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초대석] 다리 밑에서 주워온 줄 알던 아이 중증장애인 엄마로
[W초대석] 다리 밑에서 주워온 줄 알던 아이 중증장애인 엄마로
  • 박성희 전문위원 / W경제연구소 대표
  • 승인 2021.03.05 13:27
  • 수정 2021-03-08 1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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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의 W초대석] 송우정 거제도 애광원 대표
“우리 모두 잠재적 장애인, 비장애인임에 감사하고 힘든이 도와야”
후원금 1원 한 장까지 투명 공개, ‘정직·근면·청결’ 원훈 솔선수범

매사에 정성스러웠다. 애광원 식구들을 대할 때도, 손님들에게 애광원을 소개할 때도, 카톡으로 보낸 추가질문에 답할 때도 솔직, 꼼꼼하고 다정했다. 지난 2월 말 경남 거제 장승포에서 만난 송우정(70) 사회복지법인 거제도애광원 대표의 모습은 의무감이 아닌 사랑에서 나오는 힘과 열정으로 가득했다.

거제도애광원(이하 애광원)은 지적 장애인 및 중증 장애인의 안전한 삶과 자활을 위한곳이다. 장애와 질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보호하는 동시에 이들이 더 넓은 세상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하고, 직업 및 사회 적응 훈련도 실시한다. 6.25전쟁 중이던 195211월에 문 연 애광영아원이 전신. 고아들이 줄면서 1978년 장애인 시설로 바뀌었다.

송우정 애광원 대표 ⓒ여성신문
송우정 애광원 대표 ⓒ여성신문

김임순 원장 6.25전쟁 중 애광영아원 설립, 69년간 고아·장애인 돌봐

설립자는 김임순(96) 원장. 송우정 대표의 어머니다. 첫돌 지난 어린 딸을 데리고 거제도로 피란 와 있던 김 원장이 지인의 손에 이끌려 간 산꼭대기 움막에서 갓난아기 7명을 만난 게 애광원과 함께 한 69년 여정의 시작이었다. 나이 스물일곱. 이화여대 1회 졸업생으로 남 부럽지 않게 자란 그가 아이들 먹이고 입힐 것을 구하느라 여기저기 다니며 애걸하고, 한겨울에 꽁꽁 언 도랑물을 깨 기저귀를 빨았다.

송 대표는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애광원에서 다른 고아들과 똑같이 자랐다. 김 원장이 전혀 내색을 안해 친어머니인 줄 모른 채 부산 영도다리 아래서 주워온 아이인 줄 알고 컸다고. 초등학교 5학년 때 애광원 언니오빠들과 부산에 나가 공부하던 그는 연세대학교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한 뒤 애광원에서 1년간 일했다.

어머니가 애광원에서 컸으니 무조건 봉사하라고 하셨어요. 말씀대로 한 뒤 1년 동안 국내 기업에서 영양사로 일하다 1975년 혼자 미국에 건너갔지요. 다른 사람들은 말렸지만 정작 어머니는 반대 없이 넓은 세상을 보고 오라고 하셨어요.”

미국에서 그는 민간기업과 한국무역협회 뉴욕지사에서 근무하다가 듀퐁에 근무하던 이규승 박사(화학)와 결혼하고 딸 둘을 낳아 키웠다. 거제로 돌아온 것은 2009. 아쉬울 것 없던 미국생활을 버리고 귀국해 애광원 상임이사를 맡았다. 미국에서 애광원 이사와 미주후원회 운영위원을 지냈지만 영구 귀국은 염두에 두지 않았었다고.

미국에서 안 나오려 했는데 당시 법인 이사장이었던 신익호 목사님이 어머니 연세도 있고 하니 와서 애광원 일을 맡으라고 채근하셨어요. 남편과 의논한 끝에 지금껏 나와 가족을 위해 살았으니 이제부턴 애광원을 도와야겠다고 결정했어요. 그래도 처음엔 가방 2개만 들고 왔어요. 곧 돌아가거나 왔다갔다 할 작정이었거든요. 막상 일을 하다 보니 그럴 수 없었어요.”

애광원 ⓒ여성신문
애광원 ⓒ여성신문

안락한 미국생활 버리고 귀국, 어머니 이어 애광원 맡아 불처주야 헌신

그는 결국 주저앉았고, 지난해 4월 법인 대표이사로 선임돼 애광원 운영을 떠맡았다. 어머니 김 원장의 고생엔 비할 수 없다지만 애광원을 이끄는 일은 여전히 간단하지 않다. 현재 애광원은 지적장애인 거주시설(둥지마을)과 중증장애인 요양시설(민들레집), 특수교육시설(애광학교), 장애인직업재활시설(애빈) 장애인공동생활가정(성빈마을), 영유아보육시설(옥수어린이집) 등을 운영하고 있다.

