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에밀리 정민 윤 작가
시집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으로
‘위안부’ 피해자 목소리 되살려
역사·여성폭력 새롭게 사유하게 해

“시는 역사를 담는 대안적 공간...
세상 떠난 피해자들 목소리 널리 알리고파
살아있는 사람들의 역할 계속 찾아나가야”

여성신문과 인터뷰 중인 에밀리 정민 윤(29) 작가. Ⓒ홍수형 사진기자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에 시인의 목소리를 덧붙여 특별한 방식으로 구성한 시집이 올해 화제가 됐다. 지난 8월 출간된 시집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열림원)은 한국에서 태어나 열 살에 캐나다로 이주한 여성 시인 에밀리 정민 윤(29)의 시집이다.

윤 작가는 미국 사회에서 동양인 여성으로 살아가며 한국의 역사와 여성 폭력의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 왔다. 미국에서 2018년 먼저 출간됐고, 올해 나온 한국어판은 한유주 소설가가 번역을 맡아 주목받았다.

윤 작가는 8월 귀국해 내년 1월까지 한국에 머물며 한국 여성 시인들의 시를 연구하는 중이다. 그를 직접 만나 시집에 관한 이야기와 현재 한국의 여성 혐오 및 폭력 관련 이슈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에밀리 정민 윤 작가의 시집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열림원)
에밀리 정민 윤 작가의 시집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열림원)

- ‘위안부’ 문제를 시의 언어로 다뤘다. 미국 출간 당시의 반응은 어땠나?

이 책을 통해 역사를 알게 됐다는 분이 많았다. 심지어 아시아계 미국인 독자들도 어렴풋하게만 알고 있던 이야기들을 시로써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돼 새로웠다고 했다. 작가가 미국에 오래 살았는데 어떻게 이 이슈에 관심을 갖게 됐냐고 묻는 한국 분들도 있었다. 그런데 미국에선 ‘한국인은 당연히 한국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정말 경계인의 삶을 살고 있구나,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 작가에게 역사적 폭력, 특히 여성폭력 이슈가 유독 특별하게 다가오는 지점이 있었을 것 같다. 책을 쓰기로 다짐한 계기가 있었나?

뉴욕에서 석사 과정 중 다른 시인들과 우리의 문화나 역사를 어떻게 시로 옮길 수 있을까 얘기하다가 ‘위안부’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을 쓰기로 했다. 그 시인들 중에는 살바도르 내전을 피해 미국으로 온 이민 2세대도, 크메르 루주(1970년대 대규모 학살을 자행한 캄보디아 정권)를 피해 미국에 온 난민의 자녀도 있었다. 그들과 한국의 역사 중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 미국에서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내러티브는 무엇일지 생각했다. 이 책은 ‘위안부’ 여성들의 목소리를 중심적으로 담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다른 역사와 연결해서 읽어주면 좋겠다. 

 

- ‘위안부’ 문제가 민족주의적으로 해석되기보다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여성폭력의 문제로서 읽히길 바란다고 했다. 

그렇다. 시집은 그런 이슈를 논할 수 있는 대안적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위안부’ 역사 문제가 국가와 국가의 문제로 환원되기도 하고 굉장히 정치화돼 있지 않나. 그런데 시에는 오롯이 그들의 목소리를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 주어진다. 그래서 대안적 이야기 방식으로서 시, 문학이 필요한 게 아닐까. 

 

- 기존의 증언 텍스트를 재료로 삼아 또 다른 목소리를 추가하고 재배열해 창작하는 ‘찾은 시(found poetry)’라는 기법으로 쓰인 시들이 많다. 이 기법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나?

시는 논픽션과 픽션 사이의 장르다. 오션 브엉이라는 작가는 자전적 내용의 소설에 대해 “진실로 시작해 예술로 끝내고 싶었다”고 했다. 나 역시 시를 쓸 때 그런 목적을 가졌던 것 같다. 내가 완전히 만들어내는 건 불편했고, 피해자들의 증언을 단순 복원하면 그 나름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찾은 시’는 일종의 균형 잡기(balancing act)다. 기존 텍스트를 사용하지만, 시로 만들기 위해 재배열하면서 좀 다른 옷을 입힌 것이다.

 

- ‘위안부’ 피해자의 실제 목소리를 재가공하는 데 대한 두려움도, 폭력적이고 힘겨운 내용을 다루는 어려움도 있었을 듯하다.

