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TV 드라마 ‘며느라기’

카카오TV 드라마 ‘며느라기’.
카카오TV 드라마 ‘며느라기’.

 

관객이나 시청자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스릴러 장르에 등장하는 악당들은 대부분 보통사람과 확연히 다른 ‘악’ 그 자체인 경우가 많다. 평범한 ‘나’ 혹은 ‘우리’와 너무도 다른 악당들의 존재는 나의 안전과 평온함을 깨지 않는 ‘저 세상의 존재’라는 점에서 안도감을 준다. 만약 평범한 나의 이웃이, 내 가족이 악당이라면? 상상만으로도 소름끼치는 일이다.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한 한나 아렌트는 악의 근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아주 평범하다고 말한다. 저 멀리 동떨어지고 구별된 것이 아니라, 악은 평범함 속에 도처에 있으며, 평범한 사람이 악을 저지른다는 것이다. 이들의 악행은 동기도 신념도 선악의 의도도 없는 행위이지만 분명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가한다. 웹드라마 <며느라기>(카카오TV)는 가부장제의 대리인들이 행하는 평범함의 외피를 두른 채 가해지는 가부장제의 억압을 떠오르게 한다.

<며느라기>는 수신지 작가가 쓴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여 매주 토요일 ‘카카오TV’에 업로드 되는 웹드라마이다. 아직 2회까지만 공개되었지만 누적조회수가 200만 회를 상회할 정도로 큰 반향을 모으고 있다. 결혼한 이후 대부분의 여성들이 겪게 된다고 하는 ‘며느라기’를 겪는 갓 결혼한 민사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며느라기는 결혼한 여성들이 사춘기, 갱년기처럼 자연스럽게 겪게 되는 특정 시기로, 시댁 식구한테 예쁨 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어 하는 시기를 뜻한다. 며느라기 증상은 보통 1~2년 정도 지나면 사라지지만 사람에 따라선 10년 이상이거나 아예 안 끝나기도 한다. 드라마는 착하고 싹싹한 며느리라는 칭찬을 받고 싶은 민사린이 ‘네’, ‘괜찮아요’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하면서 겪게 되는 시월드의 이야기이다.

웹툰 ‘며느라기’ ⓒ수신지 작가
웹툰 ‘며느라기’ ⓒ수신지 작가

 

민사린의 시댁 식구들은 막장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소리를 지르거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그야말로 보통의 사람들이다. 며느라기를 겪고 있는 민사린이 좋은 며느리가 되고자 애쓰는 일들에 대해 ‘고맙다’는 말을 할 줄 안다. 그런데 남편과 시댁 식구의 말과 행동은 묘하게 민사린의 마음을 콕콕 찌른다. 시어머니의 아침 생신상을 차리면 좋아할 거라는 시누이의 SNS 메시지, 자신이 차렸지만 며느리에게 너무도 먼 반찬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시댁 식구들, 며느리의 회사 일에는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면서 소파에서 졸고 있는 아들이 안쓰러운 시어머니, 설거지하는 며느리를 제외하고 자연스럽게 담소를 나누며, 변변한 과일조차 남기지 않는 이들의 모습은 담담하게 그려진다.

주인공의 수고와 며느리의 역할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시댁의 모습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전개되면서 주인공인 민사린과 시청자의 마음은 답답해져 간다. 어느 누구도 악당이 아니라는 점에서 민사린이 경험하는 시월드의 모습은 시청자의 마음에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시댁 식구들의 모습에 비판이 가해진다면, 아이히만이 ‘나는 잘못이 없다. 나는 그들을 죽이라고 직접적으로 명령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위에서 내려온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그들은 ‘나는 잘못이 없다. 나는 며느리/올케/아내에게 그렇게 하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예전부터 우리 어머니들이 해왔던 관습을 따랐을 뿐이다’라고 항변하지 않을까? 오히려 현 세대보다 독한 시집살이를 감내한 시어머니, 그것이 전통이자 화목한 가정의 모습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시아버지, 어머니의 며느라기를 보고 자란 아들과 딸들은 그냥 원래 있던 방식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켰을 뿐이라 주장할 것이다.

카카오TV 드라마 ‘며느라기’.
카카오TV 드라마 ‘며느라기’.

 

드라마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내재된 가부장제가 얼굴을 살짝 바꾸고 ‘당연하다’는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지금도 며느리들을 옥죄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정혜린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변화의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 민사린이 며느라기의 시절을 감내하며 그 안에서 ‘나는 뭔가 다를 거야’라는 희망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다면, 민사린의 형님인 정혜린은 일찌감치 며느라기에서 벗어나 가부장제의 틀을 깬 인물이다. 그녀는 본인과 시어머니가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는 시댁식구들의 태도에 이의를 제기하고 ‘당연한 게 어디 있어요?’라는 말을 남기며 당당히 시댁에서 걸어 나왔다. ‘당연한 것은 없다’는 정혜린의 태도는 예전보다 나아졌다며, 1년의 고작 몇 번이라고, ‘효’라는 이름으로 강요되는 가부장제가 민사린들을 설득하는 속삭임에 ‘아니요’, ‘괜찮지 않아요’라고 이야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이히만이 위의 명령을 성실하게 수행했다고 해서 그가 저지른 범죄가 면죄 받을 수 없듯이, 보통의 일상에서 가해지는 가부장제의 억압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대리인이 될 수 있음을 <며느라기>는 보여준다. 앞으로 드라마에서 민사린이 겪게 되는 며느라기와 그 속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면서 성장하는 과정이 기대된다. 그것을 지켜보면서 전국의 민사린들도 함께 생각하고 깨어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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