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릴 수 있었던 여자들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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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어떻게 여성에게 가장 위험한 장소가 되었나?” 2019년 뉴욕타임스, 이코노미스트를 비롯해 다수의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꼽히며 화제가 됐다. 

미국 내 가정폭력 실태를 취재한 책이다. 미국에서는 지금도 매달 여성 50명이 친밀한 반려자가 쏜 총에 맞아 목숨을 잃는다. 충격적인 통계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 가정폭력의 현실은 축소되고 은폐된다. 저자 레이철 루이즈 스나이더는 가정폭력 중 살인으로 이어진 고위험 사례에 집중함으로써 살인으로 치달을 수 있는 가정폭력의 메커니즘을 분석한다.

무고한 여성의 죽음을 막기 위해 우리가 살펴야 할 신호는 무엇인지도 적었다. 잠재적인 살인을 예고하는 위험 요인은 목조름, 통제, 강제적, 성관계, 임신 중 구타, 총기 소지, 자살 위협, 살해 위협 등이다. 이러한 요인을 분석해 피해자가 처한 상황의 위험도를 파악함으로써 누군가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 저자는 가정폭력이 “더 큰 일로 비화하기 전에 경범죄 단계에서 흔들어놓는 것”(440쪽)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레이철 루이즈 스나이더/황성원 옮김/시공사/1만9800원

 

환한 숨

ⓒ문학과지성사
ⓒ문학과지성사

2019년 대산문학상 수상작인 『단순한 진심』(2019) 이후로 처음 선보이는 조해진 소설가의 네 번째 소설집이다. 자전소설인 「문래」와 2019년 김승옥문학상 우수상을 받은 「환한 나무 꼭대기」를 포함해 총 9편의 소설이 수록됐다. 

2004년 데뷔한 조해진 소설가는 말하기 어려운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이주민, 입양인, 노동자 빈민 등 소외된 이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을 다수 펴냈다. 이번 소설집에서도 기댈 곳 없이 암 투병 중인 중년 여성, 수은중독이 뭔지도 모른 채 일했던 미성년 노동자들,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청춘을 보낸 뒤 지쳐버린 남녀의 삶, 특성화고 비정규직 교사, 부당하게 해직된 기자 등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조해진/문학과지성사/1만4000원

 

여자들이 글 못 쓰게 만드는 방법

ⓒ낮은산
ⓒ낮은산

역사적으로 여성의 글쓰기는 ‘외설적이다’, ‘미쳤다’, ‘개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으며 무시됐다. 여성 작가는 유별나고 이례적인 존재로 취급받고, 아내나 어머니 등으로 손쉽게 분류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왜곡되고 억압돼왔다. 

저자인 조애나 러스는 몇 세기에 걸친 방대한 문헌을 분석해 이러한 억압을 면밀히, 반어적으로 분석한다. 여성의 글쓰기를 억압하는 ‘비공식적인’ 통제와 금지를 기발하고 전복적인 방식으로 짚은 페미니즘 비평서다. 앞선 세대의 여성 작가들이 어떠한 방해와 억압 속에서 글쓰기를 지속해갔는지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책이다. 1983년에 처음 출간된 뒤 제사 크리스핀의 서문을 덧붙여 35년 만에 재출간됐다. 

러스는 페미니즘 SF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풍자적 유토피아 소설 『여자남성(The Female Man)』을 비롯해 성별 이분법을 뒤엎는 문제작을 선보인 급진적인 페미니스트 작가로 꼽힌다. 

조애나 러스/박이은실 옮김/낮은산/1만7000원

 

고도일보 송가을인데요

ⓒ한겨레출판
ⓒ한겨레출판

언론사 ‘고도일보’의 열혈 초보 기자인 송가을이 은폐된 진실을 추적하며 벌이는 취재 분투기다. 시트콤과 활극의 요소를 갖춰 출간 전부터 드라마화가 결정됐다. 

현직 기자인 송경화 작가의 소설 데뷔작이다. 작가는 자신의 생생한 취재 경험에 상상력을 더해 성매매, 금융 비리, 간첩 조작 사건, 검찰 개혁, 분단, 일본군‘위안부’ 문제, 세월호 사건 등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비극과 문제를 재현한다. 

사회부 경찰팀, 법조팀, 탐사보도팀 등 3부로 구성됐고 총 16개의 에피소드가 담겼다. 아버지뻘 형사에게 사건 대장을 요청하는 모습부터 후반부에 이르러 대통령 탄핵과 촛불집회로 이어지는 거대한 사건에 불을 지피는 단독 기사를 보도하는 베테랑 기자로 거듭나는 과정이 차례로 펼쳐진다. 초보 기자의 유쾌한 성장기를 그려내는 동시에 지난 10여 년간 한국 사회를 관통한 실제 사건을 실감나게 제시한다. 

