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성착취 엄벌 요구 높지만
음란물 유포자 50% 1심 벌금형...41% 집행유예
반성한다고 초범이라고 감형 관행 여전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가 'n번방 운영자 갓갓의 무기징역 선고를 요구한다'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가 'n번방 운영자 갓갓의 무기징역 선고를 요구한다'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텔레그램에 ‘n번방 자료 섭외 대화방’을 만들어 성착취물을 공유한 20대 남성 이모씨. 법원의 판단은? 집행유예. 어째서? “고3 스트레스”.

4785개. 2019년 말 붙잡힌 또다른 20대 남성 이모 씨가 텔레그램 성착취 대화방에서 내려받아 갖고 있던 성착취물의 개수다. 역시 집행유예. 대체 왜? “자백했고 반성 중”이라서.

‘n번방’·‘박사방’ 등 텔레그램 성착취 범죄가 세상에 알려진 지 1년이 훌쩍 지났다. 그러나 관련해 기소된 이들 대부분은 벌금형. 집행유예 등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박사’ 조주빈은 가중처벌로 1심에서 징역 4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성착취물을 소비하고 공유하고 이득을 취한 익명의 범죄자 대다수는 징역형은커녕 별다른 처벌조차 받지 않았다. 

2017년 1월~2020년 7월 음란물 유포 혐의로 기소된 사례 315건의 1심 양형을 살펴봤다. 한겨레21의 ‘디지털성범죄 끝장 프로젝트 너머n’ 자료를 참조했다. 18일 기준 벌금형(159건, 50.5%)을 받은 사례가 가장 많았다. 집행유예도 41.6%(131건)으로 높았다. 실형을 받은 경우는 16건(5.1%)뿐이었고, 평균 형량은 8.6개월이었다. 무죄 판결을 받은 경우도 5건(1.6%)에 달했다.

피고인 6명 중 1명은 단순 성인영상물이 아닌 ‘n번방’·‘박사방’ 관련 자료 등 불법촬영물을 유포했다. 그러나 성폭력처벌법이 아닌 음란물 유포죄로 처벌됐다. 불법촬영물 유포 혐의로 기소된 51건은 대개 벌금형(24건, 47.1%)에 그쳤다. 벌금 평균액은 321만원이었다. 집행유예는 37.3%(19건), 실형은 7.8%(4건)였다. 

자세한 사례를 살펴보면 더더욱 이해하기 힘든 판결이다. ‘n번방 자료 섭외 대화방’을 만들어 성착취물을 공유한 20대 남성 이씨는 2월18일 항소심에서 징역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항소1-3부는 “범행 당시 고3 수험생이었고 대학 진학을 위해 노력하다가 수시 전형에 실패하자 불안감과 중압감으로 범행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감형 사유를 밝혔다.

20대 남성 이모 씨는 2019년 12월께 텔레그램 성착취 대화방에서 성착취물 4785개를 내려받아 소지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서울서부지법 형사4단독 박용근 판사)는 1월27일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성폭력 치료강의 40시간 수강, 사회봉사 120시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및 장애인 복지시설 취업 제한과 신상정보 공개를 명했다. “자백했고 반성하는 점, 영상을 추가 유포하지 않은 점을 감안”했다.

‘n번방’을 통해 성착취물을 2000개 이상 구매한 20대 남성도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춘천지법 형사1단독 정문식 부장판사)는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반성하는 점, 다시 유포한 정황을 찾기 어려운 점 등을 참작했다”고 지난해 12월26일 밝혔다. 이처럼 대부분이 자백, 반성 등을 이유로 감형받았다.  

관련기사 ▶ 반성·초범이니 감형? 법원의 실수가 또다른 n번방·박사방 낳는다 www.womennews.co.kr/news/209313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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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빈, 문형욱 등 경찰이 신상을 공개한 주요 범죄자들은 어떨까. ‘박사방’ 조직을 만들어 아동·청소년 등 다수의 피해자를 성착취하고 성착취 영상을 제작·유포한 조주빈은 그렇게 번 범죄수익을 은닉한 혐의 등으로 추가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5년을 선고받았다. 오는 30일 항소심 공판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다른 주범들은 비교적 낮은 형량에 그쳤다. 조주빈의 공범이자 참여자를 모집하고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기야’ 이원호 일병은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았다. 앞서 검찰이 구형한 징역 30년의 절반보다 더 낮은 형량이다. 항소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역시 조주빈의 공범으로, 여성들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영리 목적으로 텔레그램에서 배포한 혐의로 기소된 ‘부따’ 강훈은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1월21일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31부 조성필 판사)는 “만 19살의 어린 나이에 범행을 한 사정, 가정 및 학교생활 태도를 보면 장기간 수형 생활을 한다면 교정될 사정이 없지 않아 보인다”고 판시했다. 강훈은 항소했다.

조주빈의 공범인 남경읍은 박사방에 가담해 피해자들을 물색·유인하고 성착취물 제작에 참여한 혐의 등으로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n번방 창시자 ‘갓갓’ 문형욱은 아직 1심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11일 예정이었으나 선고 일정이 연기돼 이르면 오는 22일 이후에나 잡힐 예정이다. 여성·시민단체는 무기징역 선고를 요구하고 있다. 

문형욱의 공범으로, 아동·청소년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만든 혐의 등으로 기소된 안승진은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1심 (대구지법 안동지원 형사합의부 조순표 부장판사)은 지난해 12월17일 안승진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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