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이 2021년 신년 기획 <92년 김지영>을 통해 이 시대 여성들의 목소리를 싣습니다. 82년생, 92년생, 00년생 여성의 이야기를 들으며 ‘젠더갈등’이라는 이름 아래 그동안 ‘한국형 백래시’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주목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 사회가 노력해야 할 방안등을 살펴보려 합니다.

*편집자 주 : 백래시(Backlash)는 어떠한 아이디어, 행동 또는 물체에 대한 강한 반발을 뜻하는 단어로, 성평등 및 젠더 운동 등의 흐름에 반대하는 운동 및세력을 ‘백래시’라 부른다.

여성신문 기획기사 '92년생 김지영'은 [인터랙티브형 기사]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거나 URL에 복사해 붙여넣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92kim.womennews.co.kr/

아직 차마 다 듣지 못한 지영이들의 이야기가 있다. 고루한 신세 한탄처럼, 술자리 술안주처럼 귓등 너머로 지나가는 이들의 사연에는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찐득한 젠더 갈등의 흔적이 남아있다. 92년생 김지영 마지막 편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로 치부돼 지워지는 지영이들의 목소리 중 일부를 담았다. 사연은 지난해 11월 설문조사를 통해 받은 내용 중 선정된 일부 사례이다.  

아직은 요원한 꿈이지만 구구절절한 지영이들의 이야기들이 더는 공감되지 않기를 바란다. 82년생, 92년생, 00년생 지영이들이 훗날 “나 때는 말이야”라며유쾌하게 미래의 딸들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희망한다.

번아웃 증후군이란 ⓒ여성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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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이 밀려올 때

00년생 박지영

번아웃.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약 9개월 정도 되었을 때 ‘아,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너무 힘들다’라고 확실히 느낀 것 같아요. 저는 그때가 직장생활의 처음이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무슨 말을 들어도 견뎠어요. 이런 게 흔히 말하는 ‘사회생활’이라는 건 줄 알았거든요. 여기에 내가 스트레스받고 힘들어하면, 하하 웃으면서 넘기지 못하면 사회생활 못하는 사람이 되는 거라고 느꼈어요. 저는 그래서 계속 웃고, 나쁜 말을 들어도 웃어넘기거나 모른 척하고, 일에만 집중했어요. 칭찬을 받을 정도로 능률은 좋았지만, 반면 저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어요. 그러다 펑 터져버렸어요. 계속해서 저의 노력은 모두 무시하는 발언들과취급이 있었거든요. "그런 거 할 시간에 청소나 잘해라." "지금 그거 연습할 때야?” “너 그거 할 정도는 아니잖아. 저거나 치워. 설마 나 하라고 내버려 둔 거냐?"

회사에서는 제가 할 수 없는 일들을 시키곤 했죠. 직원 둘이 싸워서 한 명이 갑자기 그만뒀는데, 바로 저보고 그 일도 대신 맡아서 하라고 하던지, 야근을 하거나 쉬는 날 나와서 일을 처리하고, 그렇게라도 안 하면 다시 따로 불러서 혼내기 일쑤였고요. 성차별적인 발언도 너무 많이 들었어요. "여자는 그런 거 하는 거 아니야." "화장 안 할 거야?" "안경 쓰네. 렌즈 안 쓸 거야?" "옷 좀 예쁜 거 입어. & 오늘 옷 예쁘네. 남자친구 만나나 봐, 응?" “여잔데 뭐하러 힘을 써.” “힘이 왜 이렇게 쎄? 운동? 운동을 뭐 하러 해, 징그럽게. 운동 코치라도 될 거야? 요가 같은 건 안 해?” 지긋지긋한 성희롱 발언들. "남친 안 만들 거야? 너 그러다가 결혼하기 전까지 성관계 못 해봐. ㅇㅇ님도(자리에 없던 다른 여자 직원) 지금 남편이 첫 관계 상대잖아. 그렇게 되면 안 되지. 젊은데." "어깨가 작아서 그런가, 이렇게 잡는 느낌이 되게 좋다. 지켜주고 싶어."

