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초6 남학생, 수업 중 교사 수십번 불법촬영
전학·교육 처분 그쳐
피해자 “믿었던 초등 교실이 성폭력 사각지대”
사건 대응 절차 몰라 허둥지둥
가해자 학습 위해 피해자가 학교 떠나고
생활기록부도 깨끗...일부만 아는 비밀 돼
도교육청 “현행법상 사건 공개·대응에 한계”

올해 7월 6일, 제주 한 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서 남학생이 수업 중 담임교사를 불법촬영하다가 붙잡혔다. 피해 교사는 뒤늦게 이 사실을 언론에 알리기로 했다. 자신이 사건 처리 과정에서 겪은 문제들을 알려 개선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전했다. ⓒPixabay
올해 7월 6일, 제주 한 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서 남학생이 수업 중 담임교사를 불법촬영하다가 붙잡혔다. 피해 교사는 뒤늦게 이 사실을 언론에 알리기로 했다. 자신이 사건 처리 과정에서 겪은 문제들을 알려 개선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전했다. ⓒPixabay

제주 한 초등학교에서 6학년 남학생이 담임교사를 상습 불법촬영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중대한 사안임에도 가해 학생은 형사처벌을 면했다. 전학과 특별교육 처분만 받았다. 생활기록부에는 범행 사실도, 징계 기록도 남지 않았다. 일부 학교 관계자만 아는 비밀로 남았다.

초등학생의 디지털 성범죄는 “사실 전국 학교에서 심심찮게 벌어지는 일”이라고 현장 교사들은 말했다. 교사들이 말하는 초등 교실의 현주소, 사건 처리 과정의 문제를 듣고 취재했다. 

 

제주 초6 남학생, 수업 중 교사 수십번 불법촬영...전학 처분 그쳐

올해 7월 6일, 제주 한 초등학교 6학년 담임 A교사는 자신의 치마 속을 휴대전화로 불법촬영한 가해자를 현장에서 붙잡았다. 수업 도중이었다. 범인은 A교사의 반 남학생이었다.

가해 학생은 “뉴스에서 불법촬영 범죄를 접하고 호기심에 처음 찍었다”고 했다. 그러나 아이의 핸드폰에선 약 일주일 전부터 교실에서 A교사의 치마 속을 찍은 사진이 26장 발견됐다. 초등학생이 교사를 불법촬영해 적발되는 일은 드물다. 제주 지역에선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가해 학생은 최고 수위의 처벌인 전학과 특별교육 일주일 이수 처분을 받았다. 학부모에게도 특별교육 2일 이수 결정이 내려졌다. A교사는 교권침해교원지원휴가 5일, 법률 상담·자문, 심리 상담·치료 등을 받고 복귀했다. 이후 예정대로 2학기 수업을 진행했다. 어느새 종업식이 코앞이다.

A교사의 마음은 여전히 불안하다. 믿었던 학생이 성범죄를 저지른 데다 거짓말까지 하자 충격이 컸다. 한동안 상담과 진료를 받았다. 경찰이 포렌식 분석으로 찾지 못한 불법촬영물이 더 있거나 유포되진 않았을지 걱정이다.

“막 복귀했을 때는 학생들을 전과 같은 마음으로 대하기가 어려웠어요. 초등학생도 그럴 수 있구나, 절망스러웠죠. 지금은 ‘액땜’한 셈 치고 아이들과 즐겁게 생활하려 노력해요. 그래도 괴로워요. 사건 처리 절차와 제도의 문제도 지적해야겠다 싶었고요. 저처럼 사각지대에 있는 피해자들이 또 있지 않을까 걱정스러워요.”

