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하라 칼럼] 루이즈 미셸 - 페미니스트 문인, 전사, 교육자
[반하라 칼럼] 루이즈 미셸 - 페미니스트 문인, 전사, 교육자
  • 반하라 인류학자·작가
  • 승인 2021.04.18 13:47
  • 수정 2021-04-18 13: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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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 왔냐고 묻는다면, 너는 답하리라 :고통 받는 밤에서 왔어요 ; 신이여, 저는 당신이 구렁낸 의무를 떠납니다… 너의 신비하고 감미로운 시들을 아는 이들은, 너의 낮들, 너의 밤들, 너의 관심들, 모두에게 주어진 너의 눈물, 남들을 돕느라 너 자신을 잊어버린 너, 사도들의 불꽃같은 네 말들…>

빅토르 위고는 그의 시 ‘남성보다 위대한(Viro Major)’에서 사람들을 돕느라 자신을 잊고 고통 받았던 루이즈 미셸(1830~1905)을 ‘남성보다 위대하다’고 쓰고 있다.

루이즈 미셸은 ‘파리코뮌’의 아이콘으로 알려져 있다. 파리코뮌 150주년을 맞은 올해, 프랑스의 신문과 잡지들은 코뮌(사회주의적 직접민주주의 시민자치) 특집 기사를 내고 있고 서점엔 코뮌을 주제로 한 연구서, 소설과 코뮌 활동가들의 회고록 등이 나와 있다. 코뮌의 주요 인물이 한둘이 아니지만 루이즈 미셸은 살신성인적 영웅으로 누구보다도 부각되어 있다. 하지만 그는 코뮌의 ‘아이콘’을 너머 각광받았던 문인으로 혁신적 교육자로 지배권력에 반한 반역적 전사이상의 업적을 남겼다. 전생애에 걸쳐 조금도 굴함 없는 기백으로, 지치지않는 탐구력과 열린 지성으로 억압받는 자들의 해방과 자율적 삶을 위해 끝까지 분투했던 루이즈 미셸의 삶은 행동 페미니즘의 체현이었다.

루이즈 미셸 초상화.
루이즈 미셸 초상화.

파리코뮌의 아이콘

루이즈 미셸은 1830년 프랑스 북동부지역의 브롱쿠르 성에서 하녀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불분명한데 성주가 루이즈의 조부 역할을 하면서 계몽철학자들의 책을 읽히고 문학, 음악, 회화와 자연과학에 걸쳐 수준 높은 교육을 받게 했다. 하지만 조부모가 사망하자 그는 어머니와 함께 성에서 쫓겨 난다. 루이즈는 20대 초반 교사 자격시험을 보고 선생님이 된다. 하지만 그는 남녀교과과정에 차등을 두고 남녀 교사자격시험에도 차등을 두어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육성하는 제국의 교육정책에 분노했다. 루이즈는 성차별적이고 권위적인 학교와 충돌하면서 학교를 옮겨 다니다 파리에 가서 마침내 자신의 학교를 만들어 힘든 아동들, 특히 소녀와 여성교육에 힘쓰게 된다.

시인이기도 했던 그는 낮에는 학생들을 가르치며 그들을 돕고 밤에는 여성시민권 쟁취를 위한 페미니스트 그룹에 참여해서 여성의식을 키워갔다. 파리의 궁핍한 아동들과 특히 소녀들과 성매매 여성들의 비참함 현실을 그는 외면할 수 없었다. 당시 1860년대 말 파리엔 정치클럽 미팅이 활발해졌는데 루이즈는 그 미팅에 나가서 여러 노선의 혁명가들을 사귀면서 참담한 사회현실을 바꿔낼 방안들을 놓고 토론을 벌였다. 루이즈는 누구도 억압받지않는 자유로운 사회를 쟁취하려면 경제적 문제의 해결이상 혁신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여성교육에 특히 힘을 기울였다. 루이즈 미셸은 성매매와 결혼은 본질상 다르지 않은 거래관계라고 파악하면서 성매매에 강하게 반대하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

코뮌의 혁신적 여성정책

1870년엔 프로이센과의 전쟁이 발발했다. 제국이 붕괴되고 보수세력과 왕당파가 주류가 된 새 공화국 정부가 세워졌는데 프로이센이 제시한 굴욕적인 조건을 받고 항복하려 했다. 프로이센 군대에 의해 포위되어있던 파리의 노동자들과 소시민들은 항복에 결사 반대를 표명했지만 1871년 프랑스 정부는 그들에 반해 항복했다. 정부는 베르사이에 있는 군대를 파리에 투입해서 저항하는 시민들의 무장을 해제하고 진압하려했지만 시민들은 투입된 군대를 밀어내고 1871년 3월 18일 혁명적인 ‘코뮌’자치에 들어간다. 70여일 지속되었던 코뮌에서 여성들은 정치토론에 열렬히 참여했지만 3월 26일 평의원대표 직접선거에서 여성들에게 투표권과 피선출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한 페미니스트 저널리스트는 남성과 동등한 시민권 없이 혁명의 성공은 불가능하다고 역설했다.

