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칠곡군 '성인문해교육' 수강 할머니 5인
각자의 이름을 딴 서체 출시
앞서 집필 시집 3종 출간 등 인기
한글문화연대 정재환 씨 서체 홍보대사 위촉

뒤늦게 한글을 깨우친 경상북도 칠곡군 할머니들의 손글씨를 딴 서체가 출시됐다. 

칠곡군은 지난해 12월, 칠곡군 할머니 5명의 글씨체를 한글과 영문 서체로 제작해 홈페이지를 통해 정식 배포했다. 군은 시집, 영화 제작으로 이어진 성과를 점검하고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들에게 어머니의 따스한 마음과 고향의 정을 전달하기 위해서 체를 제작했다고 밝혔다.

칠곡할매 권안자체. 칠곡할매서체는 할머니들의 손글씨를 따서 만들어졌다. ⓒ칠곡군
칠곡할매 권안자체. 칠곡할매서체는 할머니들의 손글씨를 따서 만들어졌다. ⓒ칠곡군

군은 지난해 6월 성인문해교육을 받는 할머니 400여 명 중 개성 있는 글씨체를 지닌 5명을 선정했다. 이어 약 4개월간 펜을 바꿔 가며 한 명당 2000장의 종이에 연습한 끝에 총 5종의 폰트를 완성했다. 각각 할머니들의 이름을 딴 칠곡할매 김영분체, 칠곡할매 권안자체, 칠곡할매 이원순체, 칠곡할매 이종희체, 칠곡할매 추유을체로, 개인 및 기업 사용자에게 무료 배포 중이다.

이종휘(78) 할머니는 서체 배포 소식에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나. 아들, 손주, 며느리가 내가 죽고 나면 내 글씨를 통해 나를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백선기 칠곡군수는 “코로나19로 힘든 상황에도 값진 문화유산을 만들어냈다”며 “문화 수혜자에서 공급자로 우뚝 서 계신 칠곡 어르신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칠곡군 성인 문해교육에 참가한 다섯 분의 할머니들이 자신의 글씨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폰트로 쓰인 글자판을 들고 있다. ⓒ칠곡군
칠곡군 성인 문해교육에 참가한 다섯 분의 할머니들이 자신의 글씨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폰트로 쓰인 글자판을 들고 있다. ⓒ칠곡군

칠곡군은 2008년부터 ‘성인문예반’을 마을별로 운영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두 차례 모여 한글을 배우고 시를 쓰는 일종의 어르신 평생교육 프로그램이다. 2015년 칠곡군은 할머니들이 쓴 시 98편을 보관해뒀는데, 우연히 지역 문인들이 보고 감탄했다. 이를 묶어 첫 시집을 내게 됐는데, 교보문고와 인터넷서점에 내놓은 『시가 뭐고?』가 2주일 만에 다 팔리며 인기를 끌었다. 이듬해 2016년 서울국제도서전에 초청되기도 했다. 

이어 2016년에는 두 번째 시집 『콩이나 쪼매 심고 놀지머』, 2018년에는 세 번째 시집 『내 친구 이름은 배말남 얼구리  애뻐요』가 출간됐다. 두 번째 시집 작품을 고르고 해설을 맡은 김해자 시인에 따르면 이 시집은 “일반 시집의 형식과는 조금 다른, 삶의 결이 그대로 기록된 역사서”다. 

칠곡군 할머니들이 쓴 시를 담은 시집 3종. ⓒ삶창, 코뮤니타스
칠곡군 할머니들이 쓴 시를 담은 시집 3종. ⓒ삶창, 코뮤니타스

한편 유명 개그맨·방송인 출신 정재환(58)씨가 ‘칠곡할매 서체’ 홍보대사로 활동한다. 정씨는 역사학자이자 대학교수로 활동 중이며, 한글문화연대를 만들어 우리말·글 사랑 운동을 펼치고 있다. 18일 칠곡군에 따르면 그는 서체 홍보와 더불어 행사와 강의 등으로 성인문해교육과 한글사랑운동을 펼칠 계획이다. 

정씨는 "칠곡할매 서체는 일제 강점기를 살아온 어머님들의 굴곡진 삶과 애환이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한글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새 역사를 쓴 것"이라며 "한글을 사랑하고 어머님을 기억하는 마음으로 칠곡할매 서체를 많이 사랑해 달라"고 당부했다.

칠곡할매글꼴 홍보대사로 위촉된 정재환 교수 ⓒ칠곡군
칠곡할매서체 홍보대사로 위촉된 정재환 교수 ⓒ칠곡군

칠곡할매서체는 칠곡군 홈페이지(www.chilgok.go.kr)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칠곡군은 이 글꼴을 칠곡군 홍보 문구 표기와 칠곡 지역 특산물 포장 등에도 활용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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