A교사가 학교 교권보호위원회에 제출한 의견서 일부 내용. ⓒA교사 제공
A교사가 학교 교권보호위원회에 제출한 의견서 일부 내용. ⓒA교사 제공

 

“믿었던 초등 교실이 성폭력 사각지대”
사건 대응 절차 몰라 허둥지둥
가해자 학습 위해 피해자가 학교 떠나고
생활기록부도 깨끗...일부만 아는 비밀 돼

A교사가 뒤늦게 피해 사실을 언론에 알리기로 한 이유다. 그는 사건 처리 과정에 대해 여러 문제를 제기했다. 우선 전례 없는 사건이라 대응에 어려움이 많았다. 피해자인 A교사가 직접 교원단체, 해바라기센터 등에 문의해 관련 교권보호 규정, 피해회복 지원 내용 등을 찾아야 했다. A교사는 “이런 정보를 일선 학교와 교사들이 더 쉽게 찾아보고 이용할 수 있도록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A교사는 사건 직후부터 가해 학생과의 완전한 분리를 요구했다. 그러나 가해 학생의 학습권 보장 의무 등으로 아이의 등교를 제한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피해자인 A교사가 가해 학생을 피해 병가, 교권침해교원지원휴가에 개인 연가까지 사용하며 거리를 둬야 했다. 가해 학생이 전학을 갔지만 방과 후 A교사의 학교를 찾아오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지금도 A교사는 가해 학생을 마주칠까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학교생활을 한다.

중대한 사안임에도 가해 학생의 생활기록부에는 불법촬영 범행 사실도, 특별교육 이수 기록도 남지 않았다. 학생이 피해자라면 기록이 남지만, 교사가 피해자일 경우는 남지 않는다.

이번 일은 A교사를 포함한 일부 학교 관계자들만 아는 비밀이 됐다. 엉뚱하게 ‘가해 학생이 A교사를 때렸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뒤늦게 자초지종을 들은 한 교사는 “피해자가 선생님이라서 조심스럽지만 이건 성 관련 사안이고 추가 피해가 있을 수 있다. 전교에 알려서 경각심을 심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상담 과정에서 2차 피해를 겪기도 했다. A교사는 사건 직후 교육청의 안내로 제주 J 종합병원을 찾았다. 고통을 호소하자 의사는 “수영복을 입고 다니면 사람들이 쳐다보지 않냐. 그렇게 생각하면 어떠냐”는 황당한 발언을 했다. A교사는 “너무 불쾌하고 절망적이어서 그 이후론 병원에 가질 않았다. 해바라기센터 등 다른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A교사는 “우리나라의 성폭력 피해자 지원체계는 무척 잘 돼 있지만 저처럼 사각지대에 있는 피해자들이 있다. 비슷한 교권 침해 사례가 점점 늘고 있는 만큼, 사안이 발생했을 때 피해 교사가 조금이라도 마음 편히 대응할 수 있는 보호 장치와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처리 방안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책임감과 소명 의식을 가지고 학교생활을 해왔다. 이번 일로 큰 상처를 받았지만 하루빨리 아이들이 기다리는 교실로 돌아가고 싶었다. 교사가 일상으로 돌아가 안정적으로 교육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여러 제도적 개선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제주도교육청 “현행법상 사건 공개·대응에 한계”

제주도교육청은 현행법상 사건 처리 내역 공개나 대응 강화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웅비 제주도교육청 변호사는 “이 학생이 잘못한 건 맞지만, 학생의 학습권도 보호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생활기록부에 학생 징계 내용을 기재하려면 명백한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교원지위법상 교권을 침해한 학생을 징계할 법적 근거는 있지만, 생활기록부에 그 징계 내용을 기록할 근거는 없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신속히 실질적으로 분리하기 위한 근거 규정도 없다. 교육청 차원에선 할 수 있는 게 없다. 교원지위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이렇게 민감하고 중대한 사안은 학교에 맡겨두는 게 아니라 지원청, 도교육청, 장학사가 학교를 찾아 상황을 파악하고 필요한 지원을 제공한다. 이번에도 피해 교사의 교권 보호에 최대한 도움이 되도록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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