그리고 말도 안 되는 트집들, 회식에 꼭 참여하라고 눈치를 준다거나, 참여하면 꼭 가장 높으신 분 옆에 앉게 한다거나, 갑자기 건배사를 하라고 해놓고 무슨말을 꺼내면 그게 뭐냐고 대놓고 트집을 잡거나, 뭔가를 하라 해놓고 하고 있으면 나 자야 되는데 시끄럽다고, 재료 낭비 하지 말라고 혼낸다거나. 뜬금없이너 같은 애는 몇 대 패야 한다고 말한다거나. 자기들한테 살갑게 대하거나 인사하지 않으니 이상한 애라거나 싸가지 없다는 말들. 어느 순간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죠. 사실, 거기까진 괜찮았어요. 거기까진 터지긴 했어도 번아웃이 올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번아웃은‘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내 힘으론 그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졌을 때, 그 순간 모든 게 무너져 내리듯 와버렸어요.

이미 저런 나쁜 말들을 하는 게 사회의 분위기였고, 다들 나이가 나보다 열 살, 많게는 스무 살 이상은 많았기 때문에 저는 함부로 말도 꺼낼 수 없었어요. 저혼자서는 그 큰 벽들에 도전할 기회조차 없었어요. 제가 일이라도 더 잘하면 덜하겠지 싶어 누구보다 빨리 가고, 모두의 편의를 위해 최대한으로 노력해 봤지만, 평도 굉장히 좋아졌지만 그때뿐이었어요. 이미 저는 그런 일적인 것 외로 말도 안 되는 욕을 먹고 하등한 취급을 받았으니까요. 일을 잘해도, 일을 다니며 아무와도 싸운 적 없어도, 인사 잘하고 하하호호 잘 웃어도 기어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을 파고들거나 꾸며내어 나를 까내려갈때, 날 인정해주지 않을 때, 그걸 제가 정확히 인지했을 때 쌓이고 쌓인 것들이 결국 터져버렸어요. 99도까지 올라갔던 것이 100도가 되어버린 느낌.

가끔 스트레스를 받을 때 가볍게 "아 죽고 싶다~" 라는 말을 내뱉었던 것과는 다르게 저는 진심으로 죽음을 원했어요. 그런데 자살을 할 의지조차도 없었어요.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생각은 조금도 할 수 없었어요. 제 주제에 뭔가를 바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겁쟁이가 되어서 ‘누가 나를 죽여줬으면 좋겠다’ ‘그냥 출근하는 길에 차에 치이거나 내가 탄 버스가 사고가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매일 매시간 했어요. 갑자기 건물에 폭발이 일어나서 여기서 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어요. 저는 어떻게든 수동적 죽음을 바라고 있었어요. 사실 죽음이라기보단 회피에 가까웠겠지만요.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었어요. 그렇게 좋아하는 취미 활동도, 친구들과의 만남도 모두 미루고 또 미뤘고, 같이 살고 있던 엄마와의 대화도 줄었죠.

잠도 자기가 싫었어요. 내일이 오는 게 너무 끔찍해서 새벽에 토한 적도 많았어요. 밥도 전혀 안 먹고 직장에서 다 같이 가야 하는 시간에만 한 끼 찔끔 먹은게 다였죠. 그래도 배고픈 걸 못 느꼈어요. 이러다 내가 영양실조가 걸린다거나 병에 걸려서 최소한 병원에 입원하는 상황을 바라기도 한 것 같아요. 눈물도많아져서 별것도 아닌 일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고 남들 눈도 마주치기 어려웠죠. 이건 “왜 대화할 때 감히 싸가지 없이 눈을 마주치냐”며 부모님뻘 상사한테 혼난 탓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신기하게 사표를 쓰겠다는 생각도 못 했어요. 어떻게든 더 이상 욕먹기가 싫었죠. 내가 그만두면 누군가를 뽑아야 하기 때문에 귀찮아하시겠지, 이런 생각으로 멍청할 만큼 꾸역꾸역 버텼죠. 차라리 내가 일을 너무 못하거나 누군가와 크게 싸워서 잘라줬으면 싶었어요. 그만큼 난 남 눈치나 보고 뭐 하나도, 심지어 부정적인 것조차도 능동적이지 못한 인간이 되어버렸죠.

