를 인멸하는 작위 행위도 처벌하지 않는 나라에서, 단순히 휴대폰의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는 부작위 행위를 처벌한다는 모순된 상황을 법률 전문가인 장관이 모를 수 없다.

총체적 인지 부조화처럼 보이는 이 상황은 법무부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폭력 사건 이후 발생한 재보궐 선거에서 후보를 출마시키기 위해 당헌을 바꾸는 과정, 위성정당이라는 한국 정치 역사상 전무후무한 편법을 저지른 과정이 그렇다. 편법과 월법을 스스로 행하는 여당은 무엇이 문제인지 다 알면서 모른 척 강행하고 있다.

공자는 논어에서 ‘누구든 문을 통하지 않고 밖으로 나갈 수 없고, 이것이 세상의 도(道)’라고 가르친다. 무리한다고 해서 없던 문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벽을 맘대로 뚫어 문이라 우겨본 들 문이 될 수 없다. 이런 무리수를 두는 의도야말로 법을 통해 정치를 시도하는 나쁜 사례로 남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추미애 장관과 민주당의 행보에 우려를 보낸다. 그것은 그들이 능히 올바른 방식으로 올바른 일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추미애 장관이 4년 전 본인의 발언을 떠올리며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켜야 할 헌법의 정신을 상기하길 바란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