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순회공연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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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신자 씨는 사람들이 그의 춤을 보고 자유롭고 행복해 졌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사진·민원기 기자> ▶

'구도의 춤꾼' 홍신자(63). 자연과 하나되는 자유를 갈구해 온 그가 이번에 남미로 떠난다. 외교 통상부 후원으로 오는 10월 9일부터 한달 간 이어질 '홍신자 남미 순회 공연'에서 홍씨는 '미궁', '순례', '웃는 여인' 등 전위성, 실험성 가득한 작품들을 무대에 올려 한국 현대 무용의 진수를 보여줄 예정. 10월 13일, 14일 페루 리마에서 출발해 칠레 산띠아고, 브라질 상파울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순회한다.

지난 9월 26일부터 10월 5일까지 전주에서 열린 '2003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는 국악인 원일과 호흡을 맞춰 삶을 찰나의 꿈으로 표현한 '구운몽'이라는 이색적인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아홉 가지 삶의 형태를 꿈으로 표현한 '구운몽'은 전작 '미궁'처럼 소리와 몸짓이 어우러진 작품. 춤이라는 고정된 틀을 벗고자 하는 홍씨에게 소리는 좋은 매체로 다가온다.

홍씨의 춤에 담긴 일관된 화두는 삶과 죽음, 인간과 자연, 한계를 초월하는 자유다. 자유롭기 위해 지난 93년 경기도 안성군 죽산면에 터를 잡았고,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산중턱에 웃는돌 명상센터를 세워 명상캠프, 물단식, 포도단식, 마사지 캠프 등을 열며 '무용가 홍신자'가 아닌 '자연인 홍신자'를 만끽하며 살아 왔다. 그렇다고 춤과 에술을 멀리한 것은 아니다. 홍씨가 주최해 온 죽산국제예술제는 내년이면 벌써 10회 째를 맞는다. 무용으로 시작된 축제가 갈수록 음악, 연극, 설치 등 다채로운 작업들로 채워져 볼거리가 많아졌고, 예술 공연을 낯설어 하는 일반인들도 즐기는 행사가 되었다는 것은 홍씨에게 꽤나 보람된 일이다.

최근 데뷔 30주년 기념 공연을 마쳤고, '춤꾼 홍신자'를 스스로 돌아 본 <나는 춤추듯 순간을 살았다>(열림원)를 펴내는 등 30년 춤 인생의 전환기를 맞고 있는 홍씨를 만나보았다.

- 죽산국제예술제가 벌써 10년을 맞았다. 죽산에서의 생활은 어떠신가.

“죽산은 평화로운 곳이다. 내가 사는 곳은 천장에 구멍이 뚫려 있어 잘 때도 하늘을 보면서 잔다. 문도 열어놓고 살고. 사방이 대자연인 것이다. 숨통이 뚫리고 행복하다. 예술제는 처음에는 소규모의 매니아들끼리만 모인 축제로 출발했는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되었고, 이제는 그냥 시골 아저씨, 아줌마들도 오는 대중적인 축제가 됐다. 재미있는 점은 문외한들도 오면 뭔가 하나씩은 얻어간다는 것이다. 10주년 행사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할 것이고, 한국에 오기 어려웠던 분들도 많이 참여하게 준비하고 있다. ”

- 얼마 전 데뷔 30주년 기념 공연을 하셨다.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다.

“주변에서 많은 관심들을 가져주셨다. 이때까지의 작품 가운데 진수들이 정리되어 나오니까 나도 좀더 자신이 생긴다.”

- 최근 산문집 <나는 춤추듯 순간을 살았다>를 내셨다. 어떤 책인가.

“내가 왜 춤을 추게 됐는지, 작품 준비과정과 공연 에피소드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사도라 덩컨의 후계자들, 음악가 존 케이지, 김덕수, 황병기, 백남준 등 내 예술인생에 영향을 주고받은 인물들과의 추억을 담았다. 작품에 대한 흑백 사진도 꽤 많이 들어갔다. 그 동안 많은 책을 냈지만 내 춤의 철학에 대해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춤을 추는 순간이 나에게는 가장 살아있는 순간이며 '지금 여기'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 춤추는 것이 바로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이야기 등을 담았다.”

- 웃는돌 무용단을 만드시고, 최근작도 '웃는 여인'이다.

“점점 자유로움을 느낀다. 자유로워지니까 모든 것이 즐겁게, 하나의 꿈처럼 보인다. 심각할 것도 괴로울 것도 없이 자연처럼 평안하다. '웃는 여인'은 중년이 되면서 여성들이 느끼게 되는 쓸쓸함, 소외됨에 대한 작품이다. 내가 여성이니까 여성들이 더 쉽게 내 춤을 이해하는 것 같고, 나의 말걸기도 더욱 여성에게 친근해지는 것 같다. 내 춤을 보며 그냥 행복했으면 좋겠고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한계가 없어지는 그런 것을 경험했으면 좋겠다. 항상 우리는 고정관념 속에서 살고 그것을 한계라고 느낀다. 그런 한계가 없는, 거침이 없는,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느꼈으면 좋겠다. 그 한계라는 건 항상 두려움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 여전히 어머니의 고쟁이를 입으시나. 어머니의 고쟁이로 상징되는 전 세대 여성에 대한 애착이 있으셨는데.

“초기에는 있었다. 지금은 자유로워졌다. 무엇인가에 집착하기보다 바꾸고 빼내고 이런 과정들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고쟁이는 좋아한다. 가끔 진도 입지만.”

- 춤 인생 30년을 정리하며 특별히 애착 가는 작품이 있으시다면.

“10개정도 되는데, 존 케이지가 살았을 때 같이 했던 '포월스', '나선형의 대각선', '섬', 이번에 남미에 가는 '순례', 최근에 한 '웃는 여인' 등이 그것이다. '웃는 여인'은 내가 60대를 맞이하면서 일생동안 한 하이라이트를 조명한 작품이다. 앞으로 많이 공연하고 싶다. 소리 공연도 30년 전에 했을 때는 뭔가 얼떨결에 해서 이상하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지금쯤은 사람들이 보다 편안하게 듣지 않을까 싶다. 이번 전주 공연에서는 '미궁'을 더 와일드하게 70분 동안 한다.”

- 향후 계획은 어떠신가.

“당장은 남미를 가게 될테고, 계속 열심히 춤추고 웃으며 살 것이다. 데뷔 40주년 기념 공연은 뉴욕에서 하고 싶다.”

임인숙 기자isim123@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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