너무 빠른 시간 만에 망가져 버린 거에요. 손톱과 그 주위도 자주 물어뜯게 됐는데 다음날 이 상처를 보고 또 무슨 소리 들을까 무서워서 운 적도 있어요. 정말많이 나약해져 버린 것이죠. 그렇게 일을 시작하고 9개월 정도 되던 날, 밤을 새면서 멍때리다 울다를 반복하다 확실히 느꼈어요. “아,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너무 힘들다. 내가 너무 약해졌고, 뭐가 옳고 그른지 구분도 못 하고, 내 성과에 대해 인정도 못 받고 있다. 이건 정말 비정상적인상황이자 상태인 거다.” 그것이 내가 번아웃을 제대로, 그리고 확실하게 인식한 시점이죠.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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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생 이지영

유리멘탈이라고 손가락질받을 수도 있지만 번아웃 경험이 상당히 많아요. 사회 초년생 시절, 일을 하다가 한 통의 전화를 받았어요. 전무님이었는데 곧 자기의 지인이 가니 커피를 내려서 대접을 하고 있으라는 내용이었죠. 회사와 관련 있는 분들도 아니고 본인의 지인을 내가 응대할 이유가 없으니 못 하겠다고 거절 의사를 밝혔어요. 또 바리스타분들도 휴무라고 말했죠. 그러나 전무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자가 대학생 때 카페 아르바이트도 안 해봤냐, 그 나이 먹고도커피 하나 내릴 줄 모르냐며 수화기가 찢어질 듯이 고함을 질러대며 인신공격을 했어요.

결국 난 커피를 내리며 응대했고, 그 후 시간이 지나도 고함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어요. 내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는데 내가 직장 상사친구들까지 응대를 해야 하나 하며 업무 관련 번아웃을 느꼈죠. (단순히 커피믹스가 아닌 사무실 맞은편 연계된 카페가 있었어요. 바리스타분도 휴무여서 내가 직접 카페 오픈을 하고 커피를 추출했다. 내 업무에는 바리스타 업무가 있지 않았죠.)

회사에 나와 같은 연차의 남자 직원이 있었어요. 그 남자 직원의 직급은 ‘대리’였고, 난 ‘사원’이었죠. 회사 상사와 면담을 할 때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나와 같은 연차인데 직급이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내가 입사하기 전 승진시험을 치렀다던가 전문 자격증이 있다던가 그런 대답을 예상했지만 보기 좋게 빗나갔죠. 상사는 나에게 "쟤는 남자니까 군대를 2년 다녀오는데, 어떻게 너랑 같냐"는 대답을 받았어요. 아무리 내가 열심히 해도 이렇게 처음부터 차별이 발생한다는사실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고 허탈함을 느꼈죠.

착한 딸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 막내딸로 태어나, 부모님께 당연히 애교를 부려야 한다는 편견 속에 살았어요. 부모님은 여자애가 왜 그리 무뚝뚝하냐며 속상하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셨죠. 대신 난 애교는 없지만 착한 딸이 되려고 노력했어요.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무렵부터 부모님께 용돈을 드렸고, 용돈이 아니더라도 기념일에 팔찌, 귀걸이 등 선물하며 어디 모임에 나가서도 기죽지 말라고 틈틈이 챙겼어요. 엄마는 내가 선물한 팔찌, 귀걸이를 그대로 자신의첫째 딸, 장녀에게 고스란히 선물했죠.

한번은 아는 지인이 일을 도와줘서 고맙다며 고향 특산품을 택배로 보내줬었어요. 부모님과 다 같이 먹고 며칠 지나고 또 먹으려 하니 없었어요. 부모님은 네가 다 먹어버렸지 않냐고 하나도 없다고 했지만, 냉동고 구석에 숨겨져 있는 걸 발견했어요. 자신의 아들에게 먹이려고 숨겨놓은 것이었죠. 부모님은 오히려나에게 “욕심 많은 년” “너 혼자 다 꾸역꾸역 쳐먹을려고?” 하고 소리를 질렀죠. 내가 아무리 용돈과 반짝거리는 악세사리를 선물하고 여행도 보내드리며 살갑게 대해도 난 안중에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가족관계에서도 번아웃을 느낄 수 있구나 처음으로 알게 됐어요.

