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문유경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원장
35년간 여성정책연구원서
여성고용·성인지통계 연구

“코로나 위기로 드러난 성평등 사각지대
돌봄·여성노동 정책 연구 통해 메우겠다“

문유경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원장 ⓒ홍수형 기자
문유경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원장은 임기 동안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을 세계적인 성평등 연구기관으로 키우겠다”는 포부로 2021년 새해를 열었다.ⓒ홍수형 기자

 

성인지 통계 전문가인 문유경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하 여정연) 원장은 임기 동안 연구원을 “세계적인 성평등 연구기관”으로 안착시키겠다는 포부로 2021년 새해를 열었다.

지난 9월 28일 국책연구기관인 여정연 수장으로 임명된 문 원장은 1985년부터 35년 가까이 여정연에 몸담은 여성정책 연구자다. 특히 여성고용과 성인지통계 분야 전문가로, 1994년부터 ‘여성통계연보’ 개발에 참여했으며, ‘국가통계의 성인지적 개선 방안 연구’(2014년), ‘성인지 통계시스템 운영사업’(2006-2007년, 2013-2016년) 보고서를 발표했다.

여성정책 연구자에서 경영자로
35년 근속 연구원 출신 첫 원장

여정연은 문 원장에게 첫 직장이다.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이곳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졸업 뒤 바로 여정연에서 연구원 생활을 시작했다. 34년8개월간 근속하며 두 아이를 낳은 뒤 박사 과정(연세대)도 밟았다. 내부 연구원이 원장으로 임명된 것은 10대 서명선 원장 이후 두 번째지만, 35년 가까이 근속하며 정년퇴임한 연구자가 원장 자리까지 오른 것은 문 원장이 처음이다.

평생 연구자로 살았던 그는 이제 경영자로 섰다. 문 원장은 “외부에서 오는 원장보다는 업무 파악 기간이 짧고 내부 직원들이 많은 지지를 보내준다는 점, 연구원이 원장이 되는 새 모델을 동료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는 점이 장점”이라고 했다. 반면 “내부를 잘 아는 사람이 기존과는 다른 관점으로 연구원과 조직원을 바라보고 혁신을 이끌어야 한다는 점은 쉬지 않은 과제”라고 솔직히 말했다.

사회학자이지만 그는 통계 분야에 많은 관심을 쏟았다. 문 원장은 “추상적이고 거시적인 이데올로기가 강한 사회학을 하다 ‘팩트’ 중심의 통계를 들여다보니 확실해졌다”며 “성인지 통계 연구는 주목받는 정책을 제안하는 연구는 아니지만 정책 입안을 위한 고속도로를 깔고, 설계하는 기분이었기 때문에 만족스러웠다”고 했다. 대표적인 예로 ‘셋째 아이 출생 성비’를 꼽았다. 1990년 출생성비(여아 100명당 남아 수)는 116.5명(자연수준 106)이었다. 셋째 아이 성비는 여아 100명당 남아 193명으로 치솟았다. ‘남아선호사상’ 때문이다. 과거에는 국가 통계에서 조차 성별 분리가 돼 있지 않았다. 문 원장은 “IMF 외환위기 당시 여성 실직이 늘면서 여성 창업이 중요해졌다는 주장은 나왔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사업체 대표의 성별 조사조차 없었다”며 “성별 분리를 제안해 여성 창업자 비율을 알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제 ‘통계법’과 ‘양성평등기본법’에 신규 통계 시 성별 분리 통계를 해야 한다고 명시하는 등 성인지 통계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다.

돌봄·여성노동정책 연구 집중
AI 알고리즘 편향성 연구도

문 원장은 코로나19가 여성고용 악화, 돌봄노동 가중, 가정폭력 증가 등 성불평등을 심화시킨다며 “‘조용한 학살’부터 ‘그림자 팬데믹(Shadow Pandemic)’까지 코로나19 위기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성평등 사각지대와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조용한 학살’은 코로나19 여파로 줄어든 일자리 대다수가 ‘여성 일자리’지만, 사회적 관심이나 대책도 없는 여성노동의 현실을 드러난 말이다. ‘그림자 팬데믹’ 역시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선포 이후 자가격리, 봉쇄 조치가 이어지자 가정폭력 등 여성에 대한 폭력이 급증하고 있는 현상을 가리킨다.

문 원장은 “올해 여정연은 코로나19 장기화로 드러난 돌봄노동과 여성일자리 문제를 중점 연구할 계획”이라며 “이제 코로나 이전으로의 복귀가 아닌 우리 사회의 성불평등한 사회구조를 개선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원장은 임기 동안 “미래를 예측하고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에 가장 신경쓰겠다고 밝혔다. 급변하는 사회환경을 시의 적절하게 연구에 반영할 수 있도록 위원회를 구성해 연구 과제를 발굴하겠다는 계획이다. 문 원장은 “사후 대응이 아닌 사회 변화를 긴밀히 살펴 연구 수요를 미리 파악해 미리 대응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빅데이터 알고리즘 편향성 연구 등 새로운 연구도 계획하고 있다. 관련 전문가 채용도 준비 중이다.

여정연은 올해 정부 부처나 연구자 대상 연구·정책 제안 뿐 아니라 대국민 서비스도 강화할 예정이다. 대표적인 사업이 ‘성평등 지식공유 플랫폼’이다. 문 원장은 “성평등,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확한 정보를 찾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며 “연구자 뿐 아니라 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 성평등 관련 지식을 공유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올해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내년에는 상용화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다. 문 원장은 “최근 여성 이슈, 성평등 문제가 찬반 중심에 서는 경우가 많다”며 “연구원이 더욱 적극적으로 연구 결과를 알리지 않으면 연구원 존립도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국민 콘텐츠를 개발하고 성인지 통계 등도 인포그래픽으로 알기 쉽게 제작하는 등 연구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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