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미투_이제_시작] (하)
[인터뷰] 오예진 용화여고성폭력뿌리뽑기위원회 대표

오예진 용화여고성폭력뿌리뽑기위원회 대표. 본인 제공.
오예진 용화여고성폭력뿌리뽑기위원회 대표. 본인 제공.

2018년 4월 6일 서울 용화여고 3학년 교실 창문에는 ‘With you’라는 영문 포스트잇이 붙었다. 졸업한 선배들이 촉발시킨 스쿨미투(학교 내 성폭력·성희롱 고발)에 재학생들도 연대하겠다는 의미였다. 용화여고는 스쿨미투의 도화선이 돼 전국으로 퍼졌다. 용화여고 스쿨미투는 감춰진 학내 성폭력의 실체를 드러냈다.

재학생들의 ‘창문미투’는 선배들의 폭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졸업생 단체 ‘용화여고성폭력뿌리뽑기위원회’는 재학 시절 교사들로부터 당한 성추행 피해를 고발했다. 이들은 졸업생·재학생을 대상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조사 결과, 337건의 응답 중 성폭력을 직접 경험했다고 밝힌 경우가 175건(51.9%)이었다. 성폭력을 목격한 경우도 236건(70%)으로 나타났다. 특히 가해교사 A씨는 2011년부터 2012년까지 학교 교실과 생활지도부실 등에서 제자들 교복 치마 속에 손을 넣어 허벅지를 만지는 등 강제추행을 했다. 스쿨미투 3년 끝에 결국 A씨는 1심서 법정구속 됐다. 그러나 가해교사 한 명이 처벌 받는다고 해서 능사가 아니다. 용화여고 스쿨미투를 촉발시킨 오예진 용화여고성폭력뿌리뽑기위원회 대표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졸업한 지 4년 만에 재학 시절 스쿨미투를 촉발시킨 이유는 무엇입니까?

“졸업을 하고도 학창시절의 피해 경험을 잊을 수 없었어요. 용화여고 재학 시절, 친구들과 ‘졸업만 하면 성추행 가해교사를 교사직에서 끌어내리자’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어요. 저희가 졸업한 지 4년이 지날 쯤 한국 사회에서는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운동이 촉발했어요. 자연스럽게 졸업생 단체 채팅방에서 우리도 과거의 일을 스쿨미투 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죠.”

용화여고성폭력뿌리뽑기위원회는 5명으로 소규모로 운영하고 있어요.

“숫자보다는 이 일에 실제로 관심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소규모지만 위원회 구성원 모두가 바쁜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스쿨미투 문제에 대해 관심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증거불충분 혐의없음으로 불기소처분이 났을 때는 무력감에 빠지기도 했는데 ‘노원스쿨미투를지지하는시민모임’분들께서 해결방법을 함께 찾아주시고 끊임없이 북돋워주셨어요. 주변에 많은 빚을 지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졸업생들의 스쿨미투에 재학생들은 창문미투로 화답했어요. 당시 어떤 감정이었나요?

“그때 느꼈던 감정은 고마움과 미안함의 공존이었어요. 처음에는 걱정했어요. 재학생들 중에는 피해자가 없을 수도 있고 스쿨미투가 재학생들에게 피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있어서. 그런데 창문미투로 연대의 메시지를 받으면서 저희도 조금 더 추진력 있게 앞으로 나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와 함께 해줘서 고마운 마음과 함께 가해교사를 진작 고발하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죠. 우리가 조금 더 일찍 신고했더라면 후배들은 가해교사를 만나지 않았을 테니까요.”

23일 오전 서울 도봉구 서울복부지방법원 앞에서 한국여성의전화가 '용화여고 스쿨미투 사법정의 실현'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2020년 6월23일 오전 서울 도봉구 서울복부지방법원 앞에서 한국여성의전화가 '용화여고 스쿨미투 사법정의 실현'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1심 선고까지 3년의 시간이 흘렀어요. 스쿨미투 3년, 후회되지는 않나요?

“피해자는 스쿨미투를 해도 고통스럽고 하지 않아도 고통스럽지 않을까요. 스쿨미투를 함으로써 안고 가야 하는 어려움은 분명히 있어요. 그렇지만 피해 경험을 말하지 않고 혼자 모든 고통을 안고 가는 것도 분명 괴로운 일일 것이에요. 주변에 손 잡아주고 말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그 손을 잡고 나가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스쿨미투 피해자들의 일상 회복은 이루어지고 있나요?

“다들 일상을 살고 있기는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전히 고통 받고 있는 것 같아요. 몇몇 피해자들은 법원에서 다시 진술하는 것 자체를 피하고 싶어 하기도 했어요. 좋지 않은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시간을 내어서 법원에 출석하는 것 자체가 결코 반가운 일은 아니잖아요. 가해자가 실형을 살게 되더라도 이후에 우리에게 해코지하지 않을 지 걱정하는 피해자도 있어요. 앞으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것을 힘들지 않을까요.”

스쿨미투 고발자에게 따라 붙는 사회적 시선은 어떠한가요?

“다들 미투운동의 사회적 의의에는 공감하면서 내 옆 사람이 미투 고발자인 것에는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아요. 옆 사람의 일이기 때문에 작은 일로 여기는 경향도 있는 것 같고요. 그래서 스스로가 지나치게 까다롭고 유난스러운 사람으로 여겨지는 느낌을 받아요. 사람이니까 사소한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받아요.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새로운 조직에 들어갈 때 스쿨미투 참여자였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쉽지는 않아요.”

가해자 측과 검사 모두 항소한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5년이었던 검찰 구형에 비해 형량이 너무나 많이 낮아진 것은 사실이에요. 아무리 초범이라지만 그간의 범죄가 밝혀지지 않았을 뿐, 동일 범죄를 지속해온 정황들이 있어요. 대체로 실형이 나온 것만으로도 성공이라는 반응이지만 죗값에 비하면 가벼운 형량 같아요. 가해 교사 측에서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노리고 항소장을 제출한 것 같아 더욱 괘씸하기도 하고요. 2심에서는 제대로 된 판결을 기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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