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 불합리한 회사문화, 몸으로 부딪쳐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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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민원기 기자>

다국적 일본 기업서 30년 재직하는 동안

가부장적 조직문화 맞서 싸워 '결혼·승진'

“요즘 여대생들이 취업 때문에 고민이 많은데 직장을 찾지 말고 직업을 찾으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부모의 영향에 좌우되지 말고 적성에 맞게 자기계발을 한다면 취업이 그리 어려운 길은 아닙니다.”

LCN코리아 이영숙(53) 대표의 첫 마디다.

이 대표가 이처럼 여대생 취업과 관련해 말문을 연 것은 현재 대학에서 취업 관련 강의를 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다국적 일본 기업 이또츠상사(주)에 30년 동안 있으면서 겪은 그의 삶 자체가 회사라는 가부장적 조직에서 살아남은 선배 여성들의 고된 여정을 말해준다.

“대학 4학년 말, 졸업도 하기 전에 취업을 했습니다. 그 때가 1972년 12월쯤이었을 겁니다. 올해 5월 그만둘 때까지 30년이니 이또츠상사에 제 인생을 건 셈입니다. 기계업무부터 대표비서, 인사부 채용, 부대표 비서 겸임, 기업개발실 근무 등 다양한 일을 했습니다.”

이 대표는 입사 때 당시 일반 여성들처럼 결혼할 때까지만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일이 재밌어 결혼 후에도 회사를 다녔는데 70년대 후반만 해도 결혼하면 회사를 그만두는 게 관례였다.

“80년 결혼을 했는데 퇴직은 아니었고 촉탁사원으로 다녔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했는데 결혼했다는 이유 하나로 정식직원이 아닌 게 너무 억울했습니다. 당시 이태영 박사님의 도움으로 복직 투쟁을 했고 83년 다시 복직해 결혼하면 다닐 수 없다는 관행을 법적으로 없앴습니다. 그게 계기가 돼 여성운동에 관심을 뒀고 88년 창간한 여성신문과도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는 결혼뿐 아니라 회사 내에서 승진과 관련해 씨름을 했다.

“결혼 문제가 해결된 후 잘 지냈습니다. 그런데 한참 다니다 보니 조금씩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함께 입사했던 남자 동기들은 대리, 과장, 부장으로 차근차근 승진했는데 저는 여전히 이영숙 사원이었죠. 당시엔 이영숙도 아니고 '미스 리'였습니다. 나도 승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 참 잘한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상사들이 막상 승진시켜 달라고 하니까 회사에 그런 제도가 없다고 하더군요.”

이 대표는 결국 끊임없는 문제 제기로 89년 이또츠상사에 들어온 지 17년 만에 과장으로 승진했다.

“승진은 했지만 승진 과정이 복잡했습니다. 사무직도 아니고 영업직으로 전환했는데 시험과 논문을 보고 거기에 부장 전원일치로 합의를 봐야 한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습니다. 될 때까지 요구했죠.”

당시 승진했을 때 이 대표는 아시아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며 사장과 악수하고 스포트라이트도 받았다고 한다. 89년이면 불과 10년 전 일인데 그만큼 여성들이 기업에서 생존하기 어려웠던 환경임을 절감할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 힘들게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렸지요. 가끔 제 위의 선배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합니다. 후배들이야 다 차려 놓은 밥상에 앉아 떠먹으면 되지만 밥상을 차려야 했던 선배들 덕에 우리가 있었던 것 아닙니까.”

'최초'라는 수식어에 들어 있을 그 어려움을 이 대표는 선배들 덕으로 돌렸지만 여리디 여린 그의 체구와 표정 어디에 그런 당찬 의지가 숨겨져 있는지 놀랍기만 했다.

“요즘 후배들을 보면 해주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습니다. 사회나 회사의 제도가 바뀔 것만 요구하지 말고 스스로 몸을 던져 제도를 바꿔나가는 노력도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특히 가부장적인 회사 조직은 그 안에서 살아남아야 바꿀 수 있습니다.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조직이 잘못됐다며 뛰쳐나오는 후배들을 보면 더욱 그렇지요.”

그는 기업문화가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아니라며 수용할 건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조직 내에서 자신의 영역을 넓히는 치밀함이 필요합니다. 특히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남성들의 네트워크를 여성 역시 충분히 살려나가는 게 중요하지요.”

이 대표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일을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 산 지 30년. 슬슬 후배들에게 몸으로 터득한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싶다는 욕심이 들어 기업과 대학 강의를 시작했다.

현재 숙명여대 평생교육원 비서과정과 중앙대 취업정보 과목으로 비서업무 기본과정을 가르치고 있다. 이렇듯 혼신의 힘을 다해 이또츠상사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왔던 그가 LCN코리아 대표 자리에는 어떻게 오른 것일까.

“올해 LCN코리아 대표 제의를 받았을 때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정년퇴직을 코앞에 뒀지만 반평생을 보낸 회사를 정리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퇴직 후 컨설팅이나 후배 양성에 힘을 쏟으려고 했거든요. 고민 끝에 제가 갖고 있는 능력을 더욱 크고 넓게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시작했습니다.”

이 대표는 한 회사의 대표가 된 지금도 자신의 철학은 변함없다고 한다.

'아직 건강할 때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 새로운 일이 주어졌을 때 당당하게 맞선다는 것.'

이영숙 대표는 이또츠상사(주) 서울지점 부장대리를 지냈고 한국전문비서협회 회장, 아시아 지역비서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숙명여대 평생교육원 비서과정과 중대 취업정보 과목으로 비서업무 기본과정을 가르치고 있으며 LCN코리아 대표이사로 있다.

LCN은 독일계 기업으로 종합 뷰티 산업체이다. 얼굴 메이크업을 제외하고 온몸을 자연 그대로 '케어'해주는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세계 40개국에 런칭했고 아시아에서는 홍콩이 본부다. LCN이 강조하는 것은 단순한 제품 판매가 아니라 철저한 교육과 A/S다.

LCN코리아는 올 7월에 사업자 등록을 했다. 국내에선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11월 사이판 월드리조트에 뷰티살롱을 개설할 예정이다.

국내에는 압구정동 롯데하우스에 LCN코리아 안테나 숍이 들어설 예정이며 올해 말쯤 제품과 서비스를 모두 만날 수 있다.

동김성혜 기자dong@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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