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전쟁』

ⓒ북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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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잘못이 아니라고, 너희의 죄가 아니라고 한 그의 말은 현장에서 나를 구원했다. 그 말로 죄책감을 덜 수 있었다. (...) 그런데 곱씹을수록 말의 의미가 다르게 느껴졌다. 어쩌면 당신은 너희들이 무엇을 해도 시간을 돌릴 수는 없을 거라고, 과거를 바꿀 수는 없을 거라고 말했던 건 아닐까. 죽은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일어났던 학살은 없었던 일이 될 수 없다고." - 151쪽

영화 ‘기억의 전쟁’ 제작진이 지난 약 5년간의 여정을 책으로 펴냈다. 지난해 2월 개봉한 동명의 영화는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책에서는 카메라에 담지 못한 제작진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2015년 겨울, 평화 기행과 빈안 학살 49주기 위령제에 참석하기 위해 베트남에 도착한 제작진은  베트남 중부 마을 곳곳에 자리한 위령비와 증오비를 마주한다. 그곳에서 그들은 카메라를 내려놓고 추모에 참여한다. 곽소진 촬영감독은 이러한 결정이 "영화를 만드는 스태프이기 이전에 학살지 앞에 선 한 사람으로서 내 마음이 완전히 손상되지 않을 수 있도록" 해준 배려였다고 적었다. 제작진은 눈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촬영하지 않을 권리, 현재 진행형의 고통을 겪는 사람을 촬영하지 않을 권리를 지키려 노력했다. 

영화를 만든 이길보라 감독은 베트남의 기억을 지닌 조부모의 갈등에서 시작해 “1968년 일어났던 학살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할 것인지”를 궁리했던 과정을 이 책에 적었다. 개인의 서사와 고백에서 출발해 전쟁과 학살, 국가 폭력의 문제에 다가서려는 긴 여정이 책 안에서 펼쳐진다. 

이길보라, 곽소진, 서새롬, 조소나/북하우스/1만6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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