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예가 만난 사람]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30년 한결같은 결심은 그를 대선 후보 도전자로 만들어
부동산 문제 공급 차단과 과세로는 해결할 수 없어
김포 스마트시티로 주거단지 20만가구 확충 제안
국민의 다앙한 일상을 보장하기 위해 평등법(차별금지법) 제정되어야

1990년 겨울, 대학생 박용진은 가방 하나 매고 강원도를 돌아다녔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학생운동을 계속 해야할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는 계속 고민했다고 한다. 열흘을 고민한 끝에 박용진은 운동에 자신의 십년을 헌신하기로 결심했다.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지금, 박용진은 또 하나의 큰 결심을 끝냈다. 이제 막 50세를 앞둔 2선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강북구 을)은 2022년 대선후보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홍수형 기자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홍수형 기자

-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바쁘게 살아요. 대선 나가려고 생각을 하니까 마음도 급해지고 말이죠. (웃음) 야구에서 번트를 해야겠다거나 홈런을 해야겠다고 하는 타자는 배트를 쥐는 법이 다를 수 밖에 없잖아요. 정치도 그런 것 같습니다. 국회의원과는 다르게 대통령은 대한민국 전체를 고민해야 합니다. 국민 모두를, 가난한 이부터 구십 넘은 노인까지 모두 돌봐야 하는 책무를 지녔으니 공부해야 할 것도 많고 판단해야 할 일도 많고요. 이 도전에 저 스스로도 가슴이 뜁니다.

- 어떻게 출마를 결심하셨습니까?

오랫동안 대한민국이 한단계 더 나아가려면 지금의 기존 질서와 기득권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리고 변화의 에너지는 도전이 필요한 일입니다. 국회의원이 된 후 재벌총수, 현대자동차, 한유총, 이런 이들의 기득권과 맞서싸우며 기득권들의 저항에 맞서며 생각했습니다. 오래된 불평등의 관습을 깨트리고 변화를 끌어내 국민들의 일상을 바꾸려는 용기와 의지를 지닌 대통령이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 아닐까? 준비된 사람이 아니라 변화를 감당할 용기있는 사람이 해야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마에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다고 멋지게 대답할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고민 많이 했습니다. 예전에도 그랬지요. 삼성 이건희 차명계좌 등에 대한 과세 1200억, 대한민국 금융실명제 24년만에 뒤집는 것 모두 고민없이 한 일이 아닙니다. 제 개인에게 압력도 많았고요. 박용진이라고 그걸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그러나 해야할 일이면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정치의 기본 기준은 국민의 상식이어야 하잖아요. 유치원 3법 때 누가 그러시더라고요. ‘당신이 육아 교육에 대해 얼마나 아냐?’그러나 유아 교육을 알아야지만 회계투명성을 이야기하는 것 아닙니다. 적어도 저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아이들한테 쓰라고 하는 돈을 이렇게 쓰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국민 세금을 받으면 감사를 받아야죠. 그것이 상식입니다. 금융실명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한민국 법이 있고 제도가 있는데 24년 동안 재벌총수만 제외되어 특별대우 받았습니다. 경영권 세습을 위해서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 한 것. 어떻게 보면 단순한 일입니다. 문제가 있어 문제가 있다고 말하고 그를 올바르게 바꾼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대한민국 정치는 이 단순한 걸 행하는 것조차 용기를 필요로 하죠. 그 때마다 “내 사사로운 이익을 따지며 할 일을 못하지 말자”는 다짐을 합니다.

누군가는 아직 젊고 주류가 아닌 박용진에게 때가 되지 않았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역사에 왕조를 새로 이루거나 대통령이 된 사람들을 떠올려보십시오. 많은 이들이 비주류였고, 변화를 위해 서슴지않고 도전한 이들입니다.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을 한번 바꿔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결국 중심이 되었습니다.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 사람들 앞에 나서서 의견을 모으고 주도하는 건 고등학생이었을 때부터였다. 박종철 열사 사건과 광주항쟁을 신문보도로 접한 박용진은 스스로 물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87년 민주화의 바람은 막 고등학교에 진학한 박용진에게도 옳은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옆 반 친구들이 더 이상 못 참겠다며 박용진을 찾아왔단다. 담임선생님이 촌지를 요구하고, 술먹고 수업하고, 자신들을 때린다는 것이다. 박용진은 친구들의 곁에서 문제적 교사를 규탄했다. 문제제기 하는 대자보가 교내 게시판에 붙으면서 학교는 발칵 뒤집어졌다.

1990년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했고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박용진 ⓒhttps://parkyongjin.com/992 [서울 강북을 국회의원 박용진입니다]
1990년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했고 학생운동에 참여한 박용진 ⓒ박용진 블로그

“제가 학교에서 벌어진 대자보 사건의 주동자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에 부모님은 경악하셨어요. 집안 분위기가 보수적이었거든요. 심지어 아버지는 경찰이셨어요. 그것도 대공과에서 근무하시면서, 시위현장 진압도 나가셔야 하는 분이셨죠.

