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여성주의 발전의 공간이자 폭력의 공간

온라인상 폭력, 현실 세계의 폭력으로 이어져

“얼굴 이름 드러나면 직접적인 위협의 대상 돼”

여성신문이 2021년 신년 기획 <92년생 김지영>을 통해 이 시대 여성들의 목소리를 싣습니다. 82년생, 92년생, 00년생 여성의 이야기를 들으며 ‘젠더갈등’이라는 이름 아래 그동안 '한국형 백래시'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주목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 사회가 노력해야 할 방안 등을 살펴보려 합니다.

*편집자 주 : 백래시(Backlash)는 어떠한 아이디어, 행동 또는 물체에 대한 강한 반발을 뜻하는 단어로, 성평등 및 젠더 운동 등의 흐름에 반대하는 운동 및 세력을 ‘백래시’라 부른다. (출처 : 위키백과)

여성신문 기획기사 '92년생 김지영'은 [인터랙티브형 기사]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거나 URL에 복사해 붙여 넣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92kim.womennews.co.kr/

 

ⓒ뉴시스/여성신문

3월 ‘n번방 사건’이 우리 사회를 흔들었다. 디지털 성착취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수많은 여성들의 공로였지만 이들은 누구도 이름을 드러내지 않았다. ‘추적단 불꽃’과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 ‘리셋(ReSet)’ 등은 단 한 명도 자신이 누군지 말하지 않았다. 이름이 드러났을 때 겪을 수 있는 n번방 가해자들의 보복이 주요한 이유기도 했지만 여성 문제에 목소리를 낸 것만으로도 겪어야 할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과 협박이 두려웠던 것도 있다. 20대 페미니스트들에게 신상정보가 드러나는 것은 생존이 달린 문제에 가깝다.

00년생 ‘김지영’들이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백래시를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로서 처음 가진 휴대전화가 스마트폰이었던 세대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발달한 SNS는 여성주의 담론이 빠르게 발달하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00년생 ‘김지영’이 폭력을 경험하는 공간이다. 자신을 지키는 방법은 ‘익명’뿐이다.

온라인상에서의 괴롭힘을 뜻하는 ‘사이버 불링’은 1020세대 전반이 경험하는 문제다. 2018년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초중고생의 29.2%는 사이버 불링 가해경험이 있고 30.3%는 피해 경험이 있다.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과 페이스북 ‘○○대학교 대나무숲’에서의 폭력, 혐오 표현은 실제 페미니스트들로 하여금 시위와 캠페인에 나서게 할 정도다.

 

21일 대학 페미니스트 공동체 ‘유니브페미’는 국내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 속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혐오표현을 둘러싸고 해당 업체 측과 신고 조치를 할 수 있는 정부 기관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 앞에서 차별금지협약을 체결하고 혐오표현 심의 기준을 마련해나갈 것을 촉구하기 위해 서울 양천구 방심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성신문 진혜민
ⓒ뉴시스/여성신문

 

온라인상 혐오와 폭력, 현실의 폭력과 위협으로 이어져

대학 페미니스트 공동체 ‘유니브페미’는 3개월간 20여 개 대학의 에브리타임(에타) 내 혐오 표현을 수집한 결과를 7월 발표했다. 이들의 조사에 따르면 삭제되지 않은 550개의 혐오표현 게시물 중 47%는 페미니스트와 페미니즘에 대한 낙인과 비방이었다.

유니브페미 관계자는 “여성 이슈가 사회적으로 크게 떠오를 때 에타에서는 갑작스럽게 ‘여성단체는 이럴 때 가만히 있다’며 호명되고 대학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해 공론화하려는 움직임이 일면 페미니스트에 대한 욕설과 비방이 쏟아지는 모습을 보인다”고 밝혔다.

문제는 온라인상의 혐오 표현과 폭력은 현실에서의 폭력과 위협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지난 3월 연세대학교 총학생회는 총여학생회실을 강제 점거함으로써 수도권 대학 마지막 총여학생회를 없앴다. 2000년대부터 차차 없어지기 시작한 총여학생회는 2018년 급물살을 타 서울에서만 12곳이 사라졌다.

마지막까지 남았던 대부분 학교의 총여학생회의 구성원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는 폭력을 경험했다. 유자 연세대학교 전 총여학생회 일상문화국장은 “총여라는 게 알려지면 학교를 마음대로 못 돌아다녔다”며 “사진이 찍혀 에타에 올라가고 ‘총여실 불 켜져 있다’며 글과 사진이 함께 게시된다. 실질적인 개인의 위협, 폭력이었고 언어적 폭력은 더 컸다”고 말했다.

