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군부 쿠테타를 바라보며

치알 신 ⓒ치알신 홈페이지
치알 신 ⓒ치알 신 홈페이지

3월의 푸른 하늘을 바라 보면 떠오르는 인물, 유관순 열사...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우리의 머리 속에서 결코 지울 수 없는 찬란한 '별'이다. 우연일까? 지난 3월 3일 오후 충남 천안시 병천면의 유관순 열사 유적지를 다녀 왔다. 생가를 둘러 본 다음 매봉산 정상의 봉화대와 유 열사의 영혼을 모신 초혼묘(招魂墓)를 거쳐, 추모관에서 분향을 하고, 기념관에서 열사의 그 뜨거운, 온갖 고문에도 굴하지 않은 강인한 애국심을 확인할 때는 가슴이 울컥했다.

1919년 4월 1일 천안 아우내 장터의 대규모 만세운동을 주도한 유 열사는 이화학당에 재학 중이던 불과 16세의 어린 소녀였다. 그 어린 소녀가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에 죽음으로 맞서다가 나라와 민족의 ‘별’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저녁에, 2월 1일의 미얀마 군부 쿠데타 이후 매일 같이 거리에서 군부와 맞서 시위를 하던, 유관순 열사를 쏙 빼 닮은 한 소녀가 미얀마의 '별'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만달레이에서 태어난 중국계 여성으로 노래를 좋아했고, 만달레이 지역 태권도 챔피언이기도 했던, 명랑하고 쾌활한 19 세의 소녀 '치알신'(Kyal Sin, 별명 Angel, 중국이름 鄧家希). 만달레이의 명문 CPEC 사립중학교와 역시 명문 사립고등학교인 Victory Education Center를 졸업하고, 그 나이에 미용실과 댄스클럽을 운영하던 사업가 치알신이, 그날 오후 만달레이에서 벌어진 시위 도중 군대가 쏜 실탄을 머리에 맞고 사망한 것이다. 

오후 내내 유관순 열사의 짧지만 불꽃 같았던 삶의 궤적에 빠져있던 내 머리 속에서 미얀마 소녀 치알신이 유 열사의 이미지와 하나로 오버랩되기 시작했다. 
'치알신' 그녀는 참으로 순결한 애국심을 지니고 있었다. 유관순 열사가 그랬던 것처럼...

작년 11월, 생애 첫 투표를 하면서 그녀는 SNS에 “내가 마음을 다해 하는 첫 투표, 이것으로 조국에 대한 의무를 시작했다” 라고 썼다. 
미얀마를 사랑하기에, 미얀마를 더 좋은 나라로 만들어 줄 것으로 믿는 지도자에게 첫 투표를 한 감격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보다 더 가슴 떨리는 애국심의 표현이 있을까? 그런데 자신의 첫 투표로 선출한 새 국회 출범의 새벽에, 추악한 군부가 선거결과를 뒤엎고, 헌정을 정지시키고, 아웅산 수치 여사를 비롯한 국가 지도자들을 연금해 버렸다. 

분노한 '치알신'은 과감히 일어섰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매일같이 만달레이에서 반쿠데타 시위에 나섰다. 3월 3일 아침, '치알 신'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이라도 한 듯, 시위에 나가기 전 페이스북에 자신의 혈액형을 올리고, 자신이 죽으면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썼다. 그리고는 “모든 것이 다 잘 될 거야! (Everything will be OK!)”라고 씌여진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시위에 나섰다. 

치알 신 ⓒ치알 신 홈페이지
치알 신 ⓒ치알 신 홈페이지

여기에서 아우내 만세운동 전 날인 1919년 3월 31일 밤, 집 뒤에 있는 매봉산에 올라 주변 도시와 마을들을 향해 봉화를 올리는 유관순 열사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치알신이 사망한 후, 그녀의 친구는 그날 아침 그녀가 보낸 메시지를 공개했다. 

“이게 마지막 말이 될 지도 모르겠네. 정말 사랑해! 날 잊지 말아 줘!”

그녀의 또 다른 친구는 시위 도중 치알신이 수도관을 발로 차서 터뜨려 다른 시위자들이 최루가스로 매운 눈을 씻을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또 주변 사람들을 향해 “절대로 후퇴하지 말자 . 우리는 모두 한 마음이다. 끝까지 싸우자 . 모두들 조심해라. 누구도 죽으면 안된다.”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고도 했다. 그리고 잠시 후 군인들이 조준사격한 총탄에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그녀는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시위대의 리더였던 것이다. 

