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입시 비리 스캔들을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작전명 바시티 블루스:부정 입학 스캔들'. 사진=넷플릭스
2019년 입시 비리 스캔들을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작전명 바시티 블루스:부정 입학 스캔들'. 사진=넷플릭스

미국의 대학 입시에서 이맘때는 합격자 발표가 나고, 5월 1일까지 최종 입학 대학을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3000여개 대학이 있지만, 매년 명문대 경쟁률은 높아지고 있다. 때마침 2년 전 미국을 뒤흔들었던 대입 부정 입학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작전명 바시티 블루스: 부정 입학 스캔들’이 넷플릭스에 공개돼 입시비리에 대한 관심이 수면 위로 올라 ‘교육의 공정성’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미국 대학입시 역사에서 상실돼 가는 공정성

300년이 넘는 미국 대입제도는 1636년 최초로 설립된 하버드대에 라틴어와 그리스어 번역능력을 입학 자격으로 부여하면서 시작됐다. 1701년 예일대가 수학을 평가 기준으로 삼았고, 1926년에 SAT 점수 활용, 2차대전 후 대학지원자 급증으로 6가지 기준(고교졸업, 최소 필요 학점, 졸업반 석차, 학력평가시험 점수, 교장 추천서, 인터뷰)을 세웠다. 1960년대에 다양성 반영을 위해 지원서에 인종, 종교, 민족 배경 등을 표기하여 소수계 보호(Affirmative Action)를 취하는 등 입학기준을 더 까다롭게 하면서 ‘공정성’을 유지하고자 시대에 맞춰 변화해 왔다. 오랜 세월 동안 일명 ‘뒷문’ 기여입학제가 존재하고 있어도 워낙 거액 기부자의 자녀들에 해당하는 소수였으므로 큰 문제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2019년 릭 싱어에 의해 터진 초대형 ‘옆문' 입시비리 사건은 법망을 피해 2012년부터 8년간 761가정의 부모들로부터 2,500만 달러에 이르는 뒷돈이 거래됐다. 부모들 대다수가 연예인, 로펌 대표, 기업체 CEO 등 사회적 부유층들로서 부도덕한 행위, 레거시에 대한 우대, 다양성 뒤에 숨은 역차별 등 입시제도의 허점이 드러나면서 공정성 논란이 제기됐다. 

‘옆문’ 입시비리 후폭풍은? 

일명 HYPS, 즉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스탠포드 같은 명문대학 ‘앞문'으로 들어가려면  ‘슈퍼 웰 라운디드(super well-rounded)’ 학생이 돼야 하고, 거기에 ‘운’도 따라야 한다고 한다. 첫째, 학교성적이 단순히 평점 4.0 만점을 받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경쟁력있는 과목을 몇과목 이수했는지, 둘째, 특별활동은 교내외적으로 리더십과 재능, 창의성을 발휘한 클럽활동과 봉사활동, 셋째, 학문적, 예능, 체육 특기 관련 수상경력, 넷째, 진지하게 학생을 꿰뚫을 수 있는 충분한 관찰 기간과 경험에 의해 쓰여진 학교교사, 코치, 인턴십 수퍼바이저, 학교장 등의 추천서, 다섯째, 인생의 전환점을 찾아낸 ‘아하! 경험'이 반영된 에세이, 여섯째, 표준학력고사 점수(SAT, ACT)와 AP 시험점수, 일곱째, 각 대학의 인터뷰를 통해 평가되는 인간성, 미래의 학문적 비전과 대학에 기여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성과 능력,  경력이 하루 아침에 쌓을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한 개인의 10대 인생 전부와 부모와 가족의 전폭적인 시간과 노력의 지지 결과다.  

미국의 초등학교는 한국의 교과과정 속도로 볼 때 쉬엄쉬엄 노는 것 같았다. 구구단을 외우는 시기도, 학교 선생님의 강조하는 정도도 부모입장에서 불안을 느낄 정도였다. 그러나 3학년부터는 제대로 된 두꺼운 교과서를 갖추고 갑자기 공부 분위기로 바뀌어 교과서만 읽어도 과학적 수준이 꽤 될 듯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고등학교와 대입까지 지속된다. 학교의 성적은 숙제와 거의 매일 치루듯 빈번한 쪽지시험 결과가 합산되어 만들어지므로 한 두개 그냥 지나치다보면 원하는 성적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동시에 악기, 운동, 클럽활동, 사회봉사활동, 여러 경시대회 및 음악콩쿠르에 참여하며 다양한 스펙 쌓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한국처럼 사설학원에 나갈 시간조차 내기 어렵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면 부족과 긴박감은 고조된다. 같은 클럽이나 봉사활동 등 특별활동을 함께하는 친구가 아니면 학교 밖에서 만나 놀러 다니거나 좋아하는 게임을 즐기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부모는 아이들보다 먼저 정보를 접하고, 옆에서 뒤에서 아이의 모든 일정을 확인하고 물리적 정서적으로 지원하는 코치로서 매니저로서 일정에 맞춰 등하교와 특활을 위해 운전해주는 것만으로도 하루해가 짧다. 고교 3학년부터는 절대적으로 수면부족 상태이므로 최대한 잠자는 시간을 확보해주기 위해 교회에 출석하는 시간을 맞출 수 없어서 가정미사를 했을 정도다. 가족들도 배려하느라 호흡을 같이 해야 했다. 돌아보니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가 동기부여를 가지고 서서히 자기 인생계획을 만들어가도록 하기 위해 태어나서부터 아이의 나이와 처한 상황에 맞춰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얻도록 다양한 설명을 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었던 것 같다. 부모로서의 열정이 긴 여정동안 이를 할 수 있게 했던 것 같다.

