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페트병 → 옷·가방·화장품 용기로 되살리는
‘K-rPET’ 시장 뜬다
친환경 중시하는 MZ세대 호응
실적 부진 패션계 성장 동력 될까
코로나19·배달문화로 인한
페트병 쓰레기 급증 해결책으로 주목

플리스 재킷, 티셔츠, 가방, 화장품 용기... 모두 버려진 페트병으로 만든 제품이다. 인기 브랜드들이 페트병 재생 섬유로 만든 친환경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은정 디자이너
플리스 재킷, 티셔츠, 가방, 화장품 용기... 모두 버려진 페트병으로 만든 제품이다. 인기 브랜드들이 페트병 재생 섬유로 만든 친환경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은정 디자이너

가볍고 따뜻한 플리스 재킷, 색이 고운 니트와 가방, 기능성 티셔츠.... 모두 버려진 페트병으로 만든 제품이다. 잘 버린 페트병이 폴리에스터 섬유로, 다시 인기 브랜드의 패션 제품으로 재탄생했다. 

버려지는 페트병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K-rPET(국산 리사이클링 PET 원료)’ 시장이 뜬다. 패션계의 관심사인 ‘지속가능성’과 맞물려, 재생 섬유로 만든 ‘착한 패션’을 선보이는 기업이 늘었다. 친환경을 중시하는 MZ세대(1980년대 초~2000대 초 출생 세대)를 겨냥했다. 코로나19 여파로 매출이 급감한 패션계에 새 성장 동력이 될 거라는 기대도 나온다. 코로나19·배달문화로 인한 ‘페트병 쓰레기 급증 사태’ 해결책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플리츠마마가 2020년 6월 선보인 투명페트병 재활용 가방 제품 ‘제주 에디션’ ⓒ플리츠마마
플리츠마마가 2020년 6월 선보인 투명페트병 재활용 가방 제품 ‘제주 에디션’ ⓒ플리츠마마

국내 친환경 패션 스타트업 플리츠마마는 2020년 4월 환경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개발공사(삼다수), 효성티앤씨와 함께 친환경프로젝트 ‘다시 태어나기 위한 되돌림’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제주도가 깨끗한 투명페트병을 수거하면, 재생섬유 제조 기술을 가진 효성티앤씨가 고급 폴리에스터 섬유 리젠(regen®)사를 만들고, 플리츠마마가 가방·의류 제품을 만드는 프로젝트다. 500mL 페트병 16개로 가방 1개를 만드는 식이다.

2020년 6월 첫 ‘제주 에디션’(4종)을 선보였고, 인기를 얻자 제주 부속 섬인 추자도와 우도에서도 페트병을 수거해 재활용했다. 2020년 11월 발매한 ‘추자 에디션’(2종)은 출시 당일 완판됐다. 지난 10일에는 서울시, 효성티앤씨와 함께 서울 지역 수거 투명페트병을 재활용한 ‘러브서울 에디션’(8종)을 내놨다.

노스페이스 ‘K에코(K-ECO) 삼다수 컬렉션’ 중 에센셜 컬러 블록 후디를 착용한 홍보대사 김요한 ⓒ노스페이스
노스페이스 ‘K에코(K-ECO) 삼다수 컬렉션’ 중 에센셜 컬러 블록 후디를 착용한 홍보대사 김요한 ⓒ노스페이스

아웃도어 브랜드들도 이 시장에 눈을 돌렸다. 노스페이스는 버려진 페트병으로 만든 의류 제품을 꾸준히 출시하고 있다. 2019년 페트병 370만개를 재활용해 플리스 재킷, 롱 테디 코트 등 ‘에코 플리스 컬렉션’을 처음 선보였다. 배우 신민아 등 홍보 모델이 올바른 페트병 재활용법을 알려주는 영상도 배포했다.

인기가 좋아 2020년에는 페트병 1080만 개를 재활용해 가짓수와 생산물량을 전년도의 2배 이상으로 늘렸다. 올해 1월 제주특별자치도·제주삼다수(제주개발공사), 효성티앤씨와 페트병 재활용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2월엔 봄 시즌에 맞춰 재킷, 아노락, 후디, 맨투맨, 반팔티셔츠, 에코백, 버킷햇 등 16종으로 구성된 ‘노스페이스 K에코(K-ECO) 삼다수 컬렉션’을 출시했다. 버려진 페트병 100t을 재활용했다.

블랙야크가 전개하는 라이프웨어 '나우'가 2019년 출시한 K-rPET 재생섬유로 만든 플리스 재킷. ⓒ블랙야크
블랙야크가 전개하는 라이프웨어 '나우'가 2019년 출시한 K-rPET 재생섬유로 만든 플리스 재킷. ⓒ블랙야크

㈜비와이엔블랙야크(블랙야크)는 자사의 모든 재활용 폴리에스터 제품을 K-rPET로 생산하는 게 목표다. 2020년 8월 섬유업체 ㈜티케이케미칼과 손잡고 국내 투명페트병으로 만든 ‘K-rPET 재생섬유’로 만든 기능성 티셔츠를 첫 출시했다. 티셔츠 1장당 500mL 페트병 15개를 재활용했다. 플리스 재킷, 패딩 충전재 등도 재생 섬유로 만들고 있다.

