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이즈 본(A Star Is Born)’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동명의 영화 제목이기도 한 이 구절은 대중에게 사랑받는 유명인의 탄생을 뜻합니다. 어쩌면 스타는 혜성처럼 반짝 등장하는 게 아니라 굴곡과 변화를 거쳐 끊임없이 재탄생하는지도 모릅니다. 음악, 영화, 드라마 등 대중문화에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시대의 아이콘으로 거듭나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여성신문에서는 ‘#2030 여성스타’를 통해 대중문화를 이끌면서도 자기다움을 지키는 젊은 여성 스타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첫 번째는 세계적인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입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영향력은 화려한 수상 이력을 넘어선다. ⓒ테일러 스위프트 인스타그램 갈무리
테일러 스위프트의 영향력은 화려한 수상 이력을 넘어선다. ⓒ테일러 스위프트 인스타그램 갈무리

팝 디바, ‘빌보드 200’ 1위를 가장 많이 한 여성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32)다. 그는 지금까지 7번의 그래미 수상, 11번의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수상, 7번의 컨트리 뮤직 어워드 수상, 6번의 아카데미 오브 컨트리 뮤직 어워드 수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선한 영향력를 만들어 가는 스타다. 거액의 기부를 ‘쾌척’하며 사회공헌 활동에 앞장서고, 여성과 소수자를 위한 페미니즘 운동에 동참한다. 작년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었을 때는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고 신장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조 바이든 후보를 공식 지지하고 나서기도 했다. 

10대 싱어송라이터, 컨트리 음악의 역사를 새로 쓰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데뷔 앨범 'Taylor Swift' 커버 사진. ⓒUMG
테일러 스위프트의 데뷔 앨범 'Taylor Swift' 커버 사진. ⓒUMG

테일러 스위프트는 ‘세계에서 가장 돈 많이 버는 음악가’(영국 선데이익스프레스)라는 별칭이 있다.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대중에게 인기가 많은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 그런 그의 시작은 예상 외로 컨트리 음악이다. 1989년 펜실베이니아 주 레딩에서 태어나 12살부터 컨트리 음악을 시작한 그는 14살 소니 레코드와 계약한 최연소 아티스트가 됐다. 그리고 2006년, 18세의 나이에 데뷔 앨범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를 발매하며 컨트리 음악계에 혜성처럼 떠올랐다. 

2008년 두 번째 앨범 ‘피어리스(Fearless)’는 2009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음반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 앨범으로 그는 2009년 그래미상에서 최연소로 ‘올해의 앨범’상 수상을 비롯해 4개 부문에서 상을 받으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그는 성공가도를 달렸다. 2010년에는 세 번째 정규 앨범 ‘스피크 나우(Speak Now)’가 발매 첫 주에만 100만 장 넘게 팔렸다. 2012년 네 번째 정규 앨범 ‘레드(Red)’ 또한 발매 첫 주 120만 장이 팔리면서 테일러 스위프트는 발매 첫 주 100만 장을 판 두 장의 음반을 보유한 첫 여성 가수로 이름을 올렸다. 이후 2014년 ‘1989’, 2017년 ‘레퓨테이션(Reputation)’도 첫 주에 100만 장 이상 팔리며 4개 앨범이 첫 주에 100만 장 이상 팔린 역사상 유일한 아티스트가 됐다. 

탄탄대로 걷던 테일러 스위프트의 시련, 그리고 변화: 다큐 '미스 아메리카나'

테일러 스위프트의 음악과 인생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미스 아메리카나'(2020). ⓒ넷플릭스
테일러 스위프트의 음악과 인생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미스 아메리카나'(2020). ⓒ넷플릭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이면에는 스타를 향한 비판이 있게 마련이다. 테일러 스위프트를 향한 조롱과 혐오의 언어가 쏟아진 시기가 있었다. 2016년, 카니예 웨스트가 그를 비하하는 내용을 가사에 담으며 그의 허락을 구했다는 증거를 내보이자 가식쟁이에 사기꾼으로 몰린 것이다. 사실이 아니었지만 여론은 비난 일색이었다. 데뷔 10년차이던 그 해, 그는 갑작스럽게 SNS 계정의 게시글을 삭제하거나 비공개로 돌렸다. 그는 “지쳤다”고 말했다. 

