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검찰은 암환자...열기만하고 수술은 못해
여성에 대한 관점이 그 사회의 인권, 교육 수준 잣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홍수형 기자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홍수형 기자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이력은 화려하다. 서울 지역 첫 여성 국회의원, 헌정 사상 첫 여성 지역구 5선 의원, 첫 여성 여당 대표 등. ‘여성 최초’ 타이틀은 이밖에도 수없이 많다. 그는 또 입법, 사법, 행정을 두루 경험한 흔치 않은 정치인이다. 퇴임 후에도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고 있는 추 전 장관을 1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만났다. 

법무부를 떠난 뒤 어떻게 지내는지 물었다. “속박에서 벗어난 느낌입니다. 지난 1년간 검찰권력에 맞서 싸우면서 심신이 지쳤어요. 힘들었던 내면을 해방 시켜주려고 스스로 다독이고 있습니다. 방금 본 전시회 같은 경우가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선각자들의 발길을 쫓아가고 싶기도 하고요”. 추 전 장관은 인터뷰 직전 윤석남 화백‧김이경 작가의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 전을 관람했다.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을 초상화로 복원한 전시회다.      

지난 1년 추 전 장관의 목표는 검찰개혁 나아가 사법개혁 완수였다. “무소불위 권력을 70년간 누린 검찰은 암환자와 같습니다. 고름이 켜켜이 쌓여 있는 환자인데, 아쉽게도 저는 개복만 했어요. 도려내고 꿰매야 하는데, 수술을 못했습니다. 이렇게 심각한 환자라는 사실을 세상에 드러낸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4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사퇴했다. 장관 시절 윤 전 총장과는 줄곧 대립했다. “(윤석열 전 총장에 대해) 할 말은 많지만 거친 용어는 자제하겠습니다. 대립은 언론이 만든 프레임이에요. 독점적인 권력을 해체하려니 구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지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좌초된 개혁을 달성해 달라는 촛불시민의 염원을 한순간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추미애 전 장관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은 인권탄압이라고 말했다. 추 전 장관은 지난 6일 ‘위증 교사한 검사들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려 또 한번 노골적으로 제 식구 감싸기를 해버렸다. 윤석열의 검은 그림자의 위력’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11년 전 일본 특수부 검사가 증거를 날조하고 기소했다 들통나 무죄가 선고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일본의 검찰개혁은 전대미문의 ‘검사에 의한 증거날조’에서 시작됐습니다. 한 총리의 수사검사의 혐의는 단순히 물적 증거 조작이 아니라 인적 증거를 날조한 매우 엄중한 혐의입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홍수형 기자
여성신문과 인터뷰 중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홍수형 기자

대선 후보 추미애?... “여성지도자에게 기대와 응원 보내줬다”

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로서 4‧7 보궐선거 전망을 물었다. “선거일이 휴일이 아니기 때문에 투표율이 좌우할 것 같습니다. 촛불 시민들의 마음이 변치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촛불을 들었을 때 외쳤던 그 나라가 완성될 수 있습니다. 투표장으로 와주시면 이길 수 있을 겁니다.”

정치권은 보궐선거 이후 바로 내년 대선을 준비하는 분위기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도 대선 후보로 자천타천 거론되고 있다. 추 전 장관은 지난 9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캐서린 제인 레이퍼 주한 호주대사 면담 소식을 전하며, ‘내년 대선에서 한국의 정치사회 변화와 여성지도자의 활약에 대한 기대와 응원도 함께 보내주었습니다’라고 올렸다. 대선 출마 여부를 물었다.

“문재인 정부에선 누구나 개인의 정치 야심보다는 헌신성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난 총선도 포기하고 모든 개혁의 입구를 막고 있는 검찰개혁이란 임무를 수용하고 헌신했습니다. 사법개혁, 언론개혁, 재벌개혁 등 이제 대전환의 기틀이 마련됐다고 봅니다. 지금 상황에서 (대선)계획을 밝힐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무슨 역할을 하든 시대와 국민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추미애 전 장관은 많은 여성의 롤모델로 꼽힌다. 그를 직선적이고 강인한 여성 리더라는 평가도 있다. “개혁의 본질은 타협할 수는 없는거죠. 일에 대한 집념과 추진력이 강하고 원칙을 강조하다보니 그런 것도 있고, 언론이 의도를 가지고 그려놓은 모습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저 자신은 ‘부드러운 직선’이라고 평가하고 싶네요.” 

