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크레딧' 김주희 지음/현실문화 펴냄
'레이디 크레딧' 김주희 지음/현실문화 펴냄

 

17세 소녀는 파리에 사는 편안한 중산층 가정의 고등학생이다. 여름 바캉스 중에 한 소년과 밋밋한 ‘첫경험’을 하고 돌아온 소녀는 인터넷에 자신의 사진을 올리고 성판매를 시작한다. 프랑수아 오종의 영화, ‘어리고 예쁜’(2013)의 소녀 이야기다.

주인공 소녀는 어느 날 충격적인 사고를 맞는다. 단골인 부자 노인이 성관계 중 사망한 것이다. 경찰 조사로 소녀의 ‘일탈’이 엄마에게 알려지자 분노한 엄마는 소녀를 일상으로 되돌리고 정신과 상담도 받게 한다. 영화 속 한 장면에서 상담 의사는 소녀가 시간당 얼마를 벌었는지 알게 되는데 의사의 시간당 상담비가 푼돈일 만치 거액이었다. 피상담자 소녀와 의사의 ‘소득 격차’가 드러나는 순간, 의사의 심리적 타격을 인지한 소녀를 대비해 보여준다. 규범적 위계질서 안에서 안락하고 ‘자본의 권위’에 순응한 만큼 당황한 의사와 ‘성경제’에 새로운 주체로 편입되었던 소녀의 자신감을 아이러니한 유머로 잡아낸 연출이 돋보였다. 유혹적인 성의 권력효과와 규범의 위반성을 탐험하는 오종 감독의 영화 ‘어리고 예쁜’은 현실의 반영보다는 감독의 의도로 구상한 작품이다. 자유롭게 현금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영화 속의 소녀는 상상적 성경제에서 가능하고 대다수 성매매 여성들은 잡을 수 없는 현실이다.

현실의 성판매는 ‘수위를 넘는’ 폭력에 노출되고 사회적 낙인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다급한 여성들이 빚(선불금)을 지고 성매매에 편입된다. 성판매를 자발적 ‘성노동’이며 노동권리로 주장하는 입장도 있지만 ‘노동’이 지향하는 자유롭고 건강한 자아실현의 수단과는 좀 괴리가 있다. 무엇보다도 성매매를 경험하는 여성들은 성노동자의 정체성을 선택하기보다는 대부분 빨리 빚을 갚고 탈성매매를 소망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여성들이 성매매 수익을 낼 수 있는 한, 높은 이자를 물도록 포획된 구조에서 미래의 소득까지 바쳐야 할 독성적 성매매 생태에 놓이게 된다. 빚계약에 물어야 하는 갖은 수수료와 하루 결근에 내야 하는 거금의 벌금과 정해진 기간 내에 고리 이자를 다 못 내면 ‘꺾기’와 같은 약탈적 채무 재계약을 해서 첫 고리대에 이자를 더해서 내야 하고 급한 경우엔 초고리 일수까지 받아 가며 기한 없이 연기되는 미래에까지 이자를 갚느라 성매매에 갇히게 된다. 정부는 고질적인 성매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지 않은 재정을 투입하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이전의 문제 파악과 해법이 잘못됐던 것이다.

근 20년간 성매매를 심층연구한 여성학자 김주희는 그의 책, ‘레이디 크레딧’(2020)에서 성매매를 ‘성별화된 경제체제의 문제’로 접근하지 못한다면 성매매로 수탈당하는 여성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한다. 2004년 ‘성매매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기대대로 성매매가 퇴출되는 대신에 30조 이상의 성매매 시장(아직 정부의 공식적 조사통계도 되어있지 않고 일각에선 실제로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보기도 한다)으로 대확장하는 충격적인 현실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성매매를 개인의 빚과 소득의 문제로만 접근하면 안 되고 성매매여성들이 금융경제체제에서 ‘금융화’돼 확대되는 금융시장의 수익채권으로 유통되는 근원적 문제로 적시한다. 과거에 대면적으로 업주에게 ‘선불금’ 빚을 졌다면 비대면적 신용대출 계약을 하게 된 것이다. 여성들의 빚은 비대면적 담보채권이 되어 금융시장에서 유동자산으로 판매 유통되고 있다고 한다. 개인소득(성매매 여성소득)에서 금융이익을 직접 떼어가는 식이 된 것이다. 대부업자들, 제2금융권과 은행까지 업소 여성(‘아가씨’) 신용대출을 ‘약탈적으로’ 안기면서 여성들의 빚은 담보채권상품이되고 채권 유동화 기법에 따라 부실채권이 되면 채권자들은 매각하면서 수익을 얻고 확장되는 파생상품 시장의 상품으로까지 개발된 금융공학을 따라 움직인다. 하지만 채권추심의 궁극적 채무자인 여성들만이 고리대를 물면서 채권자들의 수익을 발생시키고 자신들의 빚은 더 쌓여가기 때문에 성매매를 그만둘 수 없게 된다. 남성보다 여성이 일반여성보다 성매매 여성이 약점 잡힌 안전한 채무자라서 채권매입자들에게 안전한 수익을 보장하기도 한다. 탈성매매가 거부되는 한 유흥업소의 수익은 오르고 성매매시장의 규모가 수십조로 확장해온 것이다. 

‘레이디 크레딧’은 유흥업소, 대부업자, 사금융회사, 은행, 채권거래자들, 성형클리닉, 미용, 의류대출업체 등을 포함해서 백명 단위의 ‘아가씨들’을 고용하는 대형 룸살롱의 세금을 걷는 국가까지, ‘금융화’된 성매매 여성들과 그들의 미래까지 직간접적으로 수탈하는 있을 수 없는 현실을 밝혀준다. 여성을 ‘서비스’로 접대에 이용하는 우리 사회의 독성적 접대문화는 반드시 추방돼야 하고 고리 대출의 합법 상한은 낮추고 금융권의 부당한 ‘합법적’ 채권거래를 금지해야만 한다. 여성들이 채권상품으로 물화돼 성매매 수탈을 경험하면서도 ‘자유’로 성판매를 시작했고 대출계약도 은행의 ‘신용’ 맛에 길들여진 본인이 했으니까 고리를 물어야만 한다고 성매매여성 스스로 믿게 만드는 사회경제체제와 ‘도덕성’은 취조되고 거부해야 한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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