그렇다. 특히 출판을 앞두고 많이 고민했다. 자유롭게 쓸 순 있지만 공유한다는 건 새로운 의미가 생기는 일이다. 남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모르겠고, 피해자들의 이름을 걸고 출판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더 생각해야 할 것 같아 정말 무서웠다. 사실 증언에 손대는 것 자체가 무서운 일이다. 이야기들을 훼손하고 싶지도 않고, 어떤 식으로든 누를 끼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첫째는 내가 빌린 목소리들, 그들이 지금 직접 말할 수 없는 상황인가? 둘째는 내가 그들의 목소리를 빌려 글을 쓰는 것이 그들과 그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가? 아주 어렵게 ‘그렇다(yes)’고 결론 내렸다. 증언자들은 다 별세했고, 내가 활동하는 미국 문단엔 (‘위안부’) 역사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내 글쓰기가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겠구나,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나의 목소리를 더해 연장하는 것에도 의미가 있겠구나 싶었다. 정말 어려운 과정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스스로 질문해야 할 것 같다. 윤리의식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고, 몇 년 후 내 책에서 또 다른 문제가 보일 수 있다. 그런 담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판에 귀 기울이며 작가로서 뭔가를 재현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아있는 사람들의 역할은 무엇일지 계속 찾아 나가야 한다.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 시집의 '증언들' 챕터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7인(황금주, 진경팽, 강덕경, 김상희, 김윤심, 박경순, 김순덕)의
실제 증언을 토대로 창작된 '찾은 시'가 수록되어 있다. 페이지는 세로로 구성되어 있다.

 

- 한국 문단에서 시는 내면의 정황을 주관적으로 표현하고 언어의 미적 속성을 벼려내는 데 집중하는 장르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역사적 이슈를 깊이 조사하고 연구해 시로 옮기는 것 자체가 한국 독자들에겐 새로운 시도다. 왜 하필 시를 택했는지 궁금하다. 

시의 언어란 굉장히 특별하다. 물론 모든 작가가 모든 장르에 대해 그렇게 얘기하겠지만, 시가 특히 언어를 마음대로 구기고 당길 수 있는 매체라고 생각한다. 문법도 철자도 상관없이 정말 자유로울 수 있는 장르다. 이민자의 입장에서, 영어를 비교적 뒤늦게 얻은 사람으로서 그 자유가 굉장히 크게 다가왔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부터 시에 골몰하게 됐다. 

또 시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무한한 목소리를 담을 수 있다는 점이다. 명명되는 주체(subject)가 명확하지 않은 작품이 많아서, 특정한 인물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목소리, 무한한 목소리가 될 수도 있는 게  시다. 무엇보다도 시는 비교적 짧기에 한 행, 한 행 느리게 읽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시에 담긴 역사를 천천히 곱씹으며 소화하게 만든다. 그것이 중요하다. 내게 시는 시간을 느리게 가게 해주는 장르다. 시가 역사를 담는 굉장히 중요한 대안적 공간이라는 생각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도덕적 목소리를 높이는 것 외에도, 그 목소리들을 보존하되 그 안에 창작자의 미학을 구사하는 게 문학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집은 ‘이미 아는 걸 또 얘기한다’는 피로감보다 오히려 아름답고 강렬한 인상을 준다. 집필 과정에서도 단순한 당위로서 귀결되지 않게 하기 위한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그렇다. 이념만 앞세우고 싶지 않았다. 나 역시 많은 이들처럼 항상 아름다움을 추구해왔다. 고통스럽고 힘든 일을 말하거나 경험하는 와중에도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은 스스로 큰 힘을 부여하는 일이다. 내겐 그것이 시로 형상화된 것이다.  

시적 언어를 활용하려면 생략하고 덮어둬야 하는 것도 많다. 그런데 역사를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커서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기가 너무 힘들었다. 멘토들이 “꼭 다 말하지 않아도 되고, 독자들도 빈 공간을 스스로 채워야 하는 책임감이 있으니 일단 시로서 어떻게 아름답게 존재할 수 있는지를 좀 더 고민하면서 수정하라”고 했다. 

시는 해답이 될 수 없다. 또 하나의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를 읽고 사람들이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가 아니라, ‘그럼 앞으로 뭘 해야 하지?’ 같은 질문을 스스로 더 많이 한다면 좋겠다. 

에밀리 정민 윤(29) 작가. Ⓒ홍수형 사진기자

- ‘일상의 불운’ 연작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의 순간에 갑작스럽게 역사나 폭력이 틈입해 아주 다른 시공간이 교차되는 방식의 글이다. 작가가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떠한가?

역사는 오늘날의 윤리 의식을 되돌아보게 한다. 모두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가 어떤 인식 변화를 거쳤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어떻게 더 좋은 삶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를 비판적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게 역사 공부라고 생각한다. 나도 많이 알려고 하는데 어렵다. (웃음) 그래서 평생 공부해야 하는 게 역사다. 특히 미국은 정말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다. 내가 알아야 할 단일한 맥락은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모든 게 맞닿아 있다. 

