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성폭행 사건’ 1심 재판부 밝혀
피해자 정신과 상담일지 증거로
‘박원순 성추행’ 구체적으로 언급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한 법원 판결이 나왔다. 지난해 7월 박 전 시장에 대한 성추행 사건 의혹이 불거진 지 약 7개월만이다. 재판부는 선고에서 촬영·녹음하지 않는 이상 물적 증거가 없는 성폭력 사건 특수성을 언급하는 등 성인지 감수성을 갖춘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부장판사 조성필)는 14일 동료 여성 직원을 성폭행한 혐의(준간강치상)로 재판에 넘겨진 전 서울시장 비서실 직원 정모씨에게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또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다. 이날 구속된 정씨는 박 전 시장의 의전 업무를 담당했던 인물이다. 이 사건 피해자는 박 전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와 동일인이다. 

13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차려진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민분향소가 철거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해 7월 13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차려진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시민분향소가 철거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재판부 “피해자 상당한 정신적 고통”
‘성폭행’ 서울시 전 비서실 직원 재판서 드러나

가해자인 정씨는 지난해 총선 전날인 4월 14일 동료 직원들과 술자리를 가진 후 만취한 피해자를 모텔로 데려가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자는 다음 날인 4월 15일 정씨를 경찰에 고발했고, 6개월 이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었다.

정씨는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가 PTSD를 겪은 것은 자신이 아닌 박 전 시장의 성추행 때문이라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해왔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피해자의 상담 및 의무기록 전체를 대상으로 문서제출명령을 신청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병원으로부터 지난해 5월부터 정신과 치료 및 상담 내역을 받아왔다.  

재판부는 박 전 시장 성추행 사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정씨의 범행이 피해자가 겪는 PTSD의 주 원인이라고 판단했다. 또 “피해자가 박 전 시장 성추행으로 인해 상당한 정신적 고통 받은 건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이 사건 범행으로 ‘스스로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등에 잠을 잘 수 없다’는 등 고통을 호소하며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며 “오랫동안 신뢰했던 피고인(정씨)으로부터 피해당한 것에 대한 배신감, 수치감,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한 억울함, 사회적 관계에 스스로 과민하게 반응하고 위축되어 있는 등 심한 스트레스 겪으며 스트레스 장애 겪었다”고 했다.

서울시 전 비서실 직원 A 씨가 22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서울시장 비서 성폭력' 혐의 관련 1차 공판을 마친 뒤 법원을 빠져 나가고 있다. ⓒ여성신문·뉴시스
서울시 전 비서실 직원 정모씨가 지난해 10월 22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성폭행 혐의 관련 1차 공판을 마친 뒤 법원을 빠져 나가고 있다. ⓒ여성신문·뉴시스

 

조 판사, 피해자 진술 중요성 강조하며
촬영·녹음 하지 않는 이상 ‘객관적 증거’
있을 수 없는 성범죄 사건 특성 언급

이날 재판부는 선고에서 성범죄 사건 특성을 언급하는 등 피해자 진술의 증거 능력을 강조하며 대법원이 강조하는 성인지 감수성 취지에 부합하는 재판 과정을 보여줬다.

재판부는 선고에서 “피고인은 피해자를 강간했다는 객관적 증거가 없다는 취지로 주장하나 성범죄 사건은 본인이 스스로 촬영·녹음을 하지 않는 이상 객관적 증거가 있을 수 없다. 피고인과 피해자의 진술 중 어느 것을 신뢰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또 또 피해자가 성범죄 지원·조사 기관인 해바라기센터 등 수사기관 조사 이후 법정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성폭력 피해를 진술하고 있다며 “피고인과 피해자의 기존 관계 등을 비춰보면 피해자가 경험하지 않은 사실을 꾸며냈다고 보기 어렵고 피해자 진술이 신빙하기 어렵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서울시장 위력성폭력사건’ 피해자 변호인단인 서혜진 변호사는 “대개 물적 증거가 있을 수 없는 성범죄 사건의 특성을 외면하고 성폭력 피해의 객관적 증거를 요구하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이번 재판부는 선고에서 성범죄의 특성을 언급하며 피고인이나 피해자 진술이 중요한 판단 근거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재판을 맡은 조성필 부장판사는 지난해 11월 비공개로 열린 1심 공판에서도 “3년 동안 성폭력 전담 재판부에서 일하면서 많은 피해자를 보았다”며 “이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피해자를 위로해 주목받았다. 피해자도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해준 재판부에 고마움을 표했다.

이날 선고 직후 ‘서울시장 위력성폭력사건’ 피해자 변호인단은 “법원 판결을 환영한다. 피고인에 대한 처벌로 사법 정의를 실현해준 법원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특히 변호인단은 “피해자에게 향하는 2차 가해를 멈춰달라고 적극적으로 목소리 내달라. 피해자에 대한 적극적인 공감과 연대, 2차 가해 차단이 피해자가 일상으로 돌아가는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피해자 어머니의 탄원서 일부를 언급했다. “나는 혹시라도 우리 딸이 나쁜 맘을 먹을까봐 집을 버리고 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우리 딸은 밤새도록 잠을 못자고 불꺼진 방에서 휴대폰을 뒤적거립니다. 뉴스를 확인하고 악성댓글들을 보고 어쩌다 잠이 든 딸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나는 우리 딸이 정말 숨을 쉬지 않는지 확인을 하느라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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