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과 시의 경계를 탐색한 시인

최정례 시인

최정례 시인이 16일 오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66세. 

1955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난 최정례 시인은 1990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내 귓속의 장대나무숲』, 『붉은 밭』, 『개천은 용의 홈타운』 등이 있으며 지난해 11월 등단 30주년에 맞춰 7번째 시집 『빛그물』을 펴냈다. 백석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수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오장환문학상 등을 받았다.

우주의 어느 일요일 / 한 시인이 아직 쓰지 못한 말을 품고 있다 / 그렇게 많은 사랑의 말을 품고 있었는데 / 그것은 왜 도달하지 못하거나 버려지는가 // 나와 상관없이 잘도 돌아가는 너라는 행성 / 그 머나먼 불빛 

(‘우주의 어느 일요일’ 부분, 시집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 수록)

최정례 시인은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대학원 공부를 시작해 산문이 어디까지 시가 될 수 있는지 그 경계를 탐색했다. 미국의 초현실주의 시인 제임스 테이트의 산문시집 『흰 당나귀들의 도시로 돌아가다』를 번역해 국내에 소개하기도 했다. 

최정례 시인의 마지막 시집이 된 『빛그물』 ⓒ창비
최정례 시인의 마지막 시집이 된 『빛그물』 ⓒ창비

 

“천변에 핀 벚나무가 꽃잎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바람도 없는데 바람도 없이 꽃잎의 무게가 제 무게에 지면서, 꽃잎, 그것도 힘이라고 멋대로 맴돌며 곡선을 그리고 떨어진 다음에는 반짝임에 묻혀 흘러가고// 그늘과 빛이, 나뭇가지와 사슴의 관이 흔들리면서, 빛과 그림자가 물 위에 빛그물을 짜면서 흐르고 있었다” (‘빛그물’ 부분, 시집 『빛그물』 수록)

최 시인은 지난해 중반 희귀 혈액질환을 진단받아 퇴원과 입원을 반복하며 항암치료를 받았다. 마지막 시집이 된 『빛그늘』은 투병 병상에서 매만진 작품집이었다. 심층의 감각으로 미지의 세계를 기록한다는 평을 받았다. 김인환 평론가는 이 책의 추천사에 “어떠한 위기와 시련에도 손상되지 않는 인간의 신비”를 읽을 수 있다고 썼다.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7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8일 오전 6시 20분에 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