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의 영상 뽀개기] 연대의 힘이 만들어낸 소녀 히어로들의 탄생 ‘여고추리반’
[김은영의 영상 뽀개기] 연대의 힘이 만들어낸 소녀 히어로들의 탄생 ‘여고추리반’
  • 김은영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연구소 연구위원
  • 승인 2021.04.03 08:00
  • 수정 2021-04-08 16: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티빙 오리지널 예능 ‘여고추리반’
티빙 ‘여고추리반’.
티빙 오리지널 예능 ‘여고추리반’.

낮의 시간 속 학교는 입시라는 중압감 속에서도, 쉬는 시간마다 전속력으로 달려갔던 매점에서의 간식 폭풍 흡입이 가능하고, 함께 웃고 장난치던 친구들이 있는 생기가 넘치는 공간이다.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간 이후 밤의 시간 속 학교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간으로 변모한다. 한밤의 학교는 동상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교정을 활보하고, 화장실이나 미술실처럼 어느 한 켠에서 소녀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바뀐다. 선배로부터 후배에게 대대로 전해진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은 괴담이 되어 학교의 밤은 학생들에게 두려움의 시공간이 된다. 낮과 밤이 다른 이중적인 공간인 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스터리한 추리극 <여고추리반>이 시즌 1을 인기리에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즌을 준비 중이다. 

배경은 여고, 주인공은 여고생 

<여고추리반>(TVING)은 OTT 서비스인 티빙에서 최초로 만든 오리지널 웹 예능으로, 여성 특히 젊은 여성들을 겨냥한 프로그램이다. 전국 상위 0.1%만 다닌다는 명문 새라여고에 전학을 오게 된 5명의 주인공들이 동아리인 추리반에 가입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모험과 추리, 미스터리가 가미된 복합장르 예능이다. 이 과정에서 현실의 방송인들은 자신의 본캐릭터를 버리고 새라여고라는 가상의 세계에서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는다. 이들은 2주에 한번 등교면서 제시된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학교에 감춰진 비밀을 감지하고, 회차를 거듭할수록 이들이 마주하는 사건의 스케일은 점점 거대해진다. 결국 마지막 회차에서 추리반 여고생들은 흩어진 단서들을 토대로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고, 희생당할 위기에 처한 선생님과 친구들을 구해내면서 히어로가 된다.  

<지니어스>혹은 <범인은 바로 너>와 같은 추리를 가미한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처럼, <여고추리반> 역시 실제 출연진의 캐릭터와 방송이라는 가상 세계의 캐릭터가 상호작용하고, 게임 서사를 가미하여 시청자들의 재미와 몰입을 최대화한다. 사건 해결 과정에서 때때로 드러나는 출연진들의 현실 캐릭터의 일면이 말이나 행동으로 드러나는 소소한 상황들은 현실과 가상을 넘나들면서 리얼 버라이어티 장르의 묘미를 보여준다. 특히 <여고추리반>은 기존 프로그램에서 잘 다뤄지지 않았던 여자고등학교를 배경이자 여고생이 주인공으로 설정되었다는 점에서 기존의 유사 프로그램과 변별되는 흥미를 자아낸다. 

처음 명문여고인 새라여고는 표면적으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모였다는 점 이외에는 여느 고등학교와 별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학교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곳은 피자 도둑 사건과 같은 작은 해프닝이 발생하는 곳이자, 회차가 거듭될수록 알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심지어 친구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는 스산하고 비밀이 많은 문제적인 장소가 된다. 비극의 공간으로서의 여고는 흔하진 않지만 기존 드라마와 영화에서 여고를 다뤄온 방식과 결을 같이 한다. 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과 영화 <여고괴담 시리즈>와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속 여고는 우정과 성장의 공간이기 보다는, 입시 경쟁, 갈등과 욕망이 얽힌 사건의 발생지이자 비극의 장소로 그려졌다. 여학생들이 모인 곳이라는 것 자체가 다른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한편, 갈등과 욕망이 분출되는 위험한 곳으로 바라보는 여자고등학교에 대한 상반된 시각이 반영된 시각이다.

