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 20년] ② 성과
여성정책 공식 기구 설립 이후
제도로서 여성·성평등 정책 정비
민관협치로 호주제 폐지 등 이끌어
시혜와 단속 위한 정책 벗어나
성주류화로 정책 패러다임 전환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24일 인사청문회에서 선서를 하는 모습. ⓒ뉴시스·여성신문

 

“실질적 성평등 사회 실현에 힘쓰겠습니다.”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29일 취임사에서 밝힌 취임 일성이다. “보다 성평등하고 포용적인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정책”에 역점을 두겠다며 가장 먼저 언급한 정책이 ‘실질적 성평등’이다. 신임 여가부 장관의 포부에는 법·제도는 마련됐지만 더딘 사회 변화를 담고 있는 말이자, 실질적 변화를 이끄는 맨 앞줄에 여가부가 서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1995년 북경여성대회
1995년 북경여성대회

 

“여성의 권리는 인간의 권리”

여성부 설립 과정은 다운톱(Down to Top·상향식)에 가깝다. 1980~1990년대에 일었던 가열찬 여성운동과 변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힘, 국제적 흐름이 한데 모여 일궈낸 열매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여성운동단체들이 만들어졌고 이후 본격적으로 여성의 사회 참여와 성평등 사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당시 국제 사회에서도 여성발전을 위한 다양한 파도가 일었다.

‘베이징여성대회’가 대표적이다. 1995년 8월 30일부터 9월 15일까지 중국 베이징에서 유엔(UN) 제4차 세계여성대회(베이징여성대회)는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여성발전을 위한 행동규범을 제시한 ‘사건’이다.

189개 국가의 정책 전문가, 활동가, 정부 대표들이 참석한 이 행사에서 21세기 여성발전을 위한 전략으로 ‘성주류화(gender mainstreaming)’를 채택한 ‘베이징행동강령’이 발표됐다. 이 행동강령은 모든 유엔 회원국들의 여성발전을 위한 행동규범으로서 역할을 하게 됐다. 당시 미국 대표로 참석한 힐러리 클린턴 대통령 부인은 “여성의 권리를 인권과 별도로 논의하는 것은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인간의 권리는 여성의 권리(Human rights are women's rights)이고 여성의 권리는 인간의 권리”라는 유명한 연설을 남겼다.

당시 500명 규모의 대표단을 베이징에 파견한 한국 정부는 베이징여성대회 직후인 그해 10월 대통령 자문기구인 ‘세계화추진위원회’를 통해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를 위한 10대 과제’를 내놓았다. 그 과제 중 하나가 ‘여성발전기본법 제정’이었다. ‘여성발전’이라는 법 명칭이 성평등이라는 법 제정 취지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쏟아졌으나 충분한 논의 없이 3개월 뒤인 12월 30일 해당 법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정영애(오른쪽) 여성가족부 장관이 1월 21일 서울 은평구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을 찾아 기관 종사자들을 격려하고 나윤경 원장과 함께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여성가족부
정영애(오른쪽) 여성가족부 장관이 1월 21일 서울 은평구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을 찾아 기관 종사자들을 격려하고 나윤경 원장과 함께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여성가족부

 

부녀복지→여성발전→성주류화

변화의 물결 속에 여성정책의 대상도 달라졌다. 1980년대 이전까지 여성정책은 ‘윤락여성’, ‘전쟁미망인’ 등 ‘요보호 여성’(보호를 받는 여성)을 대상으로 했다. 이후에도 아내라는 이미지의 ‘부녀(婦女)’를 정책 대상으로 삼는 등 여성을 단속이나 정책의 수혜자로 간주하는 시혜적 차원으로 정책이 마련됐다. 1988년 정무장관(제2)실, 1998년 여성특별위원회, 그리고 2001년 여성부 출범은 여성정책 ‘요보호 여성’을 벗어나 ‘여성’으로 확장하는 결정적 계기였다.

다운톱 방식으로 세상에 태어난 여성부는 출범 초부터 민관협치(거버넌스) 체제를 도입해 활발히 운영했다. 여성정책 관련 학자와 활동가들이 정부부처에 참여하고 시민사회를 연결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여성부는 젠더 거버넌스를 통해 여성들의 숙원 과제였던 호주제 폐지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성매매 특별법 제정에 나선다. 여성학자, 여성운동단체 등과의 민관협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법·제도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와 함께 해야 한다는 점, 현장에서 쌓은 전문가의 경험과 노하우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다는 점, 여성들의 경험에 기반한 의제가 국가 정책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지난 2018년 여성정책은 또 한번 큰 변화를 겪었다. ‘여성발전’을 목표로 한 여성발전기본법을 전면 개정에 탄생한 ‘양성평등기본법’이 시행되면서 한국 사회는 성평등 사회를 향해 한발 더 내딛었다. 20년 전 여성부 출범 당시 영문 명칭인 ‘Ministry of Gender Equality’, 즉 성평등 전담 부처라는 이름 그대로 양성평등기본법은 ‘실질적 양성평등’을 목표로 삼고 있다. 관건은 법제도 변화가 실질적인 삶의 변화로 이어지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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