범죄로까지 이어진 경우도 있다. 지난 2월 ‘박사방'의 주범 조주빈(24)은 ‘박사방’에 잠입해 이들을 고발하고자 했던 20대 대학생 B씨의 신상정보를 캐낸 뒤 그를 향해 사이버 불링을 무료회원 등에게 지시했으며 실질적인 위협까지 가했다.

 

2018년 7월 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3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불편한 용기’가 열려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피해자의 성별에 따른 차별 없는 동등한 수사와 처벌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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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 드러나면 생명의 위협 느껴"…'익명' 선택한 여성들

이처럼 온·오프라인에서의 폭력이 경계 없이 오가는 동안 00년생 ‘김지영’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자구책으로 ‘익명성’을 선택했다.

이들의 공포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 2018년 ‘불편한 용기’ 시위와 그 후 이어진 여러 여성 시위다. 이른바 ‘익명의 여성들’에 의한 시위는 얼굴을 마스크 등으로 가리고 누구의 이름도 남기지 않았다. 때로는 취재진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규칙을 적용해 촬영을 제한했다.

시위 후 있었던 여러 프로젝트들도 같은 수순을 밟았다. 9월 6일까지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에 ‘웰컴투비디오(W2V)’ 운영자 손정우(24)의 미국 송환 불허를 비판하는 광고를 걸었던 단체 ‘케도아웃(KEDO OUT)’도 20대 여성들이 주축이 돼 온라인을 통해 모였다는 사실만 알려졌을 뿐 실제 구성원의 정체 등은 전혀 알리지 않았다.

‘불편한 용기’ 시위를 비롯해 지난해 5월과 7월에 열린 ‘강간카르텔 유착수사 규탄시위’에 참가한 A(24)씨는 20대 페미니스트들이 익명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A씨는 “얼굴과 이름이 드러나는 건 남자들에게 칼 들고 찾아오라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나는 페미니스트지만 동시에 평범한 20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19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강간카르텔 유착수사 규탄시위’가 열렸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뉴시스/여성신문

 

반여성주의 폭력에 맞선 1020 여성들…새로운 형태의 페미니즘 

전문가들은 00년생 ‘김지영’들은 적극적으로 여성인 자신이 경험한 반여성주의적인 폭력에 맞서 싸운 세대라고 평가한다. 총여학생회를 지키기 위해 싸웠고 학교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성폭력을 고발하며 이를 ‘스쿨미투’로 명명했으며 10만 명이 운집하는 거대 여성의제 시위를 성공시켰다.

이들의 성공에는 온라인이 있다. 물리적 한계를 넘어선 온라인 공간은 폭발적으로 페미니즘 의제를 퍼뜨리며 전국 동시다발적인 행동에 돌입할 수 있도록 했다. 동시에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로서 이들이 마주하는 백래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이들에게 무엇보다도 거대한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윤김지영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00년생 ‘김지영’으로 말할 수 있는 1020세대의 특징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로서 스마트폰을 이용한 폭력을 초중고 시절 경험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윤김 교수는 “학교에서 남학생이 여학생을 제압하는 방법으로 원하지 않는 ‘엽기사진(엽사)’을 촬영하거나 욕설을 SNS에 올리는 등의 행동을 하는 것을 경험하고 자란 세대”라며 “앞선 다른 세대들이 온·오프라인 공간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과 달리 이들 세대는 온·오프라인의 구분이 희박하고 그것은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부정적인 측면도 분명히 크다”고 말했다.

한편으로 ‘익명’을 선택하는 것은 1020세대가 다른 세대와 동등한 발언권을 얻기 위한 일종의 전략이라고도 말했다. 윤김 교수는 “익명성은 사이버 불링으로부터의 자기 보호기도 하지만 나이, 학력, 지역에 따른 구분으로부터도 자유로운 발언권을 얻게 해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들 세대가 어느 정도의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고 지위를 획득한 후에는 익명에서 벗어나 오프라인 공간으로 실명을 걸고 편입하며 새로운 형태의 활동에 나설 테지만 현재 시점에서의 3040세대와는 또 분명히 다를 것이다”라고 예측했다.

 

* 인터랙티브 연결 : https://92kim.womennews.co.kr/

※ 본 기획기사와 인터랙티브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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