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순 출소 사태를 보며 질문한다
우리 사회에 조두순은 한명 뿐인가
여성들을 성착취한 n번방 공범만 26만명
사이버 성폭력에 대한 단호한 법질서 세워야
조두순 출소 후 그의 집 앞에 몰려있는 인파를 보며 우리 사회에 조두순은 한명 뿐인가 질문하게 된다.
우리 주변에는 수십 만 명의 n번방 공범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누군가의 아들, 남편, 아빠, 연인, 형제, 선배이고 후배다.
그들 가운데 몇은 길에서 무거운 것을 든 노인의 짐을 대신 들어주고, 먼 외국에서 굶주림에 고통 받는 아이들의 삶을 걱정하며 한 달에 1만원 씩 보내주는 사람일 것이다.
그들 가운데 몇은 신에게 기도하며 가족의 평화를 기원할 것이고, 지은 죄를 회개하고 한결 편안해진 맘으로 잠자리에 드는 사람일 것이다.
그들 가운데 몇은 연인의 생일을 기쁘게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낙담한 친구를 걱정하며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그들 가운데 몇은 잠드는 자녀들의 이마에 입술 맞추며 달콤하게 잘자라는 인사를 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들과 가까운 사람들은 그들을 좋은 사람이라고 부를 것이고, 그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른 사람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모를 것이다.
동시에 그들은 울부짖는 여성을 보며 비웃었다.
어린 여성을 개처럼 짖게 만들고, 입에도 담기 힘든 성착취를 가행했다. 가해자들에게 노예라 불리며 학대당한 피해자들은, 밝혀진 숫자만 74명이고, 그 중 16명이 미성년자다.
매일 1만 5천 건이 넘는 음란 메시지를 N번 방에서 주고 받으며 여자들의 영혼을 죽인 이들은, 확인된 숫자만 26만 명이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해 유사 n번방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26만명은 어떤 숫자인가? 현재 우리나라 도시들 가운데 인구가 26만을 넘는 곳은 45개 뿐이다. 경상북도 경주시 인구가 262,264명으로 그 경계선에 놓여있는 도시이다. 강릉시나 목포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보다 많은 숫자다. 이렇게 많은 가해자가 우리 곁에 살고 있다. 한국 여성들은 그들이 누군지도 모른 채 러시안 룰렛을 하는 중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피해자도 조심했어야 한다고 2차 가해를 일삼는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런 상황에 놓이지 않았을 거라며 피해자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거다. 이들은 ‘피해자 비난(blame of victim)’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공정하다는 환상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고,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리 없다는 것이다. 이런 2차 가해 속에서 피해자는 무력화되고 고립된다. 성범죄 신고율이 다른 범죄에 비해서 극도로 낮은 것도 피해자 스스로 이러한 사회의 반응을 예상하고 아예 입을 다물어 버리게 된다. 피해자만 피해자성을 속에 감춘채 살아가는 범죄 없는 좋은 나라가 완성된다.
나치 전범 재판을 받아 사형에 처해진 아돌프 아이히만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악마성과는 거리가 먼 사람의 모습을 보였다. 그는 보통의 사람들보다 친절하고 좋은 사람의 외관을 갖추고 있었다. 한나 아렌트는 이처럼 평범한 독일 시민들이 나치스에 부역하며 수백만 명의 유대인과 집시를 학살하는 일에 참여한 일을 설명하기 위해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아렌트에 의하면 인간의 악이라는 것은 개별적인 속성으로 받아들이기 보다 집단 분위기에 따른 영향으로 봐야 한다고 한다.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우리 인간들은 고작 역할 분담 하나 만으로도 타인에게 가혹해질 수 있다. 그런 이유로 건강한 사회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개인 윤리 뿐 아니라 사회가 어떤 태도를 견지하는지도 중요하다.
지난 3월 인도에선 4건의 사형 집행이 있었다. 이들은 2012년 버스에서 귀가중이던 여성을 강간하여 죽게 만들고, 동행이었던 남성을 살해한 죄인들이었다. 인도에서는 잦은 성폭력 범죄와 이른바 ‘명예살인’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근친 살해가 사회적 문제이다. 심지어 이런 행위에 갖은 명분을 붙이며 인도의 전통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번 사형 집행은 이런 구태에 대한 명확한 경고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지난 11월 한국 법원은 N번 방에서 2,500개가 넘는 성착취물 영상을 구매한 혐의를 받고 있는 20대 남성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수정 교수는 한 방송에서 N번방 가담자들의 형량을 낮게 예측하며, 적용 가능한 가장 높은 형량도 7년 정도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이들의 범죄를 적확하게 지목할 수 있는 법적 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은 지난 4월 N번방 관련자들의 신상공개에 관련한 질문에서 책임에 따른 가중을 판단해 신상을 공개할 것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영상을 단순히 소유하고 봤다는 것으로 범죄단체조직죄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말로도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다. 주범 조주빈 일당이 어떤 자금으로 이 일을 벌였는지 생각해 본다면 국민들의 법감정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문재인 정권은 재조산하(再造山河) 즉, 나라를 다시 만들겠다는 뜻을 여러차례 밝힌 바 있다. 이전 정권들로 인해 망가진 사회를 다시 공평한 민주공화국으로 만들겠다는 말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국민의 절반인 여성이 일상에서 공포를 느끼지 않도록 법적 제도를 정착시키는 일에 힘을 쏟아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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