이렇게 13년간의 학령기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견디며 공들여 쌓은 학업과 스펙을 가지고 정식으로 대학의 ‘앞문’을 통해 지원하여 합격자 발표까지 마음 졸이며 기다렸던 대입 경험자로서 릭 싱어의 ‘옆문’ 입시비리 사건은 어처구니없고 사회에 대한 배신감마저 들게 했다. 인생을 걸고 그 시기마다 정성을 들이면서 깃발을 꽂으며 시간게임(Time Game)의 마라톤을 뛰어 골인 지점에 도착한 사람만이 느끼는 ‘성취'에 물을 끼얹는 것 같았고, ‘인생을 새치기당한 느낌’과 함께 ‘무력감'과 ‘상대적 박탈감'까지 느꼈다. 한편에서 분노한 일부 학생과 학부모들이 사건 관련자와 대학을 상대로 공정한 경쟁 침해와 정신적 피해 보상 및 전형료 반환요구를 한 소송제기 소식을 들었을 때 충분히 공감했다.

수습과 처벌

사건 후 캘리포니아주 의회의 입시비리 관련 대학에 대한 주 정부 지원 장학금 중단을 골자로 한 법 제정과 SAT 주관사인 칼리지 보드의 대리시험 신뢰성 회복을 위해 ‘역경점수' 도입과 쇄신 약속, 대학별 철저한 입학 선발 과정에 대한 자성과 입시 비리에 관련된 재학생과 졸업생에 대해 입학 취소와 퇴학 조치 및 학위 박탈 조치가 이뤄졌다. 조지아대학의 온라인 수업을 대리로 수강시켰던 재무부의 한 근무자는 재무부에서 사직해야  했다. 학부모와 대학 관련자는 징역형 11일~최고 5개월, 사회봉사 150시간~300시간, 벌금형 1만 달러~25만 달러 처벌에 그쳤다. 사건의 주모자인 릭 싱어는 FBI에 체포되자마자 자신의 모든 유죄를 인정하고, 자신의 고객을 밀고하기로 결정하고 그들이 모두 선고를 받을 때까지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맨토에 살면서 수사에 협력한 후에야 심리될 예정이다. 언론 매체에 의하면, 그는 65년 징역형에 처해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심각한 도덕적 불감증 

넷플릭스를 명예 훼손으로 고소한 존 윌슨이 자신의 뒷돈이 ‘합법적’이라고 믿고 있는 것과 같이 사건에 연루된 학부모들은 릭 싱어의 자선단체에 기부형태로 입금했으므로 수치심 없이 오히려 대학발전기금에 일조했다고 합리화하고 있다. 자신들의 비리와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두 자녀의 대입 특별활동 스펙을 위해 인턴십 증서와 수상경력 위조를 부모가 직접 감행하여 불법 서류 제출로 대학 입시에 합격시키고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의 ‘내로남불' 사례가 오버랩됐다. 몇 년 동안 만연된 억지와 직권을 이용한 비리, 그리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는 한국 국민뿐만 아니라 재외국민들도 분노가 쌓여갔다. ‘불법을 합법으로 착각’하는 사회 영향력자들의 도덕적 불감증은 불행히도 미국에도 퍼져 있다.

노력만큼 평가받고 상식 통하는 사회돼야

2년이 지났지만 사건 연루자들의 뉘우침 부재와 솜방망이같은 처벌은 같은 일이 되풀이 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며 역사는 그대로 흐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아직도 릭 싱어의 협조 속에 FBI는 처벌과 수습을 진행하고 있다. 한 검사는 “매일 성실하게 공부하는 다수의 학생과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대학 관계자들의 기대가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소급수사를 통해 뿌리를 뽑겠다”는 의지를 표한 데서 희망을 가져본다. 

내 아이가 대학에 합격했을 때 ‘너는 그럴 자격이 있어!!’(You deserved it!)라는 축하를 받으며 13년간의 피나는 노력과 희생 과정을 알아주는 진정한 칭찬이 고마웠다는 말이 새롭게 떠오른다. 교육은 이기적으로 왜곡된 인간을 키워냈고, 뒷돈을 챙긴 대학은 오히려 피해자라는 반응으로 입시비리 책임에 소극적 입장이다. 이 모든 것이 경쟁위주의 교육으로 치닫게 한 사회에 책임을 묻기 전에 우리 각자에게 ‘나는 상식적인가?’ 물어야 할 것 같다. 

황은자(베로니카) H&C 교육컨설팅 대표
황은자(베로니카) H&C 교육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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