90년생 강지영

4대 보험도, 고용안정의 보장도 없는 방송국 프리랜서예요.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사무실에 상주하는 '상근 프리랜서'. 이름부터 웃기죠. 하지만국장이라는 사람은 이런 체제에 대해서 이해도가 정말 낮아요. 저는 계약서에 명시된 일을 매일매일 성실하게 다 했어요. 그런데도 저에게 일을 왜 이따위로하냐고 하죠. 니 일 내 일 나눠가면서 하면 안 된다고, 다른 사람 일도 도와주라고 해요. 프리랜서 할머니도 이렇게 일 안 한다고.

“최저시급을 받아 가며, 근근이 월세를 내고 살면서, 남의 일까지 도맡고 싶지 않습니다.”

참다 참다 한마디 해 봤자 돌아오는 말은 "그럼 넌 왜 여기서 일하냐? 그렇게 불만이 많으면."

저라고 계속 있고 싶어서 있겠나요. 서울 소재의 4년제 대학을 나와도 갈 곳이 없는 게 제 탓은 아니잖아요. 시기를 잘 타 높은 자리에 올라간 당신 같은 사람에게 “야! 야!” 반말 들어가며 일하는 곳, 저도 때려치우고 싶죠. 주말엔 외주를 해요. 프리랜서는 외주로 먹고사니까요. 이렇게 매일 일하고, 집에 들어가서 고양이를 끌어안고 있자면 눈물이 흘러요. 너희랑 행복하게 사는게 내 꿈인데, 같이 ‘살아’보려고, 돈 버느라 정작 너희를 잘 보지도 못하네, 하면서 울죠. 매일매일이 번아웃이에요.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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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에 대처하는 법

00년생 박지영

너무 참지 말라! 라는 말은 당연한 말이면서도 정말 어려운 말이에요. 나도 번아웃을 겪기 전에 이 비슷한 상황들을 들으면 “참지 말고 뭐라고 해버려!”라는말을 했겠지만 직접 겪어보니 그게 참 어려운 거라는 걸 알 수 있었죠.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내 탓 하지 말자’에요. 스스로를 너무 죄인 취급할 필요가 없어요. 번아웃이 왔다는 건 적어도 열심히 해봤다는 뜻이니까, 그만큼 내가활활 타봤다는 증거기도 하죠. 전혀 한심하지 않고, 멍청하지도 않아요.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지고, ‘난 왜 이 정도도 못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당연히 들수도 있지만, 내가 힘들었다면 그건 힘든 일이 맞아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니까 그건 당연한 거에요. 절대 나의 잘못이 아니에요. 누구나 그 정도의 열정을 부어버리고 스트레스를 받아버린다면 못 버티고 망가지죠.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어요. 난 그저 노력했고, 멋있었고, 이제 쉴 때가됐다는 걸 알기만 하면 돼요.

사람들은, 특히 이런 사회에서 살아온 여자들은 남들에게 나쁜 말은 하기 어려워하면서 나에게는 자기도 모르게 나쁜 말을 하며 비하하죠. 모든 이상한 상황에 대한 원인을 나에게서 찾고, 내가 다 잘못한 거라 사과해야 하고, 잘난 척은 절대 하면 안 되는 것이며, 나를 향한 칭찬은 오글거리고 민망해서 할 줄도 들을 줄도 모르죠. 나도 그랬고, 우리 엄마도 그랬고, 내 주변 여자 친구들도 다 그랬어요. 정도는 다르더라도 대부분이 저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을 거예요. 우린 그걸 바꿔야 해요. 그래야 벗어날 수 있어요. 이 세상 누구보다 나를 예뻐해 주고 사랑해 주고 자랑해야 하는 건 내 자신이죠. 적어도 남들에게 예의 차리고 칭찬하는 만큼, 나를 칭찬하는 시간도 정말 필요해요. 장하다고, 수고했다고 우쭈쭈해주기도 하고, 내 편을 들면서 ‘넌 잘못 없어! 그 사람이 이상했네’라고말해줄 사람이 되어야 해요.

