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스튜디오 촬영회 성폭력 고발한 양예원씨
생존자에서 연대자로 거듭나
피해 회복의 시작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인정하는 일부터
‘잘했어, 괜찮아’ 항상 자신에게 말해주세요

‘스튜디오 촬영 성폭력’을 고발한 지 3년, 양예원씨는 성폭력 생존자이자 연대자, 운동가가 됐다. “한국 여성들은 싸워서 조금씩 세상을 바꾸고 있어요. 저는 앞으로도 웃으면서 싸울 거예요.” ⓒ여성신문
‘스튜디오 촬영 성폭력’을 고발한 지 3년, 양예원씨는 성폭력 생존자이자 연대자, 운동가가 됐다. “한국 여성들은 싸워서 조금씩 세상을 바꾸고 있어요. 저는 앞으로도 웃으면서 싸울 거예요.” ⓒ여성신문

이어지는 기사 ▶ “‘페미니스트’는 나의 훈장” 스튜디오 촬영 성폭력 고발한 양예원씨 www.womennews.co.kr/news/208308

‘미투’ 이후 3년. 양예원 씨는 성폭력 피해 생존자이자 연대자, 운동가로 거듭났다. 지금도 여러 생존자들이 그에게 용기를 얻었다며 고맙다고 하고, 상담을 청한다. 

인터뷰 내내 그는 당당하고 씩씩한, 호탕하기까지 한 태도를 유지했지만, 힘든 기억을 말할 때는 눈물을 훔쳤다. 한때 그는 공황장애를 겪었다. 삶을 포기하고픈 충동에 입원 치료도 받았다. ‘나는 잘못이 없다, 나는 소중한 사람이야, 나는 그 사진 속 예원이도 사랑해, 나는 괜찮아질 거야’라는 주문을 외웠다. 조급했던 마음을 다독이자 몸과 마음이 조금씩 나아졌다.

- 어떻게 그 시간을 보내셨을지 짐작이 안 가요.

“1년 반 정도 상담과 치료를 받도록 지원해주신 해바라기센터 분들, 피해촬영물 삭제지원을 해주신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분들, 응원을 보내준 많은 여성들.... 고마운 분들이 많죠. 그래도 엄밀히 말하면 자가발전기를 돌려서 제가 저 자신을 치유했다고 하는 게 정확해요. 저 홀로 이겨낸 거예요. 자신을 믿고, 지지하고 치유하고 달래가면서요.

- 비슷한 피해를 겪은 이들과 소통하고 연대하며 지내셨죠.

“생존자들이 제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언니, 어떻게 버텼어요?’예요. ‘정말 살기 싫은 날은 무슨 생각을 했어요? 뭘 보니까 재미있었어요? 뭘 해야 웃음이 나요?’ 다들 고민은 비슷해요. 이 사건이 잘 안 풀리면 나는 어떻게 되지? 이제 어떻게 먹고 살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연애하고 결혼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내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을까? 일상을 너무나 되찾고 싶은데, 자존감이 바닥나서 두려워하는 거죠. 그런데 미디어에서는 구체적인 조언이나 사례를 찾기가 어려워요. 병원 가서 상담·치료를 받아 봐라, 나가서 산책을 해라 하는데, 생존자들은 그렇게 하면 내 일상을 되찾을 수 있는지, 그렇게 회복한 사람이 실제로 있는지가 궁금하거든요.”

- 들려주세요. 웃음과 재미를 어떻게 되찾으셨어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해요. 사람들은 살다가 원치 않는 일로 삶이 뒤집히면 원래대로 돌려놓으려고만 해요. 근데 잘 안 돼요. ‘회복해야지’, ‘나쁜 생각은 안 돼’ 하며 나를 몰아세울수록 힘들어요. 저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 그대로 일기장에 빨간 펜으로 꾹꾹 눌러서 썼어요. 지금 내가 아프구나, 힘들구나, 정상이 아니구나, 인정하고 그런 식으로 풀어줘야 살 수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하나씩 하나씩 하다 보면 더 나은 일을 하고 싶고, 나를 가꾸고 싶고, 높이고 싶어져요. 그러다 보면 이전의 나로 돌아가기가 싫어요. 지금의 나는 훨씬 더 건강하고 단단하고 똑똑하고 성숙해졌거든요.

저는 ‘미투’ 이후 약 반년간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2019년부터 조금씩 회복하기 시작했어요. 세 끼는 다 챙겨 먹었고, 약을 먹고라도 꼭 잤어요. 작은 재봉틀을 하나 사서 강아지 옷을 만들었어요. 일기를 쓰고 게임을 했어요. 2D 아케이드 게임, 슈팅 게임 같이 정말 단순한 게임이요. TV는 안 봤어요.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요소를 걸러낼 자신이 없어서요. 

목표는 ‘하루에 딱 한 개만 하자’였어요. 책을 한 장이라도 읽거나, 나가서 10분만 돌아다니거나, 집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그러면 점점 욕심이 생겨요. 오늘은 두 개 해야지, 세 개 해야지. 그러다 보면 혼자 하는 게 재미없어요. 친구들이 생각나요. 한 명 한 명 다시 연락이 닿았죠. 어느 날 한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야 마스크 써. 수영복 챙겨. 풀 파티 가자.’ ‘부산에 와. 락페 가자.’ 사람들은 놀랄 거예요. 양예원이 그때 페스티벌에 다녔다고? 싸이코패스 아냐?(웃음) 근데 정말 도움이 돼요. 나를 ‘놓을’ 기회를 찾는 것도 중요해요.”

- 오히려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셨군요.

“그럼요. 저는 인생을 덤으로 얻었다고 생각해요. 2018년에 ‘미투’한 그 독한 여자가 죽지 않고 계속 살아있다! (웃음) 해보고 싶었는데 도전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보려고요. 요즘은 경영기획, 심리 공부가 하고 싶어요. 가족들도 저를 자랑스러워해요.”

- 다른 생존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얼른 회복하길 바란다’는 말은 부담스럽죠. ‘어차피 일어난 일이니까 잊으세요’, ‘최대한 생각하지 마세요’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나 할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거 알아요. ‘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라는 상투적인 말도 전혀 와닿지 않는 것도 알아요. 제가 그랬거든요.

‘잘했어요.’ 그냥 딱 이 말이 적당할 것 같아요. 회복하려고 너무 애쓰지 않아도 돼요. 남들을 설득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돼요. 회복하는 과정에서 생존자들은 자꾸 누군가를 붙잡고 나를 이해해달라고 설득하려는 모습을 보여요. 근데 그러지 않아도 돼요. 신고를 못 했어도, 어려운 상황 때문에 합의했어도, 숨었어도 괜찮아요. ‘나한테 이런 일이 있었어, 근데 나 괜찮아, 내가 그때 왜 그렇게 했냐면...’ 이렇게 나를 설명할 필요 없어요.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했어요. 누군가가 이해하지 않는다고 내가 피해자가 아닌 건 아니에요. 그러니 나 자신을 많이 사랑해주세요. 항상 자신에게 말해주세요. ‘잘했어, 괜찮아’라고요.”

- 사람들이 ‘양예원’을 어떻게 기억하기를 바라나요?

“‘쌈닭’. 독한 X. 쟤 건들면 큰일난대. 그 정도? 하하하. 지켜봐라 세상아. 저는 앞으로도 언제 어디서든 열심히 싸우고 있을 거예요. 다음 세대의 여성들은 더 행복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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