식구만 해도 14~66세 장애인 200여명, 교사 및 직원 120여명 등 320여명. 장애인 가운데 부모 등 연고가 있는 사람은 30%, 70%는 아무도 찾지 않는 이들이다. 중앙정부와 거제시에서 지원하고 1200여명의 정기 후원자가 있지만 제몸조차 가누기 힘든 중증 장애인을 24시간 보살피고, 지적장애인들에게 자활을 위한 제빵· 원예· 봉제 기술 등을 가르치자면 인력은 태부족이고 예산 또한 늘 모자란다. 산비탈에 세워진 건물들은 바람에 약하고, 수시로 개보수를 필요로 한다.

중증 장애인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어요. 씻기고 입히고 먹여 줘야 해요. 직원들이 챙겨주다 밀쳐져서 다치는 수도 있어요. 그러니 사람은 항상 모자라지요. 간호사가 더 필요한데 예산이 없어 1명 뿐이라 안타까워요. 지난해 가을 태풍으로 체육관 지붕이 날라가서 아직도 수리 중이구요. 비가 들이닥치는 바람에 마루가 몽땅 망가졌거든요.”

장애인에 대한 일부의 편견과 잘못된 인식도 송 대표를 힘들게 하는 요소다. “장애인시설로 바꾼 초기엔 상황이 정말 열악했어요. 1980년 어머니가 독일의 장애인학교인 프뢰벨학교를 보고 독일에서 장애인 건축을 전공하던 강병근 씨를 찾아 설계를 부탁했어요. 정부와 돌아가신 김우중 회장님 등 국내외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아 중증장애인 숙소인 민들레집을 지으셨어요. 온갖 고생을 다했는데 당시 주변에선 난리가 났다는 거에요. 우리 살 집도 없는데 장애인이 살 집을 짓다니 미쳤다며 반대하구요.”

송 대표의 어머니 김임순 원장은 그런 비난에도 불구, 민들레집을 짓고 돈이 생길 때마다 필요한 시설을 세웠다. 1989년에 받은 막사이사이상 상금도, 1994년 호암상 상금도 모두 애광원 건축에 넣었다. 체육관, 카페, 온실을 갖춘 국내 최고의 장애인 시설, 지중해 마을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빨간지붕 집들은 그렇게 이룩됐다.

애광원 거주 지적장애아동들이 윈드밀테라스에서 장승포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애광원
애광원 거주 지적장애아동들이 윈드밀테라스에서 장승포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애광원

장애인과 약자 존중할 때 진정한 선진국, 꾸준한 교육·훈련으로 기적 가능해

송 대표의 소신은 뚜렷하다. “우리 모두 예비 장애인일 수 있어요. ‘장애인이 무슨이 아니라 장애인이기 때문에 비장애인보다 더 안전하고 좋은 시설에서 지내야 해요. 비장애인은 어디든 갈 수 있지만 이곳 장애인들은 그렇지 못하잖아요. 여기서 운동도 하고 차도 마시는 등 남들이 하는 걸 해볼 수 있도록 해줘야죠. 많은 분들이 미용실같은 시설의 필요성을 간과하는데 실은 체험 공간이 물품 못지 않게 중요해요.”

송 대표나 어머니 김 원장 모두 애광원에 아무 지분도 없다. 애광원의 땅과 집은 모두 법인 소속이다. 애광원 홈페이지엔 후원 내역과 후원금 사용처가 1원 한 장까지 투명하게 나온다. 후원금은 전액 기부금영수증 처리가 가능하다. ‘정직하고 부지런하고 깨끗합시다란 원훈을 앞장서서 실천하는 것. 올해 96세인 김 원장은 지금도 가장 행복할 땐 아이들이 좋아할 때. 가장 속 상할 땐 아이들에게 뭔가 해주고 싶은데 못해줄 때라고 말한다.

구약성경 속 요나처럼 떠밀려 온 것같다. 하나님의 주권으로 하시는 일이니 순종하는 수밖에 없다는 송우정 대표. 사심이라곤 없는 이들 모녀의 헌신과 노력의 징표일까. 거제도애광원 식구들은 돌보는 이든 돌봄을 받는 이든 죄다 밝고 환하다.

"애광원에선 종종 기적이 일어나요. 몇 년동안 한 마디도 못하던 아이가 어느 날 '선생님'이라고 말문을 여는가 하면, 9년동안 입도 안벌리던 아이가 갑자기 노래도 하고 춤도 춰요." 송 대표의 소망은 거창하지 않다.

"장애인도 소중한 존재로 인정 받아야 마땅해요. 중증 장애인도 비장애인처럼 편히 생활하게 만드는 게 목표에요. 냉장고와 공기청정기가 더 필요하고, 노래방이나 영화방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식구들에게 바깥 나들이를 시켜줄 수 있게 운전기사도 더 채용할 수 있었으면 싶어요.“ 앉으나 서나 식구들 걱정인 송 대표의 바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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