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판벌려] 여성으로 존재할 권리
[정치 판벌려] 여성으로 존재할 권리
  • 이가현 페미니즘당 창당모임 공동대표
  • 승인 2021.03.13 08:00
  • 수정 2021-03-15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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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중 해외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고 돌아온 부사관 변희수 하사가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육군의 전역 결정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고 변희수 전 하사. ⓒ뉴시스.여성신문

나는 징병제에 반대한다. 무기나 군대로 만드는 것은 평화가 아니라 긴장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게다가 페미니스트로서 한국 군대에서 생산되는 ‘진짜사나이’류의 사회에 해로운 남성성에도 반대하므로 병역거부 운동과 대체복무제 도입을 응원하고 있다. 군대 내부의 질서나 문화를 바꾸는 것보다 군대를 폐지하는 쪽이 더 옳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데 변희수 하사가 나타났다. 그녀는 누구보다 훌륭한 군인의 태도를 지니고 혜성처럼 등장해 트랜스여성인 자신의 존재로서 이 나라에서 가장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군대를 향한 변화의 불을 지폈다. 그리고 1년이 지나 변희수 하사는 고인이 되었다. 나는 그녀의 투쟁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함께하지 못한 것 같은 죄책감에, 또 변 하사의 존재를 끝까지 부정하는 국방부와 혐오세력들에 맞서 그녀의 등장과 투쟁이 한국의 여성인권운동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서툴게라도 반드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7년, 육군은 군형법 제92조 6항(항문성교 및 추행 처벌법)을 근거로 ‘육군 성소수자 색출 사건’을 벌여 동성간 성관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멀쩡한 군인들을 강제전역시켰다. 이 사건의 피해자들은 사회의 편견과 차별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얼굴과 이름을 가린 채 투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약 3년 뒤인 2020년, 변희수 하사는 대사회 커밍아웃으로 내 앞에 있는 한 인간으로서 성소수자의 존재를 드러냈다. 거수경례를 하며 여군으로서 복무를 이어나가고 싶다고 말하는 변희수 하사의 얼굴과 표정, 눈물은 살아있는 한 인간으로서 한국사회에 트랜스여성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게다가 그녀는 짧은 머리와 군복차림으로 등장해 사회가 트랜스여성에게 예상하고 강요하는 전형적인 여성성의 모습을 깨는 데에 일조했다.

변희수 하사의 여군 복무 요청에 화답한 여군의 존재 또한 돋보였다. 변 하사를 강제전역 시킨 것에 대한 변명이랍시고 여군들이 변희수 하사와 함께 생활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군의 언론플레이에 대해 여군들은 ‘우리 인권을 언제부터 그렇게 챙겼느냐’며 ‘소수자들끼리 싸움붙이는 것은 비겁한 일’이라고 일침을 날렸다. 여군들은 트랜스여성이 다른 여성을 강간하거나 위협할 것이라는 혐오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들은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살아가는 데에 중요한 것은 누가 어떤 정체성이냐 또는 누가 어떤 몸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신뢰와 질서라는 것을 증명했다.

변희수 하사가 주장했던 바는 결국 군대 내의 성평등이기도 했다. 아직도 군대는 성역할고정관념에 갇혀 여군들에게 다양한 병과의 보직을 부여하지 않고 여군들이 원치 않는 온정적 배려를 하며 성차별구조를 심화하고 있다. 만약 변희수 하사가 여군으로의 복무전환이 가능했다면 이후 군복무 중 성전환을 한 트랜스남성이 여군에서 남군으로의 복무전환을 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리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모든 군인들이 남군에서 여군으로, 여군에서 남군으로 넘나들면서 각자에게 부여된 성역할고정관념을 타파할 수 있다면 군대에서 ‘보편’의 위치를 점하는 남군과 ‘특수’의 위치를 가진 여군의 구분을 점차 희미하게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변희수 하사의 투쟁은 군대가 신체검사와 신체등급을 통해 만들어내는 ‘정상신체’ 이데올로기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기도 했다. 특권계층을 제외한 법적 남성들은 병무청에서 신체조건에 따라 등급으로 나뉘어진다. 이 ‘정상신체’는 시스젠더 이성애자 비장애인 남성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병무청은 이 평가기준에 근거해 법적 남성들의 신체를 세밀하게 조각내서 시력과 몸무게, 간수치, 우울증 여부, 음경 절단, 여성형 유방 등을 확인하며 하나라도 ‘정상신체’에 부합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등급을 떨어뜨린다. 신체등급의 위계는 남성성의 위계, 여성과 남성의 위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위계, 시민들간의 위계를 만들어낸다. 높은 등급을 받은 신체일수록 사회적 자원을 더 손쉽게 획득할 수 있다. 더불어 신체등급은 이 인위적인 ‘정상신체’ 범주에 들지 못한 사람들을 혐오하게 만든다. 다양한 몸이 아니라 비정상이라고 여겨지며 멸시나 조롱의 대상이 되거나 변희수 하사처럼 직업선택의 자유, 노동권과 생존권이 박탈되기도 한다. 우리는 변희수 하사의 투쟁을 통해 모두의 목숨이 평등하게 존엄한 것처럼 그 어떤 신체에도 등급을 나누거나 위계를 지어선 안 된다는 것을 다시금 새겨야 한다.

마지막으로 변희수 하사는 ‘여성으로 존재할 권리’를 위해 싸웠다. 누군가는 여성은 사회의 피해자인데 피해자로 존재할 권리같은 것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성으로 존재할 권리’는 여성이어도 성폭력 성차별을 당하지 않을 권리, 여성이어도 일터에서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 여성이어도 필요한 교육을 받을 권리, 여성이어도 건강을 위해 진료를 받을 권리, 여성이어도 법 앞에 평등할 권리를 포함한다. 결국 ‘여성으로 존재할 권리’는 ‘여성이어도 인간답게 살 권리’인 것이다. 소수자들이 차별과 혐오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고 주장하는 것은 소수자도 인간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부르짖음인 것이다.

변희수 하사는 자신의 존재를 던져 차별과 혐오를 생산해내는 권력에 균열을 냈다. 그리고 성소수자혐오와 여성혐오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남은 이들은 그녀가 열어놓은 이 문을 지나 혐오와 차별을 재생산하는 군대의 각종 규정들과 문화를 바꾸고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사람을 살리는 길이다. 여성으로 존재할 권리를 위해 싸우는 많은 사람들이 변희수 하사를 기억하고 그녀가 남긴 길에 함께 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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