또 환경부, 강원도, 강릉시, 삼척시, 서울 강북구·마포구·은평구 등 지자체와 MOU를 맺고 페트병 재활용 시스템을 구축해나가는 중이다. 올해는 국방부 장병과 경찰청 직원들의 활동복 총 1만2000여 벌도 투명페트병 재생원료로 제작한다. 앞으로 재킷, 팬츠 등 다양한 제품군 확대를 위해 정부, 지자체, 기업과의 협력을 늘릴 예정이다.

K-rPET 재생원료로 제작한 아모레퍼시픽 해피바스 바디워시 5종 용기 (자몽 외) ⓒ아모레퍼시픽
K-rPET 재생원료로 제작한 아모레퍼시픽 해피바스 바디워시 5종 용기 (자몽 외) ⓒ아모레퍼시픽

아모레퍼시픽은 투명페트병을 압축해 잘게 부순 다음, 재활용해 보디워시 등 화장품 용기로 생산하고 있다. 2L짜리 생수병 3개로 900mL 보디워시 통 1개를 만드는 식이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환경 문제에 민감한 2030 여성이 우리의 주 고객이고, 실제로 이러한 시도가 호응을 얻고 있다. 불필요한 페트병, 플라스틱 사용량을 더 줄이고 재활용과 재사용이 쉬운 원료를 사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도 2019년 10월 FnC부문 8개 브랜드가 참여해 투명페트병을 재활용한 ‘업사이클링 스윗셔츠’를 출시했다. 앞서 페트병에서 추출한 친환경 섬유 ‘에코프렌’을 개발해 2009년 친환경 인증 전문기관 ‘컨트롤 유니언’으로부터 GRS(Global Recycle Standard) 인증을 획득했다. 

 

세계 페트병 재활용 ‘8조 시장’ 성장
국내생산 페트병은 10%만 재활용
깨끗한 페트병 구하려 수입 의존했지만
투명페트병 분리배출 의무화로 개선 전망

 

페트병 재활용은 세계적인 흐름이다. 어느덧 세계 페트병 재활용 시장 규모가 2019년 기준 약 73억달러(우리돈 약 8조원)에 이르렀고, 연평균 7.9%P씩 성장하고 있다(그랜드뷰 리서치, 2019).

환경오염과 기후위기 대응책으로도 꼽힌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해마다 플라스틱 쓰레기 800만t이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50년이 되면 전 세계 바다의 플라스틱 쓰레기 무게가 물고기의 무게를 넘어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페트병 제조업체도 기존 유색 페트병을 재활용이 쉬운 투명페트병으로 교체하고, 라벨을 아예 제거해 출시하는 추세다. 

국내 페트병 재활용 시장도 더 성장할 전망이다. 그간 국내 생산 페트병은 약 10%(2만9000t)만 재활용됐다. 유색 페트병, 일반 플라스틱과 뒤섞여 배출됐기 때문이다. 페트병에 색이나 이물질이 들어가면 폴리솜 같은 단섬유로만 활용할 수 있어 가치가 떨어진다. 섬유업체들은 국내 생산 페트병 대신 대만, 일본 등에서 질 좋은 재생원료를 수입해 왔다. 환경부 자료를 보면 2020년에만 7만8000톤(t)을 수입했다. 하지만 2020년 12월부터 국내 공동주택 투명페트병 분리배출이 의무화됐고, 올해 말부터는 단독주택도 분리배출을 해야 한다. 앞으로 K-rPET 시장이 커질 거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값비싼 재생원료에 투자 고민하는 기업도
대체로 ‘가치 소비’ 트렌드 속 성장 전망

 

더 많은 기업들이 동참하려면 넘어야 할 문제도 있다. 일단 가격 문제다. K-rPET 재생섬유는 석유 제품에서 추출한 기존 폴리에스터·나일론에 비해 품질이 떨어지지 않지만, 폐자원 분류, 세척 등 추가 공정을 거치다 보니 원가가 비싸다. 블랙야크 관계자는 “다양한 재생 소재를 개발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아직 많은 투자가 필요한 단계”라며 “소비자들이 아직은 친환경 제품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많이 구매하지는 않는다. 조금씩 변하곤 있지만 당장 수요 확대에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와 자원 순환 시스템 구축을 위한 MOU를 맺을 계획이라는 모 브랜드 관계자는 “비용 측면에서 고민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친환경, 윤리 등에 주목하는 ‘가치 소비’가 세계적인 트렌드다. 특히 젊고 구매력 있는 소비자들은 조금 비싸도 친환경 제품을 선택하는 추세다. 정부에서도 힘을 실어주는 추세라서 (K-rPET 시장이) 내년엔 더 활성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K-rPET 시장은 결국 한국 사회가 투명페트병을 얼마나 잘 재활용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여성신문은 공동주택 투명페트병 분리배출제 석 달을 맞아 실태를 점검하고, 정부와 지자체, 전문가의 말을 들어봤습니다. 한국 사회가 직면한 기후위기를 짚어보고, 소비자와 기업, 정부와 지자체의 목소리를 듣는 여성신문 ‘지구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지못미)’ 기획의 하나입니다. 

▶ 정부는 잘 된다는데...투명페트병 분리배출제 3달, 현장은 엉망 www.womennews.co.kr/news/209524

▶ 투명페트병 배출 엉망인데...정부·지자체 “품질 점검은 아직” www.womennews.co.kr/news/209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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