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의 W초대석] 김영일 발렌시아(주) 대표

제22대 세계패션그룹(FGI) 한국협회 회장 맡아
한국패션아카이브 건립 위해 자료, 기금 모아야
100세 화가 조지아 오키프 통해 60세 이후 삶 조명
옷 아닌 가격을 디자인, 봉급을 옷값과 바꾸지 않게

김영일 발렌시아 대표 ⓒ홍수형 기자
김영일 발렌시아 대표 ⓒ홍수형 기자

영락없는 패션디자이너다. 배기바지에 흰색 티셔츠. 깨끗한 피부와 보이컷, 나직한 목소리. 김영일(64) 발렌시아() 대표는 누가 봐도 세련된 멋쟁이다. 발렌시아는 상호 겸 브랜드. 1984년 런칭한, 국내에서 보기 드문 장수 내셔널브랜드다. 지난 3월 세계패션그룹 한국협회(FGI KOREA) 22대 회장에 선임된 김 대표를 서울 성동구 서울숲 인근 발렌시아 본사에서 만났다.

FGI(패션그룹인터내셔녈)1930년 미국 뉴욕에서 설립됐다. 창립 멤버는 보그 편집장이던 에드나 울먼 체이스, 아메리칸룩의 창시자라는 클레어 맥카델, 화장품업체 창업자인 엘리자베스 아덴과 헬레나 루빈스타인,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은 영부인이라는 엘리노어 루즈벨트 등 17. 현재는 세계 11개국 5000여명이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FGI한국협회는 1978년 외교통상부 소속 사단법인으로 출범했다. 현재 회원은 강숙희 진태옥 설윤형 한혜자 오은환 지춘희 김동순 박춘무 양성숙 우영미 씨 등 내로라하는 디자이너 50여명. 부회장은 강기옥· 장현미 씨가 맡았다. 협회는 1981년부터 매년 현대백화점과 함께 하는 FGI 사랑의 대바자를 개최, 탁아소 건립과 시각·청각 장애인 및 미혼모· 무의탁 어르신 돕기 등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을 해왔다.

협회 회장으로서 김 대표의 목표는 확실하다. “개인적으론 솔직히 쉬고 싶었어요. 책 읽고 느리게 걸으면서요. 그렇지만 기왕 맡았으니 열심히 해봐야죠. 그동안 해외에 한국패션을 알린 1세대 디자이너들의 공을 기리고 후배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패션아카이브를 만들고 싶어요. 자료를 모으고 건립기금도 마련해야지요.”

호기심 많아, 5살 때 사랑은 왜 하나’  '공부는 왜 하나' 고민해

김 대표는 또 협회의 문호를 개방하고 회원들의 의견을 경청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입회조건이 다소 까다로웠어요. 문턱을 좀 낮춰 보려 합니다. ‘튄다는 얘기를 들을까 걱정도 되지만 주위에서 믿고 도와주시면 해낼 수 있으리라 봅니다. 사람은 타인의 믿음대로 행동한다고 하니까요. 현대백화점 바자회도 계속하구요.”

김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 천국이었다고 털어놨다.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유독 호기심이 많고 엉뚱했어요. ‘공부는 왜 하나’. ‘사랑은 왜 하나등 의문투성이였죠. 교회에 다녔는데, 하늘로 올라가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 텐데 왜 가지 않을까, 하나님은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의 요구를 다 들어줄 수 있을까도 궁금했어요.”

패션을 공부한 건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생각보다 현모양처가 되기 위해서였다. 뭐든 만드는 걸 좋아한 데다 아이들 옷을 직접 지어 입히고 싶었다는 것. “양장점에서 옷을 맞춰 입은 뒤 직접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어요. 뉴스타일복장학원에 다녔는데 그곳 원장님으로부터 잘 배우면 평생 손에 물 안묻히고 산다는 말을 하루 6번씩 들었죠.”

재단과 재봉을 배워 취직하려 했으나 막상 나오는 건 변두리 일자리밖에 없었다. 결국 디자인 공부를 더한 뒤 서울 중구 명동의 패션살롱에 취업했다. 패션의 중심 명동에서 주문복을 만들던 그는 세상의 변화를 직감했다. “기성복 시대가 금세 닥치겠구나 싶었어요. 백화점매장이 있는 곳으로 옮겨서 일하다 1984년 창업했지요.”