유관순 열사는 이화학당을 다니던 시절 3.1 운동에 참가하기 위해 '5인의 결사대'를 조직했다. 고향인 아우내 장터의 대규모 시위를 기획하고 조직한 것도 유 열사였다. 
감옥에 갇혀서도 '여옥사 8호'에 함께 수감된 동지들의 리더역할을 도맡았으며, 서대문 형무소 내에서의 '3.1운동 1주년 옥중독립만세운동'을 기획한 것도 유 열사였다. 
이로 인해 일제로부터 갖은 고문을 당한 끝에 결국 방광 파열로 순국하게 된다.

그렇게 두 소녀, '유관순 열사'와 '치알신'은 국민의 자유를 지키는 별이 되었다.

치알신은 중국인인 부모의 외동딸로 부모의 극진한 사랑과 신망을 받았다. 지난 2월 11일 그녀의 아버지는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활약하는 딸을 말리는 대신 격려를 하면서, 딸의 손목에 반쿠데타 시위의 상징색인 붉은색 천을 묶어 주었다. 

치알신은 셀카로 이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며 그 아래 “딱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빠!’” 라고 썼다.
그 아버지에 그 자식이라 했던가.  장례식장에서 카메라에 비친 그 부모의 모습은 참으로 의연했다. 

유관순 열사의 부모는 1919년 4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서 딸이 이끄는 독립만세운동의 선두에 섰다가 일본 경찰이 쏜 총탄에 맞아 순국했다. 부모와 딸이 함께 독립운동을 하다가 살해당한 일은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

3월 4일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전날 미얀마 군경의 총탄에 숨진 19세 여성 치알 신의 장례식이 열려 장례식에 참석한 한 여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키알 신은 3일 미얀마 군부 쿠데타 반대 시위 도중 군경의 총탄에 머리를 맞고 숨졌다. 미얀마 내 군부의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위가 격화되는 가운데 이를 진압하려는 군부의 폭력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만달레이=AP/뉴시스
3월 4일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전날 미얀마 군경의 총탄에 숨진 19세 여성 치알 신의 장례식이 열려 장례식에 참석한 한 여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치알 신은 3일 미얀마 군부 쿠데타 반대 시위 도중 군경의 총탄에 머리를 맞고 숨졌다. 미얀마 내 군부의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위가 격화되는 가운데 이를 진압하려는 군부의 폭력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만달레이=AP/뉴시스

언론 보도에 의하면 미얀마 군부는 지난 5일, 치알신의 장례식 다음 날 그녀의 묘소에 난입하여 시신마저 탈취해 갔었다고 한다. 

그녀가 군부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증거를 인멸 혹은 조작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또 다시 유관순 열사를 떠올리게 된다. 1920년 9월 순국한 유관순 열사의 유해는 이화학당이 인수하여 이태원 공동묘지에 장례를 지냈는데, 몇 년 뒤 일제는 도시개발 명목하에 유 열사의 묘소 흔적마저 없애 버렸다.

얼마나 두려웠으면 그랬을까. 그런다고 그 만행이 가려질까. 천안시 병천면 매봉산에 열사의 텅빈 '초혼묘'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잔혹하고 비열한 미얀마 군부여! 치알신의 시신에 어떤 조작을 한 들, 너희들이 저지른 그 악행은 결코 지워지거나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100년 전에 일본 군국주의자들에 의해 살해된 한국의 유관순 열사를 보라. 세월이 흐를수록 그 빛이 더욱 찬연해지면서,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을 온 세상에 알리는 '별'이 되고 있음을 똑똑히 보아라!

이제 너희들이 살해한, 그리고 그 시신마저 탈취했던 19세의 소녀 '치알신' 또한 '미얀마의 별'이 되어 세계인을 향해 두고두고 너희의 죄상을 증언할 것이다. 
나는 앞으로 3월이 오면 유관순 열사와 치알신을 함께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유관순 열사 초혼묘 ⓒ조용경 여행작가
유관순 열사 초혼묘 ⓒ조용경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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