송경화/한겨레출판/1만4000원

 

페미니즘과 정신분석: 딸의 유혹

ⓒ꿈꾼문고
ⓒ꿈꾼문고

국내에 처음 번역돼 소개되는 페미니즘 이론가이자 문학비평가 제인 갤럽의 연구서다. 페미니즘 이론과 정신분석의 관계를 분석한 책으로, 라캉의 이론과 그에 연관된 다양한 페미니즘 텍스트를 특유의 ‘자세히 읽기(close reading)’로 세밀하게 분석한다.

갤럽은 1976년 미국 코넬대에서 프랑스문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 이론을 비롯해 페미니즘, 문학비평, 퀴어 이론 등을 주제로 많은 글을 썼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과 달리) 정당한 표상을 지닐 수 없고, (남성과 달리) 결핍으로서만 정의될 수 있다. 한편 갤럽은 “페미니즘이 남근중심적 세계를 바꾸려 한다면 남근중심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명료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정신분석과 페미니즘의 양립 가능성을 다각도로 탐구한다. 

제인 갤럽/심하은·채세진 옮김/꿈꾼문고/1만5000원

 

걸어간다, 우리가 멈추고 싶을 때까지

ⓒ현암사
ⓒ현암사

페미니즘에 관한 다양한 문제의식과 고민, 행보를 다룬 책이다. 정치, 범죄, 대중문화, 법, 여성학, 교육, 과학 등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여성 9명의 목소리를 담았다.

논픽션 작가이자 과학사를 연구한 하미나 작가는 여성 과학자가 소외되는 현실과 역사를 지적한다. ‘페미니스트 교사 최현희 작가는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을 목도한 후 페미니즘 교육이 생존의 문제임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김민정 연구자는 범죄심리학과 여성학이 교차하는 지점을, ‘페미당당’ 심미섭 활동가는 늦은 밤 한 남자가 집 앞까지 따라온 경험을, 예술노동자인 우지안 작가는 가스라이팅 경험을 적었다.

이외에도 대한민국 최초로 커밍아웃한 트랜스젠더 변호사인 박한희 변호사가 고정된 성별관념에 던지는 질문, 디지털 성폭력 활동가인 하예나 씨의 활동과정과 피해·가해 이분법에 관한 문제의식을 담은 글, 가요를 좋아하지만 그 속의 여성혐오를 마주해야 하는 현실을 담은 복길 작가의 글, ‘낙태죄’에 관한 젠더법학 연구자 이은진 씨의 글이 담겨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싸우고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자칫 거대해 보이는 페미니즘 담론을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아울러 지난 몇 년간 한국사회에서 수면 위로 떠오른 여러 이슈를 되짚어볼 수 있다. 

하미나·김민정·박한희·복길·심미섭·우지안·이은진·최현희·하예나/현암사/1만5000원

 

악취

ⓒ글항아리
ⓒ글항아리

18살부터 미성년자 성착취를 겪은 생존자의 자전적 기록이 처음으로 나왔다. 학원비를 벌기 위해 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렸다가 1시간에 3만원짜리 아르바이트를 제안받은 것이 시작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성착취의 굴레에 6개월 동안 갇혀 있었다. 처음에는 집에 가서 더러운 흔적과 불결한 냄새를 씻으면 된다고 생각했다가, 점점 몸과 마음에서 ‘악취’가 진동하자 자신을 합리화하고 체념하게 됐다. 10년 뒤 고통스러운 기억을 되살리며 책을 썼다.

저자는 자신의 회복을 위해, 그리고 자신과 같은 일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청소년을 위로하기 위해 이 책을 펴냈다. 또 ‘악취’로 인해 괴로워해야 할 당사자는 가해자들이라고 강조한다.

강그루/글항아리/1만3500원

 

천연균에서 찾은 오래된 미래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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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골빵집 ‘타루마리’ 경영자들과 한국의 대안형 혁신학교 ‘이우학교’ 교사들의 대담집이 출간됐다. 교육을 비롯한 정치, 사회, 경제에 이르기까지 더 나은 삶의 방향을 모색하는 대담이다. 

‘타루마리’는 한국과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의 저자 와타나베 이타루와 그의 부인 와타나베 마리코가 운영하는 빵집이다. 부부는 천연균을 채취해 발효한 효모로 빵을 굽고 맥주를 만든다. 지역 커뮤니티와 관계를 맺으면서 밀가루 등 각종 원재료를 공급받아 지역 내 경제순환 생태계를 구축했다. 자본주의 시대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관한 고민을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로 펴냈다. 

우경윤 이우학교 교사는 학생들에게 자본주의를 더 쉽게 가르치기 위해 자료를 찾던 중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를 발견했다. 책에서 말하는 노동의 참된 가치에 공감했을 뿐 아니라 마을(로컬) 회복이 미래의 희망이라고 여기는 이우학교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고 여긴 그는 타루마리를 직접 찾았다. 이후 수차례에 걸친 교류와 대담의 결과 이 책이 나오게 됐다. 

계층 간 격차가 더 커지는 사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등 불안하고 불투명한 미래를 마주한 사람들이 단단하게 버티며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와타나베 이타루·와타나베 마리코·우경윤·김철원/정문주 옮김/우주소년/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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