배제되던 여고생 목소리와 힘 확인

동일한 공간인 여고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 <여고추리반>의 차이점은 제각기 다른 주인공들이 미션을 수행하면서 켜켜이 쌓아가는 연대의 힘에서 나온다.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박지윤, 개그우먼 장도연, 연반인 재재, 힙합 가수 비비, 아이돌 가수 최예나가 주인공으로 이들은 배경도, 직업도, 나이도 모두 다르다. 방송인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중복되는 직업을 가진 이도 없고, 연장자와 연소자의 나이차가 20살이 날 정도로 연령별 스펙트럼 또한 넓다. 방송 초반 나이와 배경의 다양성은 어색함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회차가 진행 될수록 이들은 서로 반말을 주고받고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게 힘을 주는 ‘진짜’ 고등학교 2학년 친구로서의 우정을 보여준다. 한때 고등학생이었던 경험과 감성을 토대로, 그리고 사건 해결이라는 공통의 경험을 겪으면서 물리적인, 현실에서의 차이들은 사라지고 이들을 하나로 묶는 연대감이 형성된 것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장면은 비록 방송에서 보이는 이미지에 불과할지라도 저마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여성일지라도, 여성으로서 겪는 공통의 경험이 여성들의 연대를 이끌어낼 가능성과 그 힘을 보여준다. 

성차별과 연령주의라는 우리사회의 비민주적인 위계질서 속에서 여성이자 미성년자로 약자에 속하는 여고생들의 활약은 그동안 배제되고 들리지 않았던 여고생의 목소리와 힘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5명의 주인공들은 사건의 단서를 추리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공포에 휩싸여 비명을 지르고, 당이 떨어지면 마이쮸를 먹고, 어려운 미션 앞에서 손을 떠는 흔한 여고생의 단면을 보여준다. 반면 학교를, 학생을 상대로 음모를 꾸미는 교장을 비롯한 선생님들과 대립하면서, 죽을 위기에 처한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모험과 도전에 나서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말한다. 여느 여고생과 다를 바 없지만 힘을 합쳐 사건을 해결하고 친구들을 구하는 소녀들의 강인한 모습은 평범함 속에 감춰진 비범한 히어로를 보여준다. 

여타 드라마나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들은 사건을 주도적으로 이끌기보다는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키고, 주인공인 남성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일명 ‘발암’ 캐릭터들이 많았다. 하지만 <여고추리반>은 이같은 구도에서 벗어난다. 프로그램 속 주인공들은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사건을 해결한다. 더욱이 종반부분에 이들을 돕고자 등장한 남성 출연자의 역할은 사건 해결에 필요한 도구 전달자로서 한정되고, 사건은 5명의 주인공들이 합심하여 주도적으로 해결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여고추리반>은 입시 중압감에 압도되거나 혹은 열광하는 아이돌 앞에서 환호하는 모습으로 그려졌던 여고생의 이미지에 주체적이면서 연대로 힘을 키우는 새로운 히어로의 이미지를 더한다. 주어진 것은 흩어진 단서뿐인 상황에서 이들은 힘을 합쳐 해결한다. 이 과정에서 서로 자신의 공을 내세우지 않고 다른 이들과의 협업, 그리고 종국엔 자신들을 환영하지 않았던 친구들까지 구한다. 평범함과 연약한 겉모습 이면에 있는 비범함과 강함, 주체적이지만 연대하는 소녀 히어로들이 탄생한 것이다. 논의 중인 시즌 2에서 더욱 견고해질 팀워크가 빚어내는 이들의 활약이 기대된다.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여성신문은 1988년 창간 이후 여성 인권 신장과 성평등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국내 최초, 세계 유일의 여성 이슈 주간 정론지 입니다.
여성신문은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여성의 '안전, 사회적 지위, 현명한 소비, 건강한 가족'의 영역에서 희망 콘텐츠를 발굴, 전파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를 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은 여성신문이 앞으로도 이 땅의 여성을 위해 활동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여성신문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