대학생이 되어서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그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고, 수서비리사건처럼 자기 살 집 한 채가 없어 힘들어 하는 서민들을 국가와 기업이 등쳐먹었어요. 현대 중공업 노동자 파업과 뒤이은 그들에 대한 탄압도 있었지요. 노동자 파업에 국가기관까지 총동원되서 대단하지도 않은 요구로 빨갱이라고 몰려 갖은 수모와 폭력을 당했죠. 일개 대학생이지만 할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내가 무엇인가를 포기하더라도, 그러니까 내가 다치거나 죽거나 피해를 볼 각오를 하고 용기를 냈습니다.

제가 총학생회장이 될 때 부모님이 잠깐 기뻐하셨지만, 아들이 계속 시위에 나가니 골머리를 앓으셨습니다. 어머니는 기겁하셨죠. 그래도 저는 시위장에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그 일로 감옥에 갔을 때 딱 직감했어요. 내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구나. 평범하게 직장생활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건 어렵게 되었구나. 지금 생각해보면 돌아가지 못하도록 다리를 끊어버린 것이니 다행스럽기도 하고요.(웃음)”

- 이후 군대를 갔다오시고, 97년에 대선 캠프에 참여하시면서 정치의 길을 걸으셨어요. 선거는 2000 민주노동당 선거셨고요. 출마는 박용진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있습니까?

민중에 대한 믿음을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스물여덟살 짜리가 출마를 결심해서 4월 13일 선거가 끝났는데 그 때 제가 만 스물아홉이 안됐을 때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어이없는 풍경이에요. 만일 내 앞에 누군가 만 스물 아홉, 스물 여덟의 후보가 표를 달라고 오면 용기가 가상하네 말하지만 표는 안줄 것 같거든요 (웃음) 그런데 제가 그때 13.3%를 득표 했어요. 나중에 선거 전문가가 말 하는데 제가 최종적으로 13.3%로 득표한 건 너무 대단한 결과라고 하더라고요. 선거 열흘 전에는 30%가 넘었을 것이라고요. 그 결과가 제가 믿음을 주었어요. 아, 내가 헌신적으로 이야기 하고 진심을 말하고 보여주면 주민이 반응을 하시는구나, 그 때 우리 강북구 주민분들이 준 건 표가 아니라 진보정치 천리길을 갈 수 있는 노잣돈이었습니다. 그걸 들고 든든하게 정치길을 걸어왔습니다.

서울에서 거대정당이 아닌 다른 후보로 출마해 10년 넘게 2자리 숫자를 유지한 사람은 박용진 하나일 것 같아요. 그동안 제 손으로 뿌린 명함과 유인물이 몇만장일거예요. 끝없이 지하철마다 아침에 서서 마이크를 잡고 출근길에 사람들에게 연설하고 그렇게 십년을 살았습니다. 주민분들께서 그걸 보신 것이라 생각해요. 나중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니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이제야 내가 너를 이렇게 찍는다 하시더라고요. 안될 줄 알면서도 뽑은 13.3%의 주민도 계셨지만, 선택 가능한 후보가 되길 기다린 사람도 많았던 거죠.”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홍수형 기자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홍수형 기자

 

- 진보정당을 거쳐 결국 민주당에서 당선되셨어요.

“2011년 진보신당을 저는 울면서 탈당했습니다. 그때는 다른 것보다 진보정치를 하는 이유를 찾고 싶었습니다. 결국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진보정당의 이름을 지키는 일, 독자성을 지키는 일이 세상을 바꾸는 전제라고 한다면 제가 진보정당을 지켜야 하는 것이 맞지요. 그러나 진보정당의 독자성을 지키는게 아니라 국민 삶을 바꾸는게 더 급한데, 진보정당의 이름을 지킨다는 것으로 저만 만족하며 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자리를 보장받아서 온거라면 비판받아 마땅한데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계파나 백그라운드에게 자리를 약속 받고 줄을 선 것이 아닙니다. 처음 공천에서는 떨어지고 두번째 도전에서야 공천을 받았죠.  자신있게 진보정치 이야기해왔고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도 타협없이 재벌개혁, 사학개혁, 현대자동차 문제, 유치원3법 모두 해내지 않았습니까. 폭로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실제 변화를 이뤘다는 점을 잊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먼 미래에 대한 약속만 가지고 국민에게 기다려 달라고 이야기할 수 없어 민주당에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펼치게 된 것이죠. 어떻게 보면 저라는 사람은 민주당이라는 짜장면에서 완두콩에 불과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 박용진은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요새 부동산 문제 때문에 국민 사이의 불만이 높습니다. 청년은 정말 곳이 없고요. 부동산 문제 해결의 해답을 갖고 계신가요?

“시장에서 개인이 주거지를 선택, 구입, 판매하는 행위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행복권을 침해하거나 사회적 불평등을 불러 오는 행위는 사회적으로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개인의 욕망을 무조건 막는 것만이 답은 아닙니다.

