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명 가까운 확진자 나온 서울동부구치소
관리의 최종 책임자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
신천지교회 감염사태에 검찰의 늑장 수사 지적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
처리 과정에 현 정부 적극 나서야

어릴적 나는 지렁이가 무서웠다. 비 온 다음 집 밖에 나갈 때 땅 위로 스멀스멀 올라와 있는 지렁이를 보면 놀라며 꺅꺅거렸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고 말했다. 지렁이가 왜 무서워. 엄마는 성큼성큼 지렁이에게 다가가 손으로 살짝 집으셨다. 이어 지렁이를 축축한 흙 위에 올려 주셨다. 지렁이는 물을 좋아해서 비가 오면 밖으로 놀러 나와. 그런데 비 그치고 밖에 계속 있으면 목이 엄청 말라. 그러니까 네가 볼 때마다 지렁이를 흙 위에 다시 올려줘. 지렁이도 나처럼 살아 숨쉬며 목 말라 하는 존재라는 걸 나는 그 때서야 알았다.

 

서울 동부구치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수용자들의 경북 청송군 경북북부 제2교도소로의 이송이 시작된 28일 서울 동부구치소에서 한 수용자가 창밖으로 수건을 흔들고 있다. 정부는 지난 25일 독거시설(독방) 구조로 된 경북북부 제2교도소를 동부구치소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수용자를 위한 생활치료센터로 지정한 바 있다. 2020.12.28. ⓒ뉴시스·여성신문
서울 동부구치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수용자들의 경북 청송군 경북북부 제2교도소로 이송이 시작된 28일 서울 동부구치소에서 한 수용자가 창밖으로 수건을 흔들고 있다. 정부는 지난 25일 독거시설(독방) 구조로 된 경북북부 제2교도소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동부구치소 수용자를 위한 생활치료센터로 지정한 바 있다. 2020.12.28. ⓒ뉴시스·여성신문

서울동부구치소에서 800명 가까운 확진자가 발생했다. 코로나 19 전염 사태 발생 이후 단일 시설 내 최다 규모 감염이다. 국가가 직접 통제 관리하는 폐쇄 공간에서 전체 수용자의 30%가 넘게 감염될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서울동부구치소는 전신이었던 성동구치소가 2017년 6월에 신축이전한 곳이다. 서울에 있어 교정본부 직원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이라고 한다. 반면 수용된 수감자의 숫자는 제 수용 정원을 초과한 상태였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부자의 브리핑에 따르면 2070명 정원 공간에 2412명이 수감 중이었다고 한다.

한정된 공간 안에 고밀도의 인원이 있는 상태에서 감염이 발생했을 경우 그 확산을 막기 위해 신속하고 정확한 초기 대응이 필수적임을 우리는 여러 차례 경험했다. 그런 이유로 많은 전문가가 군부대와 교도소를 특별히 눈여겨보았었던 것이었겠다. 다행히도 군부대는 몇 차례 발생한 감염 문제들을 잘 관리하고 있다. 이는 장병들의 철저한 자기 관리와 군 지휘관들의 정확한 대응 덕분이겠다. 그중에서도 군대 특유의 정확한 보고 체계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이다. 그러나 구치소는 달랐다. 수용자들이 “살려주세요”라며 쇠창살 사이로 수건을 흔들 때도 감염은 계속됐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2021년 신년 특별사면 발표를 하고 있다. 2020.12.29. ⓒ뉴시스·여성신문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2021년 신년 특별사면 발표를 하고 있다. 2020.12.29. ⓒ뉴시스·여성신문

이번에 문제가 발생한 서울동부구치소 관리의 최종 책임자는 편제상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다. 그 아래 이용구 차관이 있고, 이영희 교정본부장과 박호서 동부구치소장이 각 단계의 책임을 맡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25일에 열린 비공개회의에서 이용구 차관을 질책했다고 한다.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발언의 수위로 미뤄 보면 법무부 차원에서 대량감염 상황 이전에 제대로 된 보고가 없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번 집단 감염이 구체적으로 시작된 12월 19일을 전후부터 지금까지 어떤 식으로 보고가 이뤄졌는지에 대한 조사와 책임자 처벌은 반드시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재소자들에게 지난달 27일에 이르러서야 마스크를 지급하는 등의 문제들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가 필요해 보인다. 많은 시민들은 법무부가 지난 한 달여 넘는 시간 동안 윤석열 찍어내기에만 집중하느라 구치소 감염 등의 문제는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것이 아닌가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아울러 이용구 차관의 택시 기사 폭행 사건 등으로 인해 사실상 지휘 체계의 부재가 불러온 인재일 수도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도 가능한 상황을 정부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한편 추미애 장관은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장관직에 대한 책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관련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공직자로서 적절하지 못한 처신이다. 그는 28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윤석열 총장을 탄핵해야 한다는 주장을 올리고, 29일엔 보호 관찰소를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하는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는 중이다. 이런 모습은 올 초 신천지교회에서 시발한 감염 사태에서 검찰의 늑장 수사를 지적하며, 자신의 압수수색 지시를 따르지 않은 윤석열 총장으로 인해 방역의 골든타임을 놓쳤다며 질타하던 모습과 대비를 이룬다.

1995년 6월 30일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에는 두 명의 서울 시장이 있었다. 한 명은 당일 이임식을 앞둔 최병렬 시장이었고, 다른 한 명은 민선 1기 시장에 취임할 조순 시장이었다. 최병령 시장은 성수대교 붕괴사고 이후 취임했던 시장으로 임기 내내 도시 안전을 시정의 최우선에 둔 것으로 유명했다. 공무원들이 붙여준 ‘안전시장’이라는 별명을 자랑스러워하던 최병렬 시장은 그에게 불명예로 남을 현장에서 마지막 시간까지 그의 책임을 다했다. 삼풍백화점 사고 수습 현장에서 기자의 사고 현장에 대한 질문을 받은 최병렬 시장은 “이것은 사람 생명에 관한 문제”라는 짧은 말로 자신이 감당해야 할 상황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임까지 몇 시간 남지 않은 상황이지만 그 끝이 날 때까지 그는 그에게 부여된 책임을 다했다.

우리는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을 통해 너무 큰 아픔을 겪었다. 제대로 된 안전 매뉴얼 하나만 있었더라면, 제때 정확한 대응만 했더라면, 누구 하나 자기의 역할을 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정부는 그럼 아픔 위에 서있다는 것을 한시도 잊으면 안 된다. 같은 이유로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로 사망한 19세의 김군을 가리켜 “걔만 조금 신경 썼었으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인식을 가진 변창흠 같은 사람을 국토교통부 장관 자리에 올리는 일도 없었어야 했다. 앞에서 하는 말과 뒤에서 하는 말이 이렇게 다른 정부를 시민들은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까. 
 

좌초된 세월호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제공
좌초된 세월호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제공

모든 생명이 중요할진데, 사람의 목숨에는 더더욱 무겁고 가벼움이 있을 수 없다. 설사 죄를 짓고 감옥에 갇혀 있는 재소자라도 마찬가지이다. 그들도 언젠가는 사회로 복귀해야 할 시민이고, 교정기관은 그 역할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다. 이번 서울동부구치소 집단감염 사태를 처리하는 과정이야말로 현 정부가 시민과 시민의 생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