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국회의사당 전경 ⓒ홍수형 기자
한 정당의 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내가 어느 정도 나이의, 어떤 성별의 사람인지를 끊임없이 확인하며 지낸다. 국회라는 공간을 걷고,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마이크를 잡은 사람들과 앞장서고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나와 다른 사람들이다. ⓒ홍수형 기자

 

2015년 여성학을 공부하던 때, 연애하던 사람과 헤어졌다. 마음 같아선 쿨하게 헤어지고 싶었지만 정작 나는 쿨하지 못했다. 후회와 속상함으로 가득 찬 한편 나를 가장 힘들게 눌렀던 것은 우습게도 내가 던진 이 질문이었다. ‘페미니스트답게 왜 쿨하지 못할까.’

당시 내가 생각한 페미니스트라면 헤어져도 자신의 일상을 잘 거닐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문득 같은 과 언니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슬픈 시기를 보내고 언제든 돌아와요, 혜민’ 이라고. 그 때 알았다. 페미니즘은 나를 옥죄는 조건이 아니라고. 지금 그대로를 바라보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다른 정치인의 전공은 묻지 않으면서
여성학 전공은 대변인 맡으면 안 된다?

페미니즘을 알아가면서, 그리고 ‘나는 페미니스트야’라고 말하기 시작하면서 그럼에도 끊임없이 내 자격에 대해 되묻곤 했다. ‘페미니스트라고 할 만한 사람인가’부터 ‘페미니스트답게 살아가고 싶다’까지.

한 정당의 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내가 어느 정도 나이의, 어떤 성별의 사람인지를 끊임없이 확인하며 지낸다. 국회라는 공간을 걷고,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마이크를 잡은 사람들과 앞장서고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나와 다른 사람들이다.

어떤 자리에선 그런 말을 듣기도 했다. 여성학을 공부했던 사람이 대변인인 건 아닌 것 같다고. 나는 정치인들의 전공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 정치인들의 전공을 궁금해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내 전공은 문제가 될 수 있는 걸까. 불쾌하기보단 씁쓸했다. 이 정치판에 말 그대로 ‘안전하게’ 버텨야겠다고 생각하며 내게 새로운 질문을 다시 던지기 시작했다. ‘정치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건 대체 무엇일까’부터 ‘페미니스트 정치인으로 살고 싶다’까지.

“내가 이 정치판에 제대로 ‘존재’해야 
우리들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를 지나 미투 운동을 마주한 한국 사회에서 정치판에도 이른바 ‘페미니스트 정치인’이라고 선언한 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전에도 많은 페미니스트 정치인이 정치판에 존재해 왔을 터이다. 그럼에도 이 시기에 페미니스트 정치인이라는 정체성을 전면에 가지고 등장한 사람들의 존재는 너무나도 귀했다. ‘우리’ 역시 이 판에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 때문이기도 했다.

최근 ‘페미니스트 정치인답게 싸우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했다. 그리고 내 위치로서의 경험과 고민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좋은 것일까 생각했고 결국 문제제기를 했다. 나는 나의 싸움으로 인해 한편 중요한 이슈가 가려진 것은 아닌지 자책감이 들기도 했지만 결코 분리된 싸움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기로 했다. 내 경험을 사소화 시키는 순간 나라는 사람은 이 공간에 안전하게 활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욕심을 갖기로 했다. 지금 내가 이 정치판이라는 공간에 제대로 ‘존재’해야 우리들의 문제 역시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2020년의 끝이 다가온다. 페미니스트 정치인으로 잘 살아가고 싶다. 나와 그리고 곁에 있는 페미니스트 정치인들과 함께.

조혜민 정의당 대변인.
조혜민 정의당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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