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지 학습기회' 발언 논란 이정옥 장관 교체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여성가족부 이정옥 장관이 결국 교체됐다. 지난 4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토교통부 김현미 장관과 여가부 이정옥 장관의 교체 사실을 밝혔다. 이 장관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폭력 사건 늦장 대응과 내년 4월 이루어질 서울과 부산의 보궐선거를 두고 “전국민 성인지 집단 학습 기회”라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다. 앞서 8월 3일에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이 권력형 성범죄인가’를 질문에 “수사 중인 사건의 죄명을 규정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답해 2차 가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사상 초유의 ‘묵언 장관’ 사태가 터진 것은 지난 2일이었다. 여성가족위원회 야당 간사인 국민의힘 김정재 의원은 장관의 2차 가해성 발언을 지적하며 “여야 합의로 이 장관의 발언을 제한한 채 (전체회의를) 진행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어떠한 질의응답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장관은 침묵 속에 회의를 끝마쳤다.

누군가는 “속 시원하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나는 이 장관에 대한 논란과 묵언 사태, 경질로 이어지는 흐름이 크게 속 시원하진 않았다. 물론 이 장관이 국민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장관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여성인권의 신장을 위해 노력해야하는 장관이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한 점과 늦장 대응을 한 점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여성가족부 장관이었기 때문에’라는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의원들이 장관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봐왔지만 아예 발언권을 빼앗아버리는 일은 처음 보았다. 그 모습이 정의구현이라기보다는 여가부의 위상과 위치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 정부 전체 예산의 0.2%밖에 차지하지 않는 여성가족부의 예산과 탁현민을 경질하라는 바른말 한 마디에 물러나야했던 전대의 장관의 모습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정부 부처 중 가장 권한이 없는 여가부가 점점 더 많은 책임 위에 서야할 때, 우리는 ‘사이다’ 대신 근본적으로 다른 것들을 고민해봐야 한다.

지난달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회의는 파행을 반복했다. 여가부 예산안 심의가 이루어져야했던 11월 10일 회의는 10분 만에 파행됐다. 12일 예산 심의 소위도 열리지 못했다. 17일 예산안 의결을 위한 전체 회의도 무산되었다. ‘n번방’ 사건이 사회를 흔들었지만 아동·청소년 성보호 예산은 단 1.8%만 증액되었고 충분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십대여성인권센터를 비롯한 255개 단체는 성명을 내고 국회를 규탄했다.

7월에는 여성가족부 해체를 주장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나흘 만에 10만 명이 넘었다. 이때다 싶어 정치인들은 “여가부 해체”라고 외쳤다. 일하는 국회법이 운영위를 통과했지만 여전히 국회 여가위는 겸임상임위로 남았다. 그나마 문체위로 여가위가 통합되지 않아 다행이라 말해야할지 난감하다.

정치의 본분이 지적을 넘어 해결로 향해야한다고 믿는다면 이제야말로 여가부를 다시 세울 때이다. 쥐꼬리보다도 못한 예산, 예산 대부분 ‘여성’이 아닌 ‘가족’ 분야에 쓰이는 현실, 아직도 겸임 상임위인 국회 여성가족위, ‘일하는 국회’ 속에 포함되지 않은 ‘여성 문제’ 등. 우리가 가져야하는 것은 더 나은 장관뿐만이 아니라 더 나은 여가부이기도 하다.

신민주 기본소득당 젠더정치특별위원회 위원장. ⓒ기본소득당
신민주 기본소득당 젠더정치특별위원회 위원장. ⓒ기본소득당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키워드
#여성가족부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