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징후 파악 못한 학대담당관
아이의 목숨을 구할 기회 잃어
경찰·공무원 초기 적극 개입 중요
전문성·학대 인지 감수성 높여야

5일 경기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안치된 고 정인 양의 묘지에 추모객들이 놓은 정 양의 그림이 놓여 있다. 고 정인 양은 생후 16개월째인 지난해 10월 양부모의 폭력과 학대로 숨을 거두었다. ⓒ뉴시스·여성신문
5일 경기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안치된 정인양의 묘지에 추모객들이 놓은 정 양의 그림이 놓여 있다. 정인양은 생후 16개월째인 지난해 10월 양부모의 폭력과 학대로 숨을 거두었다. ⓒ뉴시스·여성신문

 

양부모 학대로 숨진 생후 16개월 ‘정인이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아동학대 정황을 알리는 신고가 세 차례나 있었는데도 이를 막지 못해 사실상 아동학대를 방치한 결과로 이어졌다. 현장 인력의 학대 인지 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전문성 강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1월 양부모에게 입양된 정인양은 같은 해 10월 서울시 양천구 목동 소재 한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다 숨졌다. 정인양은 사망 당일 췌장이 절단되는 심각한 복부 손상을 입은 상태였으며 쇄골 등 몸 곳곳에 골절 흔적도 있었다.

이후 경찰의 부실수사 논란이 도마 위에 올랐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지난해 5월, 6월, 9월 무려 세 차례나 학대 의심 신고를 접수했지만 학대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건을 내사 종결하거나 검찰에 불기소 의견을 달아 송치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양천경찰서에 대한 감찰을 진행해 사건 처리와 관계된 경찰 12명에 대해 주의와 경고 등 징계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솜방망이 처분’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사건을 맡은 담당 경찰의 파면을 요구하는 여론도 거세다. 지난 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아동학대 방조한 양천경찰서장 및 담당경찰관의 파면을 요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와 이틀 만에 20만명 이상 동의했다. 청원인은 경찰관 직무집행법을 거론하며 “최전선에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고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는 국가기관이 아동학대 신고를 수차례 받고도 묵인·방조했다”며 “그 책임의 대가를 반드시 묻고 싶다”고 밝혔다. 

5일 경기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안치된 故 정인 양의 묘지에 추모객들이 놓은 선물과 추모 메시지가 적혀있다. 고 정인 양은 생후 16개월째인 지난해 10월 양부모의 폭력과 학대로 숨을 거두었다. ⓒ뉴시스·여성신문
5일 경기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안치된 정인양 묘지에 추모객들이 놓은 선물과 추모 메시지가 적혀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아동학대로 사망한 아동은 42명에 불과하지만 학대 피해를 겪고 있는 아동은 약 3만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공 대표는 정인이를 추모하는 해시태그 캠페인 ‘정인아 미안해(#정인아미안해) 챌린지’를 처음 제안했다.

정부 공식통계(보건복지부, 2019 아동학대 주요통계)에 잡힌 아동학대 사망자 수만 해도 2017년 38명, 2018년 28명, 2019년 42명(잠정치)이다. 2019년 아동학대로 판단된 피해 아동은 3만45명으로 집계됐다. 피해 아동을 또 다시 학대하는 사례도 2019년 기준 3431건으로 재학대율은 11.4%에 달한다. 재학대하는 10명 중 9명은 부모다. 제대로 된 확인 없이 가정으로 돌려보내 아이가 또다시 매를 맞는 것이다. 분리보호를 통해 재학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공 대표는 “법제도보다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며 “일하는 사람이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거나 민감성이 부족해서 학대 징후를 발견하지 못해 초기에 개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아동학대 사건을 직접 조사하는 학대예방경찰관(APO·Anti-abuse Police Officer)의 인권감수성에 대해 강조했다.

APO는 정인양 사망을 계기로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세 차례나 아동학대 신고가 있었지만,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다시 정인이를 양부모에게 돌려보냈기 때문이다.

APO는 아동 등을 대상으로 한 학대를 예방하기 위해 2016년 4월 출범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전국의 APO는 669명으로, 256개 경찰서에 평균 2∼3명이 배치돼 있다. 경찰 내에서 APO는 대표적인 기피 보직으로 꼽힌다. 아동학대 사건은 피해자가 의사표현을 못하는 경우가 많아 증거수집이 까다롭고 재발 방지를 위한 사후 점검 작업과 노인과 장애인 학대 사건까지 함께 맡고 있어 업무가 과중하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출범한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해 11월 기준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은 전국 229개 시군구 중 100곳에 배치됐다. 목표 인력 290명의 65% 수준이다. 사회복지직 직원이 아닌 행정 직원이 순환 배치를 통해 해당 업무를 담당하면서 전문성 부족이 문제로 제기됐다.

지난해 11월16일 서울 양천경찰서 앞에서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가 '16개월 입양 아동 학대 사망 사건 관련 항의' 기자회견을 하며 항의서한을 들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해 11월16일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가 양천경찰서 앞에서 '정인이 사건 관련 항의' 기자회견을 하며 항의서한을 들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공 대표는 “APO의 애로점은 고쳐나가야 하지만 ‘정인이 사건’ 같은 일은 하루이틀이 아니라 문제”라고 비판했다. 경찰 등 현장 인력이 사건에 적극 개입하지 않고 학대 징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아동학대를 방치하는 일은 자주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아동학대 사건은 업무 전문성이 중요한데, APO는 다른 경찰 업무도 많이 본다”며 “아동학대 전담 경찰관을 만들어 보직 변경 없이 학대 업무를 전문으로 하는 전문가를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반 가정 내에서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방법도 설명했다. 그는 “일반가정에서도 아동학대는 무엇인가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며 “내 아이를 학대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내 아이는 훈육이고 다른 아이는 학대’라는 마인드를 갖고 있지 않나 부모 스스로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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