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톡방 만들어서 욕설·협박...나가도 계속 초대해 괴롭히고
SNS에 주변인들만 알 수 있도록 ‘저격글’ 올려
증거 없는 학폭에 학교폭력위원회는 무용지물
학생들 “단순 예방교육보다 학내 인권감수성 높여야...
증거 수집법 등 실질적 도움 되는 교육 필요”

ⓒ여성신문

‘2학년 새로운 샌드백 생겼네’, ‘울 반에 레즈 있음 ㅋㅋ’ 

요즘 학교폭력(학폭)은 온라인에서 조용하고 은밀하게 이뤄진다. 교사나 부모 눈에 띄진 않지만, 학생들에게만 보이는 ‘조용한 학폭’이다. 피해자를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단톡방)에 초대해서 욕설이나 협박을 하고, 방을 나가도 계속 초대하면서 괴롭히는 식이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 SNS를 활용해 특정인을 겨냥해 비난하는 ‘저격글’을 올리는 식으로 피해자를 따돌리기도 한다. 

서울 성동구 무학여고 재학생 김모(17)양은 요즘은 ‘티 안 나는 따돌림’ 사례가 많다고 털어놨다. 일부러 한 명을 빼놓은 단톡방을 만들고 거기서만 얘기한다거나, 말을 걸면 짧게 대답하며 무시하는 일도 있다. 눈이 마주치면 굳은 표정을 짓기도 한다. 은근히 뒤에서 욕하는 일도 빈번하다. 김양은 “미묘한 폭력이 많이 일어나지만 학폭으로 신고하기에는 증거도 없어 애매하다”고 얘기했다.

서울 도봉구 정의여고에 다니는 최모(18)양도 고등학교 1학년 때 온라인상 괴롭힘을 겪었다. 사소한 다툼에서 틀어진 친구 사이가 온라인상 괴롭힘, 학폭으로까지 번졌다. 가해 학생들은 최양을 단톡방에 초대한 뒤 욕설을 했다. 최양은 단톡방을 나갔지만 이후에도 가해자들은 최양을 계속해서 초대하며 괴롭혔다. 

인천 계산고 김모(19)군도 “학교에 따돌림이 만연한데, 그 유형이 과거에 비해 비가시적으로 변형돼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김군은 중학교 3학년 때 온라인상 괴롭힘을 당했다. SNS에 성소수자 옹호 등 자신의 가치관을 담은 게시물을 올리자, 가해 학생들이 온라인상에서 김군을 두고 동성애자, 빨갱이라며 조롱했다. 그는 “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트라우마가 크다”고 털어놨다.

이러한 온라인상 정서적 폭력은 실제 따돌림과 괴롭힘, 신체적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점에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를 열거나 사법적 절차를 밟는 과정이 있는데도 이를 사실상 무용지물로 만든다.

김군도 학폭에 대처하기 위해 교사와 상담도 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확실한 증거가 없어서 안 된다”였다. 가해자들이 김군을 직접 언급하지 않으며 괴롭혔기 때문이다. 김군은 “누가 봐도 그 (피해)학생을 가리키며 작성한 게시물이지만 가해자들은 이름이나 학번 등 명시적 정보를 쓰지 않는다”며 “외모, 성격은 물론 가정 형편, 성적 지향 등 혐오 및 차별에 취약한 개인 사정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학생들을 배제하려 폄훼하고 조롱한다”고 덧붙였다.

청소년들은 현 학폭 예방교육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김군은 “학교 예방교육은 학폭을 당하면 어디에 신고해라, 학폭은 당연히 하면 안 된다는 수준에 그친다”며 “학폭을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도덕적 당위성에만 매달리면 안 된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이 보장되는 교육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탄탄한 인권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학폭을 범하지 않고 거부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학폭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방법도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양도 “학폭 예방교육에서 정서적 폭력이나 온라인 따돌림 사례를 들은 적이 없다”며 “교육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해자와 피해자 주변 친구들이 방관자가 되지 않도록 교육하는 것도 학폭을 예방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최양은 “저는 괴롭힘을 당하던 당시 당황해 단톡방을 다 나가버렸다. 증거가 없어 학폭위를 열지 못했다”며 “증거를 잘 모아두는 게 중요하다. 요즘 예방교육은 ‘어디에 신고해라, 이런 게 학폭이다’ 등 당연한 얘기가 대부분인데 이런 거 말고 온라인상 괴롭힘을 당했을 때 증거를 잘 모아두는 방법 등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교육을 해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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