역사는 과거의 이야기라고 많이들 생각하는데,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간도 역사에 포함된다. 그런 의미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의 역사는 지금도 우리가 사는 이 시간 속에 이어지고 있다. 폭력이 어떻게 반복적으로 재현되고 이어지고 있는지, ‘산다’라는 동사를 역사 뒤에 붙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주는지를 많이 고민했다. 

 

- 지금 이 순간에도 역사가 쓰이고 있고, 우리가 역사를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도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 여성폭력 관련 이슈에 대해 요즘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스스로 ‘배운 것을 잊기(unlearning)’ 연습을 하는 편이다. 미국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내가 서양 혹은 미국의 관점에서 한국 이슈를 바라보지 않나 항상 의심한다. 미국 내 페미니즘 담론이나 이론을 한국에 억지로 갖다 붙이지 않으려 노력한다. 한국에 계신 분들이 한국은 미국이나 서양에 비해 페미니즘과 관련해 뒤떨어진다고 할 때 이해되는 것들도 있지만, 무조건 비교하려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자주 한다.

한국의 페미니즘 담론도 상당히 다양하고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지켜보면 신이 난다. 특히 서양 담론에 기대지 않고 한국 여성 현실에 맞는 이론을 계속 생산하는 학자들이 많아서 배울 것이 굉장히 많다. 두 가지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 

 

- 작년 9월 미국에서 출간된 『Against Healing』이라는 시집을 비롯해 한국 여성 시인들의 작품을 영어로 번역했다. 번역에도 관심이 있나?

굉장히 관심이 많다. 『Against Healing』은 데보라 스미스가 만든 출판사에서 나온 소책자다. ‘페미니즘 번역하기(translating feminism)’라는 시리즈를 기획했는데 한국 부분을 맡아달라는 연락을 받아 여성 시인 9명을 고르고 작품을 선별해 번역했다. 

요즘 한국 문학이 학계 바깥에서 많이 번역되고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예전엔 학자들이 연구하기 위해 번역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채식주의자』의 성공 이후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요즘 활동하는 번역가들은 운동의 성격을 가진 번역을 많이 한다고 느낀다. 퀴어, 여성 작가의 작품을 찾아서 영어권 세계에 소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나도 거기에 힘을 보태고 싶다.

미국에서는 나의 존재 자체를 번역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언어뿐만 아니라 주류 문화가 나의 생각과 경험을 이해할 수 있게 번역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시인들을 보면 백인이 알아듣는 언어로 자신을 번역하는 것을 거부하고 의도적으로 ‘길들지 않은 언어’, ‘자신에게 진실한 언어’를 택하는 실천(action)이 많아지는 것 같다. 나 역시 그런 의미에서 번역이 내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생각하게 된다. 사소하지만 파전을 영어로는 ‘Korean pancake’라고 번역하는데, 팬케이크가 아니고 그냥 ‘파전’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나? 이민자들은 재현(representation)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다 보니 그런 사소한 것에 대해서도 좀 더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것 같다.

 

- 연구를 위해 반년간 한국에 머물고 있는데, 어떤 논문을 쓰고 있나?

논문의 절반은 한국계 미국인 여성 시인들에 대한 것이고, 절반은 고정희 시인을 포함한 한국 여성 시인들에 대한 것이다. 내가 고안해낸 방법론으로 고정희-김혜순 시인을 같이 놓고, 차학경(테레사 학경 차)-프레니 최 시인을 같이 놓고 분석하고자 한다. 이 네 시인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어떻게 운동의 성격을 가진 시를 다른 방식으로 썼는지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있다. 

요즘 고정희 시인을 공부하고 있다. 고정희 시인이 남긴 마지막 시집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여백을 남긴다』엔 시인이 필리핀 체류 기간에 쓴 시들이 있는데, 필리핀과 아시아 역사에 대한 생각과 아시아의 연대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들어 있다. 고정희 시인은 한국의 비극적인 여성사를 필리핀 역사와 연결해 시를 쓰기도 했다. 필리핀에 있으며 오히려 한국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지 않았나. 결론은 다양하게 공부해야 한다는 말씀밖에. (웃음)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윤 작가는 이렇게 썼다. “한국에서 이 책의 목적은 ‘알림’이 아닌 ‘지속시킴’이 된다. 이미 아는 역사라 할지라도 우리는 꾸준한 감정적, 담론적 참여를 통해 지금까지도 부정되고 삭제되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기억해야 하며, 문학이 그 참여를 돕는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이미 지난’, 혹은 ‘해결된’ 문제가 아닌 그들이, 우리가 계속 항쟁하고 살아가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 시집은 바로 이 문장들을 닮았다. 한국어와 영어의 세계를 오가며 윤 작가가 펼쳐낼 또 다른 문학의 장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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