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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백/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9월 29일 석간에 송두율 교수가 방북의 절차로써 1973년 노동당에 입당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학시절을 함께 보낸 동료나 후배들도 충격에 휩싸였다. 또한 “앞으로 한국의 실정법을 염두에 두고 살겠다”는 그의 고백에서 우러나오는 오랜 고독한 세월의 무게 때문에 우리는 말할 수 없이 마음이 아팠다.

송교수의 귀국을 위해 애썼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관계자들이 힘들어할 때마다 나는 그들을 위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울했던 과거를 청산하는 마지막 작업을 하고 있으니, 조금 더 힘내라고 말이다.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고, 과거를 둘러싼 기억문화를 정상화하지 않고서는 한 사회의 민주주의는 제대로 발전할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우리는 지금도 확인하고 있는 셈이 아닌가.

내가 아는 송두율교수는 너무 순수해서, 복잡한 정치게임의 틈바구니에서 살아가기에는 부적합한 인물이었다. 그의 부친은 동경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분으로 식민지 시대 지식인은 아무리 유능하여도 학문을 통해 성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이 자각하신 발명가였다. 그는 이 땅에서 인문과학을 제대로 배울 수 없다고 판단하고, 아들로 하여금 어학능력만을 신속히 연마한 후 유학을 떠날 것을 충고했다고 한다.

대학 졸업 이후 바로 독일 유학 길에 올랐기 때문에 한국 사회의 복잡한 정치적 맥락에 대해 경험할 기회가 송교수에게 제한되었던 것 같다.

신출내기 서독 유학생인 우리들에게 송교수는 신화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하버마스에게서 4년여만에 학위를 끝낸 출중한 학자였고, 특히 헤겔, 마르크스, 베버의 아시아관을 분석하여 세 학자 모두의 아시아관이 유럽중심적, 제국주의적이라는 그가 내린 명석한 결론에 우리는 매료되었다.(이 책은 이후 한길사에서 <계몽과 이성>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70년대 말, 80년대 초는 우울한 시대였다. 나 역시 유학길에 대해 섭섭함을 감추지 못하는 (형무소를 다녀온) 빵잽이 동료들의 환송회를 받고 떠났고, 유학 중 가장 친한 친구는 임신을 한 채 감옥생활을 보냈다.

유학시절의 우리를 사로잡았던 죄책감 때문에 우리는 '지식인으로서의 빚갚음'을 유난히도 의식하였다. 더구나 70,80년대는 지적으로 종속이론이 풍미했고, 셍하스와 같은 저명한 경제학자는, 외채에 시달리는 남한에 비해, 북한경제를 종속을 극복한 드문 사례로 극찬했던 시대이기도 했다.

송교수의 일단의 행동은 이런 70, 80년대의 시대적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료보관소가 베를린에 밀집해 있어서, 방학이 되면 서베를린에 가 있어야했던 나는 선배들과 함께 송교수 댁에 초대받곤 했다.

송교수 부부사이에는 특이한 가사분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송교수는 운전을 할 줄 몰랐고, 관공서에서의 일 처리와 같은 세상사에 놀라우리 만치 무지하였기에 이런 일들은 부인인 정정희여사가 처리하였고, 대신에 송교수는 요리를 담당했다.

그의 요리솜씨는 거의 수준급이어서 그는 생선초밥이나 요즈음 유행하는 퓨전요리를 멋들어지게 만들어내었다. 교포사회나 정치단체 사이의 혼탁한 인간관계나 갈등에 송교수는 항상 피곤해 하였고, 그래서 더욱 조국을 그리워하였다.

아직 때가 덜 묻은 우리 후배들은 그에게 조국의 화신이었고, 우리와 대화를 나누던 중에 그는 거의 만취상태에 이르러 인사불성이 되곤 했다.

부인 정정희여사는 아파트 베란다에 심어놓은(이제는 한국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봉숭아와 코스모스를 바라보며 살아왔고, 한국 이야기 끝에는 늘 눈물을 터트렸고, 주변사람의 배신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순진한 분이었다. 이 부부는 평등한 부부관계를 잘 실천하셨던 분들이었다.

송교수의 행동이 실정법을 위반하였음을 부인할 수는 없고, 공권력의 입장에서는 만인에게 적용하는 보편적인 잣대를 강조할 수밖에 없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살아왔던 시대에 대한 맥락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뿐 만 아니라 그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정말로 그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그가 학문 활동을 하는 일이다. 그의 품성, 이 땅을 향한 그 강렬한 향수 그리고 그의 학문적 명석함을 알고 있는 우리 후배들로써는 그가 한국에서 자신의 이론적 업적을 펼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경계인으로 살아올 수 밖에 없었던 송두율교수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그가 이 땅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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