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닮았는가 

‘우주 예찬을 하고 싶어서 인간 세상에 방문한 중단편의 신.’ 『돌이킬 수 없는』을 쓴 문목하 작가의 추천사 제목이 세간에 화제를 불러온,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SF작가 김보영의 신작 소설집이다. 세계적인 SF 거장의 작품을 펴내온 하퍼콜린스를 비롯해 해외에서도 다수의 작품이 번역되고 있을 만큼 거장의 반열에 오른 탁월한 작가로, 이 책은 10년 만에 출간된 그의 소설집이다. 낯선 세계를 생생히 그려내는, 혹은 현실에 없는 이들로 현실의 모순을 그려내는 SF소설은 단지 하나의 장르로서 머물지 않고 점점 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세계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있다. 시간여행, 합성신체, 인공지능 등 무한한 과학적 상상력 속에서 인간의 폭력성과 혐오 등 지금 여기의 서글픈 현실이 살아 움직인다. 김보영 작가는 현실과 비현실을 세련되고도 정제된 방식으로 직조해내는, ‘가장 SF다운 SF를 쓰는 작가’라고도 불린다. 표제작 ‘얼마나 닮았는가’는 제5회 SF어워드 중단편부문 대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많은 독자는 이 책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작품마다 너무 여운이 길어 아껴 읽으려고 덮어두었다고. 

김보영/아작/1만4800원

 

우리는 밤마다 수다를 떨었고,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

이 책의 부제는 ‘어느 페미니스트의 우한 생존기’다. 그러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가장 먼저 강타한 지역, 우한. 저자 궈징은 20대 페미니스트 활동가로,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도시가 봉쇄되고 일상이 무너진 상황에서 기록해나간 매일의 일기를 묶은 책이다. 2020년 1월 23일부터 3월 1일까지의 기록이 빼곡히 담겨 있다. 아직 우한 봉쇄가 해제되기 전이다.

“이렇게 터무니없는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그래도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 열심히 살아가는 것도 일종의 투쟁이다.” 궈징은 꾹꾹 눌러 적는다. 그는 우한으로 거처를 옮긴 지 고작 두 달 만에 비극과 아비규환의 한복판에 맨몸으로 내던져진다. 그런데도 그가 가장 깊이 느끼는 것은 죄책감이다.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그는 재난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는 진실을 눈으로, 몸으로 느낀다. 그는 재난 속에서 더욱 취약한 상황에 내몰리는 이들을 바라보고, 그들에게 다가간다. 

코로나19로 인한 무력감과 문득 엄습하는 공포, 어디에서도 안심할 수 없다는 불안은 우리 모두가 겪는 감정이지만, 바이러스의 잔인한 습격이 지속되는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품을 수 있다면 바로 이러한 기록을 통해서가 아닐까. 밤마다 수다를 떨 수 있는 이들이 컴퓨터 화면 속에 존재하고, 무력감을 이겨내기 위해 일기를 쓰는 누군가의 문장들을 통해서. 친숙했던 일상이 일순간 생경해진 이 팬데믹 시대를 이 책과 함께 통과해보길 권한다. 

궈징/우디 옮김/원더박스/1만6500원

 

도덕적 혼란

2019년을 비롯해 세계 3대 문학상이라 불리는 부커상을 2회 수상한 현대 영문학의 거장, 마거릿 애트우드의 신작 단편선. 강렬한 표지에서 드러나듯, 한 여성 ‘넬’의 이야기가 단편마다 변주되며 등장하는 동시에, 단계적으로 그려지는 연작 소설집이다. 또한 그들이 여성으로서 살아가면서 느끼는 ‘혼란’과 불행, 문득 존재를 덮치는 불안이 담겨 있다. 흥미롭게도 이 책 속에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실제 삶이 어떠했을지 추측할 수 있는 자전적 요소가 여러모로 반영돼 있다. 애트우드의 팬이라면 알고 있을 가족적 배경, 즉 곤충학자이던 아버지를 따라 가족이 오지로 이주해 열두 살까지 제도권 교육을 꾸준히 받지 못했던 상황은 이 책 속의 배경과 상당히 흡사하다. 평생 여성의 삶이라는 주제에 천착해온 작가답게, 애트우드가 능수능란하게 구성해내는 역사적 서사 속에는 『그레이스』나 『시녀 이야기』 등 여타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날카로운 냉소와 비판의식, 그리고 그 속에 틈입하는 아름다운 순간들이 녹아있다. 

