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의 지원요청 외부 유출하고
박 시장 측에 “불미스러운 일” 알린
여성연합·남 의원 향한 비판 거세
대자보 통해 공개 비판한 김지연씨
“수직적 위계질서로 내부 비판 불가능”

여성단체 활동 경험이 있는 김지연씨가 서울 영등포구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실이 있는 건물 입구에 붙인 대자보. 김씨는 “수직적인 위계질서로 인해 문제제기를 할 수 없는 분위기는 여성단체연합의 ‘박원순 피소’ 유출 사태를 야기한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비판했다. 사진=본인 제공
여성단체 활동 경험이 있는 김지연씨가 서울 영등포구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실이 있는 건물 입구에 붙인 대자보. 김씨는 “수직적인 위계질서로 인해 문제제기를 할 수 없는 분위기는 여성단체연합의 ‘박원순 피소’ 유출 사태를 야기한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비판했다. 사진=본인 제공

 

‘박원순 사건’ 피해자가 여성단체에 지원요청을 한 사실이 한국여성단체연합(여성연합) 대표와 여성운동가 출신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유출됐다는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자 여성계 내부에서 비판이 거세다. 젊은 활동가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운동과 조직을 쇄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여성단체 활동 경험이 있는 김지연씨는 지난 4일 서울 영등포구 여성연합 사무실이 있는 건물 입구에 ‘나는 살고 싶다’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였다. 김씨는 대자보에서 “수직적인 위계질서로 인해 문제제기를 할 수 없는 분위기는 여성단체연합의 ‘박원순 피소’ 유출 사태를 야기한 근본적인 원인”이라며 “더는 피해자가 고립되지 않도록 조직의 위계질서를 타파하고, 정치권과 결탁 없는 운동을 이어나갈 것을 촉구한다”고 썼다.

김씨는 여성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대자보를 붙인 이유에 대해 “한국 여성운동에서 대표성을 지니고 피해자를 지원해야 하는 여성단체가 가해자와 함께하는 행보를 보이고 연관 단체들도 이 사실을 묵인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앞으로 활동가로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참담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김씨는 여성연합 뿐 아니라 여성운동계 전체가 쇄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더 이상 친분에 기반 한 ‘봐주기 식’ 행정을 중단하고 내외부에서 비판하는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며 “내부 문제제기가 쉽지 않은 수직적인 구조와 내부 비판에 대해 열려 있는 조직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존 여성운동계는 지속적으로 여성운동계를 비판해온 2030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을 낙인찍고 왜곡해왔다”며 “여성운동계 인사들은 이제 여성운동계가 운동을 주도하고 이끌어내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을 기억하고 2030 여성들의 비판 목소리에 자기 성찰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 여성단체 관계자는 “법제도 변화를 위해 여성단체와 정치권이 거버넌스를 구축해 협업하는 일은 중요하다”며 “여성연합이 그동안 협상 테이블에서 그 역할을 잘 해왔고 피해자 지원단체로서 역할도 충실히 해왔는데 이번 일로 그동안의 성과를 무마시키거나 비난의 화살이 개인에게만 돌아가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여성단체와 정치권이 협업 과정에서 관계 설정을 재정비하고 우산 조직으로서 여성연합의 기능에 대해 내부에서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페미니즘과 정치에 관심 있는 2030 여성이 주축인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도 논평을 내고 “지난 20여년 간 고착된 민주당과 여성단체 간의 이해관계 고리에 대한 근본적 성찰 없이는 여성단체 활동과 여성단체 출신의 정치인 배출이 민주당과 남성 권력의 알리바이가 될 뿐 고통 받는 여성들의 삶을 바꿀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여성단체의 뼈아픈 각성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며 “친분과 권력이 아닌 여성인권의 편에 서는 단체로 쇄신하길 기대한다. 진정으로 성평등한 세상과 여성의 인권을 위해 복무하라”고 촉구했다.

신경아 한림대 교수는 “이번 일은 여성운동의 윤리적 규칙을 무너뜨린 일”이라며 “여성연합 내부에서 치열하게 성찰하고 특히 젊은 활동가들이 더 이상 지치지 않도록 그들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재편해 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편, 여성연합은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온 당일 “진실 규명을 위해 분투하신 피해자와 공동행동단체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상임대표를 직무 배제했으며, 그동안 반성폭력운동의 원칙과 책무에 대해 다시 고민했고 책임을 다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고개를 숙였다.

남 의원은 “피소사실도 몰랐고 유출한 사실이 없다”며 ‘피소사실 유출’ 의혹을 부인했다. 그는 5일 입장문을 통해 “7월 8일 오전 서울시 젠더특보에게 전화로 ‘박 시장 관련 불미스러운 얘기가 도는 것 같은데 무슨일 있느냐’고 물어봤다”면서 “구체적인 내용이나 사건의 실체에 대해 전혀 들은 바가 없어서 이렇게 질문을 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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