김영일 발렌시아 대표 ⓒ홍수형 기자
김영일 발렌시아 대표 ⓒ홍수형 기자

발렌시아는 스페인어 전공 남편 작품, 외환위기 이후 아울렛서 신상품 판매

사업 시작 시 가장 큰 고민은 타깃 설정이었다. 당시 기성복업계에선 대부분 시장 고객을 대상으로 했다. 김 대표는 그러나 처음부터 백화점 매장을 겨냥했다. “가브리엘 샤넬이 마음 속 모델이었어요. 발렌시아라는 이름은 스페인어를 전공한 남편이 지었어요. 아름다운 도시라구요. 간혹 이탈리아 브랜드 발렌시아가를 본딴 거 아니냐는 오해를 받는데 발렌시아가는 우리보다 10년 뒤에 생겼어요.”

발렌시아는 잘 나가는 백화점 의류업체로 승승장구하면서 일본 수출로 100만불탑도 받았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위기를 맞았으나 직원들의 도움으로 재기했다. 김 대표는 그때부터 무차입경영을 해왔다고 밝혔다. “차입 경영이 문제였어요. 회사가 잘 되니 이자 무서운 줄을 몰랐던 거죠. 대출 없이 경영하니 부도 걱정은 없어졌지만 회사 규모를 확장하는 데엔 한계가 있었어요.”

발렌시아의 브랜드 컨셉은 커리어우먼용 스마트 캐주얼. 전국의 매장은 60여개. 직영점과 대리점 등 형태는 다양하다. 김 대표의 소신은 뚜렷하다. “외환위기 이후 재기하면서 비싸지 않으면서 품질은 좋은 옷을 목표로 정했어요. 일하는 여성들이 봉급을 옷값과 바꾸지 않게 하고 싶었거든요.”

그는 당시 업계에선 생소하던 유통방식을 택했다. 백화점에서 철수하고 아울렛에서 재고 아닌 신상품을 판매한 것. “직원들에게 디자인은 거의 평준화된 것이나 다름없으니 웃 아닌 가격을 디자인하자고 선포했지요. 유통비용을 줄이는 대신 좋은 소재를 사용함으로써 가성비를 높인 거죠. 노력은 고객의 재구매로 돌아오더군요.”

김영일 발렌시아 대표 ⓒ홍수형 기자
김영일 발렌시아 대표 ⓒ홍수형 기자

 

3년 후면 40년 장수브랜드 반열에, 50100년 지속되도록 최선 다할 터

발렌시아는 올해로 창업 37년을 맞았다. 3년 뒤면 장수브랜드의 기준이라는 40년이 된다. 국내 패션계에서 30년을 넘긴 내셔널브랜드는 손꼽힐 정도. “만만하지 않은 나이가 되니 여기까지 온 게 내 실력이 아니라 운과 주위의 도움 덕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충성고객이 많으니 50100년 장수브랜드도 가능하겠지요.”

지난해엔 코로나로 고전했다. 2019년 매출은 380억원. 500억은 돼야 비용이 낮아져 수익이 올라갈 수 있다고. 올해엔 협회 일로 바쁘겠지만 발렌시아 경영에도 좀더 힘을 내볼 작정이다.

그는 그동안 2권의 인물평전 겸 여행기를 출간했다. 샤넬의 생애를 좇은 가브리엘 샤넬을 찾아가는 길과 미국 화가 조지아 오키프의 자취를 따라간 내가 열어본 조지아 오키프의 옷장이 그것. 디자이너의 에세이를 출간하겠다는 곳이 없어 직접 출판사(UB&co) 를 차린 다음 하나에서 열까지 직접 디자인하고 편집했다.

“‘가브리엘 샤넬을 찾아가는 길은 회갑이던 2017년에 냈어요. 샤넬을 모델로 사업을 시작한 지 33. 막연하게 동경만 하기보다 직접 연구해보자 결심했지요. 샤넬에게 영향을 준 장소를 직접 여행하고 글을 썼죠.”

'내가 열어본 조지아 오키프의 옷장'은 작년에 발간했다. “여성의 경우 60세 이후 삶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기 힘들어요. 100년을 산 오키프는 어땠을까 궁금했어요. 오키프는 멋쟁이였죠. 옷도 그림처럼 미니멀했어요. 세련된 삶은 돈만으로 되지 않잖아요.”  2권의 책 모두 직접 찍고 그린 사진과 스케치로 가득하다. “지도 그리기가 제일 어려워요. 지도는 정확해야 하는데다 비율이 중요하니까요.”  남다른 책임감과 섬세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 대표의 소망은 젊은 여성들이 힘들 때 생각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업을 오래 한 만큼 희노애락이 많아요. 패션계는 물론 다른 부문에서도 어려울 때 김영일을 떠올리며 힘을 내는 사람이 있다면 보람 있는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운명에 맞서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개척, 디자이너 겸 경영인이자 개성있는 작가로 우뚝 선 김 대표가 이끌어낼 발렌시아와 FGI한국협회의 탄탄한 성과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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