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미연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부위원장
차별 딛고 UN 요직 오른 한국 장애여성 인권운동가
아시아 여성·장애여성 최초 부위원장 올라
“이제 글로벌 장애여성 리더십 시대”

김미연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부위원장 ⓒ홍수형 기자
김미연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부위원장 ⓒ홍수형 기자

30여 년간 쉼 없이 달려온 장애여성 인권운동가가 있다. 생후 11개월에 소아마비를 앓고 휠체어를 타게 됐다. 대학 졸업 후 취업 문턱에서 장애를 이유로 좌절을 겪으며 차별이 판치는 현실에 눈을 떴다. “사회가 나를 거부한다면 내가 사회를 바꿔야겠다”라고 결심했다.

2000년 장애여성문화공동체를 설립하고 문화예술을 통한 장애여성인권 운동을 펼친 여성. 국내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을 이끈 여성. 국제무대로 나아가 더욱 활약한 여성. 2018년 한국 여성 최초로 유엔 장애인권리위원이 됐고, 올해 3월 아시아 여성·장애여성 최초로 위원회 부위원장이 된 여성. 김미연(54)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부위원장은 들려줄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다. 지난 6일 여의도 모처에서 그를 만났다.

UN에서 그는 ‘Mijoo Kim(미주 김)’으로 통한다. 외국인들이 ‘미연’ 발음을 어려워하길래 만든 닉네임이다. 거침없는 리더십과 협상력을 지닌 인물로도 이름을 떨쳤다. 2002~2006년까지 ‘유엔장애인권리협약(CRPD) 제정을 위한 특별위원회 한국정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결국 협약 초안에 없던 ‘장애여성(Women with disabilities)’ 조항을 추가한 일화가 유명하다. 영어는 어설픈 ‘토종 한국인’이지만, 화끈한 추진력으로 각국 여성들을 모으고 함께 논의해 이룬 성과다. CRPD는 장애를 젠더 관점으로 다룬 유일한 UN 인권협약이 됐다. 한국 장애여성들이 발 벗고 나선 덕에, 세계 장애여성 인권을 파악하고 개선하는 UN 메커니즘을 만들 수 있었던 셈이다.

“2002년 UN 협약 초안엔 장애여성 관련 조항이 하나도 없었어요. 당시 제정을 준비하던 한국 장애인차별금지법 초안은 장애 여성·아동 문제를 별도의 장으로 다루고 있었는데, 국제 협약에 우리 같은 여성들을 보호할 조항이 없다니? 그래서 한국 장애여성들이 나섰어요. 제가 총대를 멨고요. 우리 정부에 먼저 문제를 제기했어요. 각국 정부의 뜻도 모아야 하니 현지 장애여성들도 직접 만나서 설득했죠. ”

싸워야 할 때는 싸웠다. “영어를 잘 못 하는 아시아 여성이 논의를 주도하려 든다며 절 대놓고 무시하는 백인들이 있었어요. 작심하고 ‘당신들, 인종차별하지 말라’고 선언했어요. 그러자 용서를 구하더라고요. 비백인 인사들은 제게 지지를 보냈고요. 논의 중 소외되는 느낌이 들면 ‘이해하기 힘드니까 정리해서 보내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고 떠나 버렸죠. 으르렁 싸우면서도 서로 존중하며 소통하는 법, 적절히 역할을 나누는 법을 터득했어요. 결국 조항을 함께 만들고는 부둥켜안고 울었죠. 네덜란드 출신 장애여성 선배가 그러더라고요. ‘이 모든 건 고집불통 미주가 있었기 때문에 해낸 거야. 너 아니면 불가능했어!’”

그는 세계 장애여성 인권 상황을 꼼꼼히 살피고 개선을 권고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한국을 포함해 CRPD를 비준한 182개 당사국은 4년마다 유엔에 보고서를 내야 한다. 김 부위원장은 다른 위원들과 함께 당사국의 상황을 꾸준히 살피고, 장애여성 문제가 주요 현안으로 다뤄지도록 힘써왔다. 예전이라면 제네바·뉴욕 등을 오갔을 텐데, 요새는 노트북 앞에서 UN 심의활동도, 세계 NGO 인사들과 화상회의도 연다.

“50대에는 NGO를 관두고 노후 준비도 하고 쉬려고 했어요. 그런데 국내외 장애운동 선배들이 ‘미주야, UN에 가라’는 거예요. 네가 협약에 ‘장애여성’ 조항을 넣는 데 기여했으니, 잘 이행되는지 끝까지 감시해야 하지 않겠냐고요.”

용기 내 본격적으로 국제무대에서 뛰기 시작했다. 그간 장애여성과 소녀들이 겪는 젠더폭력에 초점을 두고 각국의 상황을 중점적으로 살폈다. 유럽의 난민, 남미 원주민, 아랍의 가부장적 전통, 개발도상국의 자원 빈곤 등 정치·경제·사회·문화와 맞물려 복잡하고 풀기 어려운 문제도 들여다봤다. 현지 관계자와 정부 입장을 듣고 개선안을 권고하는 게 그의 임무다.

요즘은 코로나19 속 장애 인권, 탈시설 등 주요 현안을 다룬다. “코로나19 상황에서 가장 큰 위험에 노출된 게 장애인들이다. 다양한 장애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방역지침 탓에 시설이나 병원에 갇혀 방치된 장애인들의 사망률이 높다”고 했다. “장애인을 보호하고 수용할 존재가 아닌, 사회권과 자율성을 지닌 존재로 대우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립생활(탈시설)이 필수입니다. 장애인이 진정한 사회 구성원이 되려면 지역사회에서 자율적이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욕구와 꿈을 무시하고, 가족·친지·지역사회로부터 고립시키는 사회 구조가 문제입니다.”

김미연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부위원장 ⓒ홍수형 기자
김미연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부위원장 ⓒ홍수형 기자

임기 첫해인 2019년, 유엔장애인권리위원 18명 중 여성은 그를 포함해 6명뿐이었다. 2021년 4월 현재 위원 18명 중 12명이 여성이다. 위원장도 부위원장도 여성이다. “이제는 글로벌 장애여성 리더십 시대”라고 자평했다.

뒤에 올 여성들에게 그는 해주고 싶은 말이 많다. 먼저 “거울을 보라”는 조언을 전했다. “나 자신, 내 앞에 닥친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장애여성들이 많아요. 오히려 부정하고 왜곡하죠. 그러면 안 돼요. 나를 마주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힘을 길러야 해요. 그게 시작이에요. 저도 그랬거든요. 어떤 대의나 사회 정의가 아니라, 내가 일상에서 겪는 문제들을 계속 고민하고 부딪히는 경험을 쌓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홀로 외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동료와 멘토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내가 여러분을 도울 테니 꼭 연락 달라”고도 했다.

“한창 씩씩하고 예쁠 나이인 2030 장애여성들이 즐겁고 발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게 제 꿈이에요. 제가 그렇게 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누구나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본능이 있잖아요. 그걸 드러내지조차 못한 채 절망과 체념에 젖어 사는 후배들을 만났는데 너무 가슴이 아파요. 그들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늘 말해줘요. ‘남들이 너에게 하는 말을 기준으로 삼지 마. 별 볼 일 없던 내가 UN 위원까지 됐는데, 나보다 멋지고 능력있는 너는 어떤 인물이 될 지 기대된다! 장애여성으로 살아보니 어떠냐고? 생각보다 살만한 인생이야.’”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