강남3구 아파트를 잡기 위해 우리 정부가 행정력을 지나치게 투입하다보면 부동산 정책은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부동산 문제의 원인은 다양합니다. 자산이 부족해서, 기회가 없어서, 공급이 부족해서 생기는 일입니다. 때문에 국민의 주거권 보장을 위해서는 다양한 주거지원정책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서울에서 시장공급을 계속 막으니 공급이 줄고, 공급이 줄어드니 다주택자들에게 집을 팔라고 과세 정책을 펼쳤죠. 세금을 부담하게 된 집주인은 집을 팔 때, 전세를 또 줄 때 다음 세입자와 구매자에게 세금을 떠넘길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다주택자를 대상으로 하는 과세를 설계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공급 정책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효과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과세의 부담을 모두 서민이 떠앉게 됩니다.

저 박용진의 제안은 ‘충분한 공급’입니다. 김포공항 부지를 활용해서 스마트 시티를 공급하자는 제안입니다. 김포공항 부지는 여의도의 10배인 구백만평입니다. 20만 가구를 공급 가능합니다. 김포공항의 기능은 인천공항으로 이주시켜야 하는데 인천공항은 1억 3천만명 수용가능하기 때문에 충분히 김포공항의 기능을 이전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김포공항 부지는 국가 부지이기 때문에 다른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빠르게 공급 가능하지요.

집만 짓자는 것이 아닙니다. 스마트 시티를 김포에 구축하자는 것입니다. 세계최초의 스마트 시티가 다른 선진국이 아니라 세종에 있습니다. 부산 강서에는 국제산업물류단지가 있지요. 자율주행. AI, 드론, 친환경 재생 에너지 등의 복합기능을 투입한 지역들입니다. 이런 스마트 시티는 주거 뿐 아니라 일자리를 제공하는 통합 효과를 냅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홍수형 기자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홍수형 기자

 

- 얼마 전에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가 금태섭 후보의서울시장으로서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하실 거냐 질문에퀴어 퍼레이드를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의 권리도 인정해줘야 한다 답하면서 비판을 받았습니다. 2021 한국에서는 아직도 퀴어가 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데요. 어떤 정책을 갖고 계십니까?

“민주당은 최근 평등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저야 이미 발의서명을 해서 기다리고 있고요. 혹시 현재 안보다 후퇴되어 통과될까 걱정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가수 중 하나가 이적씨인데요. 그분 노래 중 돌팔매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누군가 너를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지우려 한다면 그땐 우린 또 하나지’  라는 가사가 인상 깊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한국 사회의 다양성 지수는 높아졌습니다. 다양한 국민의 삶은 당연히 보장받아야 합니다. 저출생 문제에 대해 해법을 거기서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남녀 결합과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만 가족인가요. 아니잖아요. 전통적인 부부에 갇히지 않고 서로가 원한다면 반려인으로 등록하고 그들에게 법적인 권한과 다양한 세제혜택을 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 박용진을 대통령 만들고 싶다는 분들이 분명 있을테고, 한편으로는 박용진이 후보가 있을까? 설사 박용진이 된다하더라도 정치가 바뀔 있을까 낙담하시곤 합니다. 그분들께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정치인들이 내로남불하며 진영논리에 빠져 있어 많은 국민들께서 신물이 난다고 하십니다. 저도 많이 듣습니다. 그러나 정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버리는 순간 최악의 장면이 펼쳐질 것입니다. 국민들께서 포기하고 물러난 그 공간에 나쁜 정치인들이 판을 칠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더 좋은 정치인을 찾고 더 나은 정당을 찾고, 좀 더 진보적인 변화를 이야기 하는 사람에게 지지를 보내주는 것이 세상을 바꿀 매우 중요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포기하지 마시고 더 나은 누군가를 위해 계속해 고민하시고, 한마디라고 보태고, 한푼이라고 보태고, 한 표라도 주시는 것이 의미 있습니다. 남들과 조금 다르게 이야기 하고 대세에 휘둘리지 않고 소신있게 정치하려고 하는 이들이 얼마나 외롭겠어요. 그들을 지원해야 국민들께서 바라는 정치의 영역이 커지겠지요. 국민이 포기하고 물러나면 정치는 악용됩니다.

저는 세상을 바꾸고 싶습니다. 누가 가장 세상을 바꾸고 싶을까? 가진 것 없는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기성세대와 주류에 도전하고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두근두근하고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치를 하는 한 저는 계속 도전하려고 합니다. 청년 정신으로 말이죠. 그래야 나태하지 않는 정치인이 되고, 용기를 잃어버린 지도자가 되지 않겠죠. 국민에게 박수받지 않는 정책이라도 국민과 공동체를 위해 결단하는 용기있는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22년 대선 후보자로 오르기 위해 당원들과 국민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박용진이 있어 최소한 민주당이 변화의 주저하지 않는 용기를 보여줄 수 있도록요. 박용진에게서 대한민국이 변화를 만들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을 찾도록 말입니다. 저는 모든 준비가 다 끝났습니다. 국민들께 대파란을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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