이처럼 페미니스트들의 기대엔 못 미쳤지만 코뮌의 여성정책들을 혁신적이었다. 자유로운 결혼과 이혼권, 사실혼의 인정, 성매매 폐지, 독신여성과 자녀들에 대한 연금지원, 빈곤층구제와 초등무상교육 등 루이즈 미셸은 코뮌자치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면서 학생들을 교육하고 그들을 위한 공동식탁을 차렸고 이웃을 위한 공동식탁을 차려서 배고픔을 해결하는데 헌신했다. 약자중심의 여성정책들과 코뮌의 선구적 노동보호 정책들은 다른 수많은 여성시민들과 함께 루이즈 미셸이 몽마르트의 바리케이트 위에서 죽음을 불사하면서 정부군을 상대로 맹렬히 전투를 벌였던 이유였다. 정부군은 5월 28일까지 코뮌을 완전히 진압하면서 2만명 이상의 파리시민들을 학살했다. 거기에 무려 4만여명의 포로들은 전쟁재판에 회부되었다. 볼모로 붙잡힌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서 자진 포로가 된 루이즈 미셸은 자신의 눈앞에서 사랑하는 동지들이 수없이 처형당하는 것을 보면서 분노에 떨었다. 그는 전쟁재판정에 서서도 자신은 학살자들과 계속 싸우겠다면서 당신들이 비겁하지 않다면 나를 죽이라고 죽음을 명령해서 당시 프랑스와 국제사회를 전율케 했다. 그를 코뮌의 전설적 아이콘으로 만든 법정진술이었다. 법정은 그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프랑스 영화 ‘루이즈 미셸’(2009)의 한 장면. 뉴칼레도니아로 추방된 미셸의 눈으로 제국주의 침략의 부도덕성을 고발한다.
프랑스 영화 ‘루이즈 미셸’(2009)의 한 장면. 뉴칼레도니아로 추방된 미셸의 눈으로 제국주의 침략의 부도덕성을 고발한다. 사진=notrecinema

추방 뒤에도 교육과 저서 집필

감옥에 갇혔던 루이즈 미셸은 1873년 유형수가 되어 남태평양의 식민지, 뉴칼레도니아로 추방되었다. 7년간의 유형생활 중에 그는 카낙 원주민들과 사귀면서 카낙언어를 배우고 억압받는 피식민지 원주민의 고난을 인지상정하면서 그들이 일으킨 반란을 지지했다. 루이스 미셸은 프랑스에 돌아와서 민속학자와 같이 카낙의 전설과 영웅담을 시적으로 표현한 노래책을 출간했다. 유형지에서 루이즈는 관리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자연생태를 과학적으로 연구했고 유형말기엔 허락을 받아 교사가 되어 여러 배경의 어린이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유형가면서 테러에 반대하는 자유주의적 아나키스트가 되었던 그는 1880년 프랑스로 돌아와서 권위주의적 사회주의 혁명노선과 결별하고 유럽을 돌면서 지배권력의 억압과 착취에 맞서 투쟁하는 집회에 참여하고 활발한 강연활동을 해나갔다. 그는 사형제 폐지론자였고 동물실험과 학대에 반대하며 동물권을 옹호했고 원예에 조예가 깊은 생태주의자였다. 시인이었던 루이즈는 프랑스에 돌아온 이듬해 소설을 출간하고 단편, 희곡, 회고록과 에세이 등을 다시 감옥에 수감되었던 기간에도 지칠 줄 모르고 집필해서 당시 국제사회의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감옥에 이어 정신병원에까지 갇히게될 위험에 처해지자 1890년 그는 런던에 가서 망명생활을 하게 되는 데 그 동안엔 국제자유학교를 세워서 기능, 예술과 과학과정을 무상으로 공급하는 혁신적 교육을 펼쳤다. 사망하기 얼마 전까지도 알제리아로 가서 반식민주의 강연을 하고 마르세이로 돌아온 루이즈 미셸은 1905년에 사망한다. 당시 유럽최고의 혁명적 인사로 명성을 쌓았던 그의 장례였던 만치 10만이 넘는 사람들이 그의 운구를 따르며 애도했다. 코뮌 동정자, 사회적 약자들, 식민지의 핍박받는 사람, 동물권수호자, 반유대주의에 저항하는 드레이퓌스 지지자들, 페미니스트, 문인들, 생태주의자, 아나키스트들과 심지어 프리메이슨까지…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루이즈 미셸의 죽음을 애도했던 것이다. 코뮌 150주년을 맞아 코뮌의 아이콘으로 다가온 루이즈 미셸에게서 전 생애에 걸친 바다같이 깊고 넓었던 투쟁의 역량을 가늠해보면서 행동으로 체현했던 페미니스트의 숭고한 삶을 새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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