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족만 아니면 잊게 되는 타인의 고통
노동자의 생명에,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에 무감각한 정치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마틴루터킹과 수전손택의 말 잊지 말아야
이분법적 세계관을 넘은 타인을 향한 연대가 필요하다

한때 인기 방송을 통해 ‘나만 아니면 돼’ 라는 말이 유행했다. 해당 방송의 참여자들은 벌칙을 피하고자 배신과 거짓말 같은 방법을 마다하지 않았다. 벌칙을 받는 동료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등장한 말이 바로 ‘나만 아니면 돼’ 였고 시청자들은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어떤 이들은 해당 방송이 청소년들의 교육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비판하기도 했지만, 나는 한편으로 그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의 씁쓸한 진실을 오락이라는 이름으로 드러낸 것이 아닐까 싶었다.

“우리는 아침을 먹으며 조간신문에 실린 사망자 명단을 보지만, 커피를 마시면서 그 기억을 모두 잊어버린다.”
수전 손택은 본인의 저서 <타인의 고통>에서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해지는 현대인들을 비판했다.
부조리한 사건을 두 눈으로 봐도 내 아이만 괜찮으면, 내 가족만 괜찮으면 금방 잊기 쉬운 세상이다. 어떤 이들은 노동자의 생명을 위한 법이 국회에서 누더기로 통과돼도 기계에 깔려 죽는 노동자는 ‘내 가족’이 아니기에 민주당 의원들의 입장을 더 걱정해주곤 한다. 여성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국회의원이 된 사람은 자신과 자신이 속한 그룹의 이익 앞에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을 망각하기도 한다. 각자도생, 이합집산이 현 정치와 사회의 시대정신처럼 보인다.

이화여자대학교는 오는 20일까지 진행되는 중간고사 시험기간 동안 재학생들에게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든든한 이화사랑’ 프로그램을 실시한다고 18일 밝혔다. 학생들이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헬렌관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있다. 2018.04.18. (사진=이화여자대학교 제공) ⓒ뉴시스·여성신문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이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헬렌관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있다. 2018.04.18. (사진=이화여자대학교 제공) ⓒ뉴시스·여성신문

1967년 시카고에 있는 한 교회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이렇게 연설했다.

“당신의 아침, 욕실에서 당신 손에 쥐어진 비누는 프랑스 사람 덕분입니다. 당신에게 스펀지를 건네준 사람은 터키인입니다. 당신이 수건을 쓸 수 있는 것은 태평양 섬에 사는 어떤 사람의 힘입니다. 그러고 나서 당신은 주방에서 아침을 먹습니다. 남아메리카에서 온 커피 한 잔을 컵에 담습니다. 아니면 오늘 아침에는 차를 마시고 싶은 마음에 중국인이 있어 마실 수 있는 차를 따릅니다. 이도 아니면 당신은 서아프리카에서 온 코코아를 마시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그다음 당신이 손을 뻗어 잡은 작은 빵은 제빵사는 말할 것도 없고 농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기 전에 우리는 전 세계 절반에  몸을 기대고 있습니다. 그것이 신이 이 세상을 만든 방식입니다.  우리는 다른 존재들에게 의존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 이외의 생명들을 걱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우리가 보내는 하루의 순간조차 모르는 곳에 사는 누군지 모를 사람들의 수고가 있다고 강조한다. 때문에 나 아닌 다른 존재에 대해 늘 깨어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수전 손택 또한 타인은 내가 아니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을 진심으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일시적 연민에 그치지 않고 타인의 고통에 자신도 관계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이들이 말한 것이 연대이고, 수천 년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온 인류의 강력한 생존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인용 결정한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탄핵축하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2017.03.10. ⓒ뉴시스·여성신문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인용 결정한 2017년 3월 1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탄핵축하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아스팔트에서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에게 문재인 정부는 남다를 것이다. 비에도 눈에도 지지 않고 틀린 것을 틀리다고 말하며 싸워 결국, 굳건한 적폐 권력이 무너진 것을 ‘함께’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함께 싸웠던 시간과 마음은 때때로 문재인 정부와 그 주변 인사들의 흠결에 기꺼이 눈감는 이유가 됐다. 지지와 연대를 이어가야 적폐 세력의 재집권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 아닐까. 그러나 우리가 집권 세력의 부조리에 침묵하는 사이 세상은 촛불 이전의 모습으로 어물쩍 돌아가고 있다. 나와 연결된 이름 모를 타인은 그 때문에 고통받는다. 깨어있기 위해 적과 동지라는 이분법적 세계관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탈진실의 시대에 난무하는 거짓과 혐오를 뛰어넘어 진실을 들여다볼 용기와 타인에 대한 공감 그리고 연대가 필요하다.

3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시민들의 힘으로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는다. 58년 전 연대와 자긍심으로 서로에 대한 분노와 차별을 뛰어넘길 바랐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꿈은 우리 모두의 꿈과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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