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미래를 이끌어갈 여성지도자상]
김영서 작가
친족 성폭력 피해 생존자에서
다른 피해자 돕는 상담사로

김영서 작가 ⓒ홍수형 기자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의 김영서 작가가 제18회 ‘미래를 이끌어갈 여성지도자상’을 받았다. ⓒ홍수형 기자

김영서 작가가 제18회 ‘미래를 이끌어갈 여성지도자상’을 받았다. 김 작가는 9년간 친족 성폭력 피해로부터 살아남은 생존자이며, 수기집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이매진)를 집필했다. 그동안 ‘은수연’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으나 올해부터 본명을 드러내고 세상 앞에 섰다. 그는 수상소감으로 “어려운 삶이었지만, 그간 잘 살았다고 응원하는 의미로 주는 상 같다”며 “답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나와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하며 사는 사람이 되겠다”고 얘기했다.

9년 친족 성폭력 고발 후 ‘나도 말하고 싶다’는 용기 이어져


김 작가는 ‘미투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미투’라는 친족 성폭력을 고발하고 나니 세상이 꿈틀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가 피해를 증언한 인터뷰와 강연의 댓글 창에는 생존자들이 하나둘씩 모여 ‘나도 살아남았다’, ‘나도 말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김 작가는 어렵게 내놓은 자신의 이야기에 다른 피해 생존자들이 공감하는 모습을 보며 ‘미투’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어린아이로 9년 동안 어디 가서 말할 수 없었던 피해의 시간을 보낼 때가 있었다. 지금 어디선가 그 일을 겪고 있을 아이에게 내 이야기가 닿아 9년일 수도 있는 그 시간이 좀 더 단축되면 좋겠다“며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고 전했다.

김영서를 드러내기까지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책을 쓰는 데 10년, 이름을 밝히는 데 또 10년이 걸렸다. ‘은수연’과 ‘김영서’라는 두 자아가 통합하고 치유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특히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게 쉽지 않았다. 죽지 않고 잘 버텨온 사실에 대해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컸다.

그는 올해 초에는 급기야 이런 꿈도 꿨다. 가해자를 찾아가 ‘나 이렇게 잘살고 있다’고 말하고 인정을 받아내려는 꿈이었다. 꿈에서 깨니 허탈했다. 이미 잘살고 있는데 가해자에게 꼭 인정받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김 작가는 친구에게 꿈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때 친구의 말이 큰 울림이 됐다. 영화 ‘캡틴마블’ 속 강해진 주인공이 원수에게 전하는 대사였다. '난 너한테 증명할 필요 없어'

 

피해자에게 먼저 손 내밀 수 있는 사회가 필요하다


김 작가는 최근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하는 강사, 디지털 성폭력 피해를 상담하는 상담가로 일하고 있다. 그는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폭력의 일상성’을 인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가해자, 피해자는 평범한 일상 속에 숨겨져 있다. 하지만 피해자는 약자의 입장에서 피해 사실을 세상에 말하기 어렵고, 가해자는 절대 자신의 죄를 말하지 않는다. 이때 일상 속에서 그들을 만나는 교사, 의사, 경찰, 이웃이 피해자에게 손 내밀 수 있어야 한다. 김 작가는 “일상 속에 폭력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우리 사회가 먼저 피해자를 찾고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위한 모임 ‘공폐단단’ 활동도 하고 있다. 김 작가는 “친족 성폭력 생존자의 55.2%가 범죄 발생 뒤 10년이 지나서야 피해 사실을 털어놓는다”며 공소시효 폐지 필요성을 언급했다. 2011년부터 미성년자 성폭력 범죄 공소시효는 사라졌으나 그전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는 소급 적용이 되지 않는다. 그는 “가해자가 죽어도 피해의 고통과 기억을 사라지지 않는다”며 공소시효 폐지를 호소했다.

김 작가는 성폭력 생존자들을 위해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세상이 피해자에게 약하고 수치심 가득한 모습을 바라며 ‘피해자다움’을 요구하기 때문에 생존자들이 '미투'하길 꺼린다고 말한다. 특히 성폭력 피해자는 성격장애가 있다고 묘사하고 일반화하는 드라마, 영화가 종종 눈에 띈다. 김 작가는 콘텐츠 창작자들이 성폭력 생존자를 바라보는 편견의 시선을 거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2차 피해를 봤다. SBS가 김 작가를 인터뷰한 뒤 보도할 때 ‘초6 때 겪은 임신중절...상상을 넘은 아빠의 성폭력’이라는 제목을 붙였기 때문이다. 김 작가는 “남의 상처를 전시하고 소비하는 보도보다 공감을 끌어내는 리포트, 성폭력을 평범한 일상의 문제로 풀어내는 기사가 많이 나오면 좋겠다”고 전했다.

김영서 작가 ⓒ홍수형 기자
김영서 작가는 “일상 속에 폭력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우리 사회가 먼저 피해자에게 손 내밀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홍수형 기자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영서, 용서하다


김 작가는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는 책의 끝에서 가해자에게 편지를 쓰고 그를 용서한다. 용서하기까지 많이 울었고, 가해자를 정말 싫어했다. 하지만 분노라는 감정이 올라올 때 그 감정에 먹히지 않고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해자를 용서했다. 

치유를 바라는 많은 이들에게 김 작가는 “어려운 일이지만, 좋은 사람을 곁에 둬라”고 조언했다. 그에게 좋은 사람이란 ‘쓴소리를 서슴없이 해주는 사람’이다. 그는 수퍼바이저, 글쓰기 교사, 친구 등 좋은 사람을 곁에 둬서 행운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치유 초반에는 자신을 위로해주고 품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비판도 하고, 문제에 직면시켜줄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 김 작가는 그런 사람이 있어야 자아에 대한 성장과 성찰이 이뤄질 수 있다고 믿는다. 

김 작가의 새해 목표는 ‘공부’다. 특히 상담과 글쓰기 공부에 전념할 계획이다. 그는 현재 디지털 성폭력에 대해 상담하고 있지만, 결국 범죄는 사람의 문제이기 때문에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면 상담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을 많이 만나고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에 대해 탐구할 예정이다.

글쓰기 공부 또한 전념하고 싶은 분야 중 하나다. 김 작가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공감하기 위해 끊임없이 글을 쓸 계획이다. 그는 "이번 책이 자신의 ‘말하기’에 관련한 내용이었다면, 앞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질문하고 타인의 말을 끌어내는 글을 쓰고 싶다"고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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