마거릿 애트우드/차은정 옮김/민음사/1만6000원

 

 

내가 뭘 했다고 번아웃일까요

이 질문에 힘없이 “그러게요”라고 답할 이들이 꽤 많을 것이다. 번아웃은 사람이 지치고 소진됐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나 상태를 뜻한다. 심각한 냉소, 효능감 저하, 소진 등을 느끼는 경우를 통틀어 일컫는 ‘번아웃’은 2019년 5월 세계보건기구(WHO)가 건강 상태에 영향을 주는 주요한 유해 요인으로 새롭게 분류하면서 더욱 주목받게 됐다. 안주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번아웃이 만연하다고 진단한다. 늘 피곤하고 지쳐 있으며, 일과를 마친 뒤 집에 왔는데도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고,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할 생각만 해도 지나치게 괴로워하는 모두에게 귀를 솔깃하게 할 ‘마음 보살피는 법’이 적혀 있다. 실제로 저자는 의료 현장에서 수많은 사례를 마주하며 과도한 업무와 치열한 경쟁, 주변의 평가와 잣대에 짓눌려 모든 일에 심한 무기력감을 느끼는 현대인들의 건강 상태를 면밀히 분석하고, 각성과 변화를 촉구한다. ‘겨우 이런 일로 힘들어해도 되는 걸까?’하고 자책하는 이들에게 피로의 자격이나 기준은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번아웃의 근본 원인은 개인이 취약하기 때문이 아니라 개인을 착취하는 기업과 사회 전반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번아웃에 다각도로 접근하는 의료 전문가의 신뢰도 높은 진단과 별개로, 이 얇은 책은 여러모로 지쳐있는 우리에게 담담한 위로를 건네줄 것이다. 

안주연/창비/1만2000원

 

5년 후

최근 방송인 사유리 씨의 자발적 ‘비혼모’ 선언과 더불어 출산 소식을 알리면서 비혼 출산에 대한 관심과 논쟁이 뜨겁다. 이 시기에 새로이 고민하며 읽기 좋은 책 중 한 권이 때마침 출간됐다. 정여랑 장편소설 『5년 후』가 보여주는 세계는 이른바 ‘결혼 5년 갱신제’가 도입된 대한민국이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혹은 주목받지 못하던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가시화되고, 인구 재생산과 돌봄 노동, 교육과 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어떤 뒷받침을 할 수 있을지 그 대안을 상상 속에서 제시해보는 이야기다. 『5년 후』 속 가상의 대한민국에서는 결혼제도의 형태에 상관없이 임신, 출산, 육아,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국가가 전적인 책임을 지고, 성별과 가족 구성에 관계없이 출생과 연계되는 모든 복지에 힘을 싣겠다는 급진적인 약속이 이뤄진다. 이상적이라 즐거워지는 동시에 현실과의 거리감에 씁쓸해지기도 하는 소설을 통해 지금 여기의 이슈를 반추해볼 수 있다.

“돌봄노동이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고, 성별과 노동에 상관없이 누구나 그와 관련된 교육과 훈련을 받고 경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면 많은 불평등이 해소될 것이라 믿는다. (...) 결국 저출생의 위기는 사회 전반의 소수자에 대한 불평등과 그에 따른 갈등을 해소하는 것에 그 해결의 열쇠가  있다.”(작가의 말 중에서)

정여랑/위키드위키/1만3500원

 

 

사랑은 왜 끝나나

『사랑은 왜 아픈가』, 『사랑은 왜 불안한가』를 잇는 감정사회학의 대가 에바 일루즈의 ‘사랑’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연구 저작이 출간됐다. ‘사랑의 부재와 종말의 사회학’이라는 부제답게 에바 일루즈가 탐구하는 대상은 사랑이 끝나는 과정이다. 이때 ‘사랑의 끝남/끝냄(unloving)’이 뜻하는 것은 이별의 구체적인 과정과 원인이라기보다는, ‘사랑의 부재’가 어떻게 사회학적으로 일종의 형식으로 자리 잡았는가에 대한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자본주의가 성적 자유를 점령해, 성적 관계와 낭만적 관계를 유동적이고 혼란스럽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에바 일루즈의 답이 이 책에 제시돼 있다. 