그가 지친 이유는 온라인상의 비난과 혐오표현 때문만은 아니다. 가수이자 공인으로 살아가며 테일러 스위프트는 과도한 다이어트로 섭식장애를 앓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성희롱 피해 사건으로 법정에 서야 했다. 그 와중에도 ‘착한 아이’로서 정치나 종교에 관한 발언도 해선 안 된다는 암묵적 규칙을 열심히 지켰다.

착한 아이는 사람들에게 입장을 강요하지 않고, 웃고 손을 흔들며 감사하다고 하면 되는 거죠.
착한 아이는 자신의 가치관으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아요.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고 집착했던 것 같아요. 혹시라도 말이 나올 주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죠. (...)
사람들이 내게 ‘끼어들지 마’라고 말하는데, 이제 더는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어요.

- 테일러 스위프트를 다룬 음악 다큐멘터리 ‘미스 아메리카나’ 중에서 -

테일러 스위프트는 강했다. 1년 뒤인 2017년, 그는 자신에게 쏟아진 온라인 공격과 성추행 피해 경험 등에 굴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담은 앨범 ‘레퓨테이션(Reputation)’으로 돌아온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움츠러들기보다는 정면 돌파를 택했다. 그 내용을 오롯이 담은 것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미스 아메리카나’(2020)다. 

'미스 아메리카나'는 테일러 스위프트가 가수로서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된 과정에 집중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오히려 최근까지 그를 비롯해 여성 아티스트들이 사회적 발언을 할 수 없게 한 미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와 여성 혐오의 굴레를 드러내고 비판하는 내용이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다큐에서 정치적 소신 발언을 한 뒤 "'입마개'를 벗은 기분"이라며 홀가분한 심경을 털어놨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페미니스트'다

2020년 신보 'folklore'를 발매한 테일러 스위프트 ⓒ테일러 스위프트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2020년 신보 'folklore'를 발매한 테일러 스위프트 ⓒ테일러 스위프트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2015년 5월, 롤링스톤과의 인터뷰에서 테일러 스위프트는 이렇게 말했다. “여성혐오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주입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게 페미니즘은 받아들여야 하는 가장 중요한 운동이다. 페미니즘은 평등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미국 엔터테인먼트계에 만연한 여성 혐오와 맞서기 시작했다. 그는 더 이상 44사이즈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밥을 굶지 않고, 여성을 '남성의 전 여자친구'라고 명명하는 언론사 헤드라인에 대해 "여성을 남성의 재산이나 소유물로 여긴다"며 꼬집는다. '더 맨(the man)'이라는 곡에서는 "내가 남자였다면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었을까. 궁금해하며 최대한 빨리 달리는 건 이제 질렸어"라며 성차별을 가사에 직접 표현하기도 했다. 2017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올해의 인물'로 성희롱·성폭력 경험을 폭로한 그를 꼽았다. 

2018년, 테일러 스위프트는 여성폭력방지법의 재승인을 반대하는 공화당 의원이 주 상원의원에 출마하자 그를 제지하는 발언을 했고, 소수자에게 포용적인 법안을 공약으로 내건 민주당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냈고, 1억명 넘는 팔로워들에게 확실한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행보에 대해 2019년 빌보드는 '최근 10년간 최고의 여성'상을 그에게 수여했다. 

2019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시상식에 참석한 테일러 스위프트 ⓒCosmopolitan UK·Wikipedia
2019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시상식에 참석한 테일러 스위프트 ⓒCosmopolitan UK·Wikipedia

테일러 스위프트에게 대중이 열광하는 이유는 그의 외모나 이미지 때문이 아니라 그의 특별한 행보 때문이다. 여성과 약자를 위해 맞서고, 편견을 돌파하며 살아가는 그에게 많은 이들이 환호를 보내고 있다. 입마개를 벗어던진 그는 아직 할 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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