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56년 만의 미투’ 최말자씨 재심 청구 기각
법원, ‘56년 만의 미투’ 최말자씨 재심 청구 기각
  • 이하나 기자
  • 승인 2021.02.18 14:48
  • 수정 2021-02-18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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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성폭력 남성 혀 깨물었다가 되려 옥살이
재판부 “무죄 입증할 명백한 증거 없어”
‘미투’ 최말자씨 측 즉각 항고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해 5월 6일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개시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법원에 재심 청구서를 접수했다. 사진=한국여성의전화 제공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해 5월 6일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개시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법원에 재심 청구서를 접수했다. 사진=한국여성의전화 제공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 지난 56년을 바로 잡고 싶다.”

성폭력에 저항하다 가해남성의 혀를 절단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은 최말자(76)씨가 지난 2020년 5월6일 재심을 청구하며 한 말이다. 그러나 법원은 최씨의 재심 청구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죄를 입증할 명백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부산지법 제5형사부(재판장 권기철)는 재심청구인 최씨의 재심청구 사건과 관련 재심 이유가 없어 기각 결정했다고 18일 밝혔다.

지난해 8월, 12월 두 차례 심문을 진행한 재판부는 “청구인이 제시한 증거들을 검토한 결과 무죄 등을 인정할 새로운 명백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형사소송법 420조는 유죄 확정판결에 대해 증거가 추가로 발견되거나 수사기관의 불법성이 확인되면 재심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최씨는 56년 전인 1964년 5월6일 당시 18살이었던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 노모(당시 21세)씨에게 저항하다 그의 혀를 깨물었다. 이 과정에서 노씨의 혀 1.5㎝가 잘렸다.

노씨는 보름 뒤 흉기를 들고 최씨의 집에 찾아가 자신의 혀가 잘렸다며 난동을 부렸다. 이후 노씨는 최씨를 상해죄로 고소했다. 재판부는 최씨의 행동이 노씨가 성폭력을 시도하게 된 원인이 됐을 것이라며 최씨에게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의 유죄 판결을 내렸다. 노씨가 말을 하지 못하는 ‘불구’가 됐음을 전제로 중상해죄를 적용했다. 가해자 노씨가 받은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보다 무거운 처벌이었다. 최씨는 6개월간 억울한 옥살이까지 해야 했다.

50년 동안 혼자 속으로만 고통을 삭혀오던 최씨는 미투(MeToo) 운동이 한창이던 2018년 용기를 얻어 한국여성의전화에 도움을 요청했고 2020년 5월6일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그러나 재심 청구 재판부는 “청구인이 제시한 증거들을 검토한 결과 무죄 등을 인정할 새로운 명백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현행 형사소송법이 정하고 있는 재심 청구의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최씨 변호인단은 노씨가 말을 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전문가 의사가 만든 상해진단서와 감정서 등을 판단한 결과 언어능력에는 실제로 장애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또 형법상 중상해죄 구성요건인 ‘불구’의 개념이 반드시 신체 조직의 고유한 기능이 완전히 상실된 것만을 의미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법률의 해석이나 적용의 오류만으로 재심을 개시하지 않으며 검사의 불법구금 등을 증명할 객관적인 자료가 제시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재판부는 결정문을 통해 “청구인에 대한 공소와 재판은 반세기 전에 오늘날과 다른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이뤄진 일이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당시의 사건을 뒤집을 수는 없다”면서도 당시 법원의 성차별적 인식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생면부지의 건장한 남성으로부터 힘으로 눌려 성범죄를 당한 순간, 열아홉 소녀는 오로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입안에 들어온 혀를 깨문 것이다. 과연 오늘날과 같이 성별간 평등이 우리 사회가 지향할 주요한 가치로 실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면 청구인을 감옥에 보내지고 가해자로 낙인찍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가 정당방위에 관한 법리를 논할 때 언제나 등장하고 회자되었던 '혀절단' 사건의 바로 그 사람인 청구인이, 반세기가 흐른 후 성별 간 평등의 가치를 선언해 달라고 법정에 섰다”며 “우리 재판부 법관들은 청구인의 재심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이러한 청구인의 용기와 외침이 헛되이 사라지지 않고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 공동체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커다란 울림과 영감을 줄 것이라고 답변한다. 성별이 어떠하든 모두가 귀중하고 소중한 존재임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한편 재심청구 기각에 대해 최씨 변호인 측은 즉시 항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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