사랑이라고 대변되는 감정과 관계를 구매하고 소비하는 세태, 관계로부터 고립되고자 하고 쉽게 선택을 포기하는 일련의 행동 양식,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대상화하고 착취하는 경제 구조 등이 현대 사회의 관계를 구성하는 패턴의 일종이 됐다는 감정사회학자의 분석이 자못 씁쓸하다. 나는/그 사람은 왜 관계 맺기를 두려워하고 관계로부터 멀어지려 하는가? 그 질문을 품어본 사람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에바 일루즈/김희상 옮김/돌베개/1만6000원

 

신뢰 연습

‘당신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한국계 미국인 작가 수잔 최의 장편소설로, 한국계 작가 최초로 미국 최고 권위의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작품이자 미국 출간 후 단번에 베스트셀러에 오른 작품이다. ‘신뢰 연습(Trust Exercise)’은 소설 속 예술학교 학생이던 두 주인공 세라와 데이비드가 참여한 연기 수업이자, 선택과 합의 등 인생의 무수한 순간들에 필요한 신뢰의 문제를 상징하는 은유이기도 하다. 침묵하기, 눈 가리기, 탁자나 사다리에서 뒤로 자빠지면 받아내기 등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신뢰를 연습하는 청소년 학생들의 모습 속에서 독자는 함께 신뢰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된다.

1980년대의 예술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카리스마 있는 연기 교사 킹슬리 선생이 이끄는 ‘신뢰 연습’ 수업에서 시작되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소용돌이치듯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결국 한 여성의 가슴 아픈 과거의 진실이 무대 위에서 밝혀진다. 권력 남용, 성적 합의, 불완전한 기억과 상처, 우정과 신뢰의 문제가 섬세하고도 강렬하게 펼쳐진다.

수잔 최/공경희 옮김/왼쪽주머니/1만5000원

 

다시, 올리브

프란시스 맥도먼드가 주연을 맡은 HBO 미니시리즈로도 제작돼 화제가 된 바 있는 『올리브 키터리지』의 후속작이 출간됐다. 평화로워 보이는 작은 바닷가 마을 크로스비에 사는 수학 교사 ‘올리브 키터리지’는 자칫 괴팍하고 냉담해 보이는 여성으로, 이야기는 그를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 각자의 인생사를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혼란과 두려움, 실수와 후회를 내면에 고요히 끌어안고 묵묵히 살아가는 이들의 서사는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줬다. 그 중심에는 누구보다 솔직하게 생을 대면하는, 그래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올리브 키터리지가 있다. 작품마다 예리한 통찰과 절절한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탁월한 소설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후속작 『다시, 올리브』에서 시간이 더 흘러 노년이 된 올리브를 등장시켜 두려움과 회한, 외로움과 체념이라는 복잡한 감정을 잔잔하고도 또렷하게 그려낸다. 스쳐 지나가는 개인적인 일상 속에 가장 보편적인 진리가 자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스트라우트의 최신작을 읽다 보면 숱한 비극 속에서도 귀한 사랑과 연대의 순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게 될 것이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정연희 옮김/문학동네/1만6000원

 

다정한 매일매일

추위가 엄습해 이불 속으로 파고들게 되는 겨울에 따뜻한 차와 빵을 곁에 두고 읽기 좋은 백수린 소설가의 첫 산문집. 다정한 제목 밑에는 ‘빵과 책을 굽는 마음’이라는 부제가 쓰여 있다. 백수린 소설가는 빵집 주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과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 사이에서 고민했을 정도로 베이킹을 사랑한다. 책을 읽다 음식, 특히 빵이 나오는 구절을 만나면 그 책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느낀다는 이답게,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속 생일케이크, 필립 로스 『울분』 속 파스트라미 샌드위치, 다와다 요코 『여행하는 말들』 속 바움쿠헨, 제임스 설터 『소설을 쓰고 싶다면』 속 티라미수 등 다양한 책 속에 등장하는 빵을 매개로 작가가 애정을 담아 바라보는 세계의 면면이 드러난다. 책과 빵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부드럽고 따스한 위로가 된다.

“어떤 의미에서 내게 소설 쓰는 일은 누군가에게 건넬 투박하지만 향기로운 빵의 반죽을 빚은 후 그것이 부풀어 오르기를 기다리는 일과 닮은 것도 같다.” 

백수린/작가정신/1만4800원

 

유진과 유진

아동청소년 문학에 한 획을 그은 이금이 작가의 장편소설 『유진과 유진』의 개정판이 출간됐다. 2004년 최초 출간 당시, ‘유진’이라는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청소년 여성의 내밀한 이야기를 통해 아동성폭력이라는 사회적 이슈와 더불어 이 시대 청소년이 겪는 일상적인 폭력과 상처를 직시한 소설이라는 점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청소년 당사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낸 작품을 찾아보기 쉽지 않던 시기에 출간된 작품으로, 흡인력 강한 서사와 미스터리한 구성 속에서 드러나는 상처의 기억에 관한 이야기는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공감할 수 있었기에 꾸준히 사랑받아왔다. 두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성폭력 피해자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을 건네고 싶었다고 말하며, 이금이 작가는 개정판 ‘지은이의 말’에서 오랫동안 밝히지 못한 내밀한 이야기를 고백한다. 

이금이/밤티/1만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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