자신을 칭찬하고 편을 들어줄 때 중요한 건, 그 안 좋았던 상황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는 거예요. 그럼 단순한 뒷담화가 되고, 화를 내느라 에너지를 다 뺏겨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그 상황과 감정을 떠올려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어요. 잡음이 나는 채널을 틀면 아무리 좋은 노래가 나오고 예쁜 화면이 나와도 불편하고 신경 쓰이기 마련이죠. 그럴 땐 얼른 깔끔한 채널을 찾아 바꿔버리고 좋은 것만 보고 듣고 생각하도록 해야 해요. 자신을 예뻐해 주면서 나쁜 일 보다는 좋은 일에 집중하기. 이것만 잘해도 정말 많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당신의 잘못은 없어요. 그리고 당신 혼자 이 어려움들을 이겨내야 하는 이유도 없죠. 그저 당신 스스로를 칭찬하고 응원하면서 멋지게 빛나기를 바라죠. 우리 여자들은 그 상처들을 알고 있어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죠. 그러니 힘든 게 있다면 숨기지 말고 이야기해 줘요.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요.

90년생 이지영

번아웃에 대처하는 건 사실 특별한 대처 방법이 없죠. 내가 많이 예민하다는 걸 인정하고 번아웃과 함께 따라오는 우울, 불안, 스트레스를 이겨내려고 무리하지 않고 평생 함께해야 하는 또 다른 동반자라고 생각하니 조금 나아졌어요. 이것을 잘 관리해서 내 자신이 부정적인 감정에 잡아먹히지 않게 할 뿐이죠.

요리를 조금씩 하기 시작했어요. 뭔가 거창한 게 아니라 SNS에 핫한 인스턴트 조합 음식이라도 좋아요. 재료를 사러 마트, 편의점에 가고, 재료를 손질하고음식 만드는 과정에 집중하다 보면 다른 생각은 사라져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나 자신을 다독이죠. 얼마 전 SNS에서 유행했던 순두부 라면을 해 먹었어요. 살짝 매운 라면에 순두부를 넣는 건데, 두부를 넣으니 뭔가 건강한 느낌도 나고 숟가락으로 순두부를 건져 먹으면 말랑한 식감에 매운맛도 중화되는 것 같았어요. 그래도 기본 베이스는 매운 라면이라 먹다 보면 살짝 땀이 났고 다 먹고 샤워하고 나오니 개운한 느낌이 들었어요.

나뿐만 아니라 직장 내 성차별, 차별, 일에 대한 회의감, 가족관계로 인해 번아웃, 우울,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모든 여성들에게 포기하지 말고 함께 하자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늦어도 괜찮다고. 억지로 나에게 스트레스 주는 것들과 가까이 있을 필요는 없어요. 가족과도 친구와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나만의, 자기만의 방을 만드는게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80년생 남지영

유리천장을 뚫는 것도, 성평등한 조직을 만드는 것도 혼자서는 힘겹기 마련이죠. 그러나 나 혼자가 아니라 다른 누구와 함께라면 우린 더 잘 버티고, 이겨내며 우리의 공간을 넓히고,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요. 더 많이 연대하고 더 많이 지지하며 함께하길 바랍니다. 저도 그러할 것이고, 다른 분들도 그리하다 보면서로를 알아보고 가슴 따뜻해지는 날이 올 것입니다.

90년생 강지영

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거예요. 저도 그러니까요. 그러나 함께 연대하는 여성들이 있어 소속감을 느껴요. 누군가가 저를 보고 힘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인생은 어떻게든 흘러간다고 해요. 한 고개 한 고개 넘다 보면, 우리에게도 봄은 올 거예요!

90년생 예지영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무리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서 오래오래 봤으면 좋겠어요. 더 이상 자리를 지키고 있던 여성들을 잃고 싶지 않아요. 만약 너무 힘이 들 때가 있다면 눈과 귀를 조금 닫기도 하고, 또 주위 사람들에게 나는 이걸 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내보이기도 하면서요.

* 인터랙티브 연결 : https://92kim.womennews.co.kr/

※ 본 기획기사와 인터랙티브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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