그는 법무부 장관 시절 상처도 있다고 했다. 무혐의 처분을 받은 아들 군 휴가 미복귀 의혹도 그 중 하나다. “1995년 여름부터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엄마 역할을 제대로 못했죠. 아이들이 봄에 겨울옷을 입고 학교에 가니 선생님한테 연락이 오기도 했습니다. 우리 애들은 친구가 코푼 휴지를 버리면 그걸 주워야 했습니다. 누가 오해할지도 모르니까요. 엄마가 유명 정치인이니 강박적으로 작용했을 겁니다. 어느 날 술 마시고 들어와 ‘엄마 존경합니다’라고 말 하는 아들을 봤을 땐 대견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홍수형 기자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홍수형 기자

성평등한 사회의 핵심은 인간 내면 교육

조주빈의 n번방 유사 사건 이어질 것... 발본색원 해야

추미애 전 장관은 지난 8일 SNS를 통해 ‘여성의 날이 곧 인권의 날이고 교육의 방향을 생각하는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여성에 대한 관점은 그 사회와 사람의 인권 또는 교육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입니다. 우리 사회는 산업화 시대를 지나오면서 경쟁 교육에 치중해 인간 내면 교육을 소홀히 했습니다. 자아정체성의 기본은 성정체성이고 그 정체성은 3세정도면 굳어진다고 합니다. 교육을 자본의 논리로 하니 인간성을 상실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봐요. 우리는 남성이 여성을, 여성이 남성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교육이 안 된 상태로 거의 70년을 살아 왔습니다. 비대면 시대 개개인이 다 고립돼 있습니다. 교육에 더 신경써야하는 이유입니다.”  

그는 성폭력의 근본적인 문제도 교육에 있다고 봤다. “지금까지 교육은 암기식 맞춤형입니다. 이는 길들이기 교육으로 이어집니다. 순종을 미덕이라 가르치고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는 개인의 자존감도 낮춘다고 합니다. 그에 대한 보상심리로 여성·아동·약자에게 엄하고 폭력적으로 대하구요. 개인의 자존감을 높이는 교육이 선행돼야 합니다. 길들이기 교육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의심하고 문제 제기를 할 줄 아는 비판능력을 기르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거죠. 이는 민주주의 시민교육과도 직결되는 것입니다. 개개인의 강한 자아가 확립될 때 자신을 존중하게 되고 그런 뒤에 비로소 약자를 존중하게 됩니다.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성을 욕망의 도구가 아닌 인격 대 인격이 만나는 과정으로 이해하게 해야 합니다.” 

디지털 성산업은 IT 강국 한국의 어두운 면이다. ‘n번방’ 사건은 추악한 단면 중 하나다. 추 전 장관은 n번방 사건 수사를 진두지휘했다. “성을 산업화의 도구로 여기니 그런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당시 대통령께서 심각성을 전달하셨고, 기민하게 대응했습니다. 조주빈의 n번방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나타날 것입니다. 발본색원하려면 교육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가 장관 재임 중이던 지난해 4월엔 의제 강간 연령을 13세에서 16세로 올리는 형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여성계가 줄기차게 주장해 왔지만, 법무부의 소극적 태도에 가로막혀 있었습니다. 여성인권이 존중되자면 법이 여성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추미애 전 장관은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 시스템이 리셋되는 대전환기의 입구에 있다고 했다. 그는 아직 해결하고 싶은 일이 있기에 어떤 위치에서 어떤 일을 하든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다. 모든 현상은 연결 돼 있고, 근본에 충실하면 된다는 